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김지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한민국 최초 전투기 조종사 서왈보 소전(小傳)이영신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당선작은 신동아 2004년 11월호부터 매달 1편씩 게재됩니다.
신동아 회의실에서 본심 심사를 하고 있는 심사위원들.
올해로 40회를 맞는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서는 아쉽게도 최우수작이 뽑히지 못했다. 대신 우수작만 3편이 선정됐다.
상금이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오른 때문인지 응모작은 예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 82편이나 됐다. 예심기간도 예년에 비해 한 달 이상 더 걸렸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3편. 본심 심사위원 3명은 4~5편씩 돌려가며 읽는 방법으로 전 작품을 검토했다.
10월6일 신동아 회의실에서 열린 본심 최종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은 “응모작은 많았으나 탁월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며 올해 최우수작은 뽑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문영숙씨의 ‘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일기’, 김지현씨의 ‘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 이영신씨의 ‘대한민국 최초 전투기 조종사 서왈보 소전(小傳)’ 등 3편을 우수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들은 당초 이○○씨의 ‘어미의 길’을 최우수작 후보로 올렸으나 제출자 본인이 직접 집필하지 않았고, 내용의 상당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어 심사대상에서 제외했다.
심사위원
본심 : 하응백(문학평론가) 정길연(소설가) 전진우(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예심 : 이상락(소설가)
◇ 심사평
[하응백] 개인사적 체험, 여성 작품 두드러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3편은 모두 논픽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할 사실성과 개인의 진솔한 체험을 담아내고 있거나 충실히 취재한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개인사적 체험을 다룬 작품 중에 수작(秀作)이 많았다는 점과 여성들의 작품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마치 1990년대 중반 이후 신경숙, 은희경 등의 여성작가들이 자기 체험적 소설들로 주목을 받았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허구의 영역에서 노동문제나 통일문제 같은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개인사적 담론이 팽배한 것이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논픽션의 영역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논픽션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야기라고 볼 때 이야기의 영역에 개인적 체험이 자신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역사적 체험을 벗어난 개인사의 경우 보편적인 공감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논픽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할 위험성도 크다 할 수 있다. 결국은 얼마나 진실하면서 감동적인가 하는 것이 개인사적 논픽션의 관건이다.
[정길연] ‘의욕’보다 ‘사실’, ‘심증’보다 ‘물증’ 앞세워야
논픽션은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단,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 ‘사실’보다 ‘의욕’이, ‘물증’보다 ‘심증’이 앞서서는 곤란하다. 꾸미지 않은 진솔함과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이야말로 논픽션의 생명인 것이다.
종종 제3자의 삶을 발굴·조명하거나 드러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새로이 공개하면서 억측에 가까운 예단이나 편애 또는 편협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또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글에서 자기합리화로 흐른다거나, 한풀이나 명예회복의 기회로 삼고 있지 않은가 의심할 만한 표현으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본다. 그런 글은 대개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올해 본선에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서도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관점에 머문 글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문영숙의 ‘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일기’는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를 보살피면서 겪은 크고 작은 일들과 병증을 세세히 회고한 간병 기록이다. 과장하지 않는 진솔함과 타인에 대한 선한 배려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김지현의 ‘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은 재미작가 강용흘의 천재성과 활동상을 추적한 취재기로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 상당히 관심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영신의 ‘대한민국 최초 전투기 조종사 서왈보 소전(小傳)’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서왈보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당대의 정황과 인물들 간의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부분이 없진 않았으나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됐다.
[전진우] 세상사 체험 담담하게 공유하는 작품 아쉬워
예년에 비해 전체 출품작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의 전반적인 수준도 나아졌다고 본다. 다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이 없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눈에 확 띄는 작품’이라 함은 결코 소재의 특이성이나 문장의 화려함, 또는 완벽한 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담담한 가운데 마음에 와 닿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 그것을 통해 세상사를 공유하고 체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뜻한다. 그런 작품이야말로 좋은 논픽션이다.
그 점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문영숙의 ‘어느 며느리의 7년 치매 간병일기’, 이영신의 ‘대한민국 최초 전투기 조종사 서왈보 소전(小傳)’, 김지현의 ‘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은 분명 일정한 수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눈에 확 뜨이기’에는 세 작품 모두 미흡한 것 또한 사실이다.
‘치매일기’는 7년간 시어머니를 간병한 며느리의 차분한 이야기가 공감을 주었으나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서왈보 소전’은 역사 인물 발굴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드라마틱한 전개가 오히려 논픽션의 성격을 훼손한 감이 있다. ‘초당 강용흘’의 경우는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 검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들이 최우수작을 뽑지 못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