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꼰대’ ‘틀딱’ ‘연금충’… 부정적 존재로 낙인찍고, 조롱하고

[특집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칼이 되는 말, 도 넘은 노인 혐오 표현

  •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dchung@ehwa.ac.kr

    입력2022-01-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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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 혐오 표현 모욕과 경멸에서 나와

    •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사회성’ 얻은 혐오 표현

    • 댓글 조사하니…부정적 형용사가 노인 수식

    • “尹 지지자는 저학력 빈곤층 고령층” 정치권에서도…

    • 정치인·언론인 표현 주의해야

    •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2020년 4월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가 발표한 ‘2019년 노인혐오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50대 중 ‘우리 사회에 노인 혐오 표현은 존재한다’는 의견은 4점 만점에 3.17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GettyImage]

    2020년 4월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가 발표한 ‘2019년 노인혐오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50대 중 ‘우리 사회에 노인 혐오 표현은 존재한다’는 의견은 4점 만점에 3.17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GettyImage]

    한국을 설명하는 수식어 중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있었다. ‘동쪽의 예의에 밝은 나라’라는 뜻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을 외교적으로 잘 섬긴다 하여 붙여진 멸칭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과거 우리나라에 노인을 존중하는 경로사상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도래하며 노인의 권위가 상실되고 비생산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과 차별은 커지고 있다.

    부정적 낙인찍고 편견 만드는 혐오

    2021년 7월 2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노인들은 일상 속 여러 상황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응답자 중 20.8%), 식당과 커피숍을 이용할 때(16.1%), 병원 등 의료시설(12.7%) 등이다. 응답자 중 11.3%는 심지어 가족 내 주요 의사결정에서 무시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차별이란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을 이유로 부당하게 구별해 대우하는 행위를 말한다. 차별은 생각으로도 할 수 있지만 대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노인 차별과 노인 혐오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노인 혐오는 노인을 ‘증오’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노인 혐오 표현은 ‘노인을 특정해 노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경멸적 표현을 사용해 배척하거나,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 나아가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도록 선동을 옹호하는 표현’으로 정의된다.

    노인 혐오 표현은 노인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는 등 사회적 평가를 손상시킬 목적으로 사용된다. 노인에 대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단어나 문구를 포함하며 종종 노인 개인이나 집단을 비인간화하거나 그들을 향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반면 노인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에 차이를 두어 ‘우수 대 열등’이라는 대립 구조로 대상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노인 혐오가 더 경멸적이고 부정적이며 선동적이라 할 수 있으며, 노인에 대한 혐오는 차별이라는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

    과연 한국 사회의 노인 혐오는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일까. 노인을 향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적대감이 실존하는가. 혐오 표현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서 처음 문제가 제기된 것은 2010년 이후 ‘반(反)다문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대두하면서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에서 사용되는 혐오 표현이 사회적인 문제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후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표현도 확산하고 있다. 노인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發 혐오 표현 ‘일상성’ 얻게 돼

    ‘노인네’ ‘꼰대’라는 단어에 이어 노인이란 단어 뒤에 벌레 ‘충(蟲)’자를 붙인 ‘노인충’, 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라는 뜻의 ‘틀딱충’이라는 말이 생기더니 최근에는 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한 ‘할매미’, 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을 비하하는 ‘연금충’이라는 단어도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회건 혐오 표현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를 그대로 용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혐오 표현이 각종 언론이나 일상의 대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혐오 표현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일상성’ 더 나아가 ‘사회성’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노인 혐오 표현이 일부 언론이나 특정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스며들어 사회적으로 자리 잡는 건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다. 특히 미래세대인 10대·20대가 노인이 혐오 표현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개의치 않고 단순한 유머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쉽게 넘어가선 안 된다.

    각종 조사에서도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만연한 상황이 드러난다. 2020년 4월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가 발표한 ‘2019년 노인혐오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50대 중 ‘우리 사회에 노인 혐오 표현은 존재한다’는 의견은 4점 만점에 3.1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을 통해 온라인 콘텐츠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노인과 관련해 ‘힘든’ ‘무식한’ ‘이상한’ ‘불쌍한’ ‘부끄러운’ ‘한심한’ ‘뻔뻔한’ 등 부정적인 형용사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정치·경제 관련 이슈에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이 집중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응답자 70% 이상이 온·오프라인에서 노인 혐오 표현을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혐오 표현을 접한 뒤 부정적 표현을 자제하게 됐다는 척도도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인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나 수동적인 행동 방식을 보였다.

    정치권이 부추기는 노인 혐오

    2021년 11월 28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지지자들은 대부분 저학력 빈곤층 고령층”이라고 썼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뉴스1]

    2021년 11월 28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지지자들은 대부분 저학력 빈곤층 고령층”이라고 썼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뉴스1]

    온·오프라인에서 사용되는 노인 혐오 표현의 종류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 번째로 적대감을 고취하는 표현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노인을 낙인찍기 위해서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꼰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노인을 젊은이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찍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정신적 고통을 주는 괴롭힘의 표현도 있다. 노인을 모욕하고 비하·멸시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려는 표현이다. 노인에게 “냄새가 난다”거나 “집에 있지 노인네가 출근 시간에 뭐 하러 돌아다니냐”와 같은 예시가 있다. 이뿐 아니라 노인의 신체적 특성으로 이들을 괴롭히는 ‘틀딱’이나 ‘노망났다’ 등의 혐오 표현도 있다.

    혐오 표현은 노인에게 부당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노인을 ‘태극기 부대’로 표현하면서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극단적 보수주의자로 몰아가거나 ‘연금충’ 같은 표현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정의하는 식이다. 혐오 표현 중 가장 위험한 종류는 증오 선동인데, 폭력과 같은 구체적 행동을 조장하는 일이다. 증오는 역겨움을 동반한 강력한 부정적 감정이라 사회적으로 용인되기까지 일정한 과정을 거치는데 한국 사회의 경우 아직 여기까지 노인 혐오 표현이 도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권에서도 노인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2021년 11월 28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지지자들은 대부분 저학력 빈곤층 고령층”이라고 썼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2020년 21대 총선 과정에서는 김대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관악갑 후보가 “나이 들면 다 장애인”이라는 발언을 해 후보직에서 제명당하는 일이 있었다.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2004년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는 말로 특정 연령 이상의 유권자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노인네들이 시청역에 오지 못하게 엘리베이터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2012년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노원갑 후보)“는 등 과거 정치인들의 노인을 향한 막말이 현재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혐오 표현 반복하면 포털사이트서 퇴출해야

    2017년 3월 1일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2017년 3월 1일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노인 혐오 표현은 노인들의 자긍심을 떨어뜨리는 등 심리적 해악을 끼치는 인권침해다. 혐오 표현은 ‘그냥 말(only words)’이 아니라, 권력관계를 보여주면서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노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을 경험하게 되는 노인 처지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 공고히 하게 된다.

    특히 혐오 표현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차별을 유도하는 행동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 노인 혐오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공공의 안정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갈등을 조장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를 막기 위한 노인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노인 혐오 표현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감수성을 제고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 노인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면 사회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노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조장해 노인의 삶의 질을 낮추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인들이 혐오 표현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혐오 표현에 대한 지침도 필요하다.

    제도적 장치가 역시 뒷받침 돼야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노인 혐오표현을 차단하는 기술 개발을 한다든지 포털사이트 내에서 혐오 표현이 등장하면 경고 사인을 주는 방식이다. 경고를 몇 회 이상 받으면 포털사이트에서 자동 퇴출되는 등 재발 방지 대책도 고려해볼 만하다.

    청소년 및 청년들을 대상으로 세대 이해 교육을 어릴 때부터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물론 노인들을 위한 세대 이해 교육도 마찬가지다. 특히 당사자인 노인이 노인 혐오 표현을 듣거나 접했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노인들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대부분 노인들은 혐오 표현을 접했을 때 못 들은 척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수동적 태도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오늘 내가 하는 차별과 혐오가 미래의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되새겨 봐야 할 시점이다.

    #노인혐오 #혐오표현 #증오 #선동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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