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호

미스코시에서 더현대서울까지 우리를 황홀케 한 백화점의 미래

Luxurious 신세계 vs Innovative 현대 vs Friendly 롯데 바뀌어버린 세상에 응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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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2-09-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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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百가지 財貨가 무대 위에 오르는 상점

    • 아름다움을 향한 소유욕 간질이는 욕망의 공간

    • 30~50대 여성에게 쇼룸·아지트·쉼터

    • 1930년 미스코시 경성점이 우리나라 최초

    • 17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첫 백화점 탄생

    • 3大 백화점 연간 매출 29조8900억 원

    • 코로나19 이후 유통업계 ‘형님’ 백화점 위기

    • Z세대 각광받은 ‘더현대서울’ 같은 혁신 필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서울역사박물관]

    2021년 2월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틀을 깬 시도로 연매출 8005억 원을 달성했다. [현대백화점]

    2021년 2월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틀을 깬 시도로 연매출 8005억 원을 달성했다. [현대백화점]

    “환한 조명 속에 펼쳐진 건너편 미국 물품 매장 쪽을 나는 마치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듯 설레는, 좀 황홀하기조차 한 기분으로 바라봤다.”
    - 박완서 ‘나목’ 중


    1970년 마흔에 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작가 박완서는 6·25전쟁 당시 미8군 PX로 사용되던 국내 최초 백화점인 미스코시백화점(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 내 초상화부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미군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던 화가 박수근을 만났다. 박완서는 훗날 그를 모티프로 삶과 예술을 향한 열망 사이에 선 청년 화가의 고뇌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은 PX 간판을 내걸었지만 일부분 백화점으로서 기능하던, 시대의 아픔이 서린 공간이었다. 주인공 이경은 옛 영화를 간직한 그 건물에서 미국 물품 매장을 ‘황홀하기조차 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건물 밖에선 쉽사리 구경조차 할 수 없던 이국적 물품의 향연. 당시 스무 살이던 박완서 작가 역시 그곳의 오색찬란한 물품을 무대 위 환한 조명 아래에 선 주인공처럼 바라봤을 터였다.

    전쟁 통에도 오롯이 빛을 발하는 곳, 일상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빛깔과 자태의 물건이 환한 조명 아래 위용을 과시하는 곳, 그 압도적 분위기에 취해 어느새 지갑을 여는 곳이 바로 백화점이다.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탄생한 백화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전통 유통업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百가지 財貨가 무대 위에 오르는 상점

    소설에서처럼 백화점은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번쩍이는 육중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달라진다. 환한 조명 아래 다채로이 펼쳐지는 소비의 세계엔 특유의 고급한 향내가 가득하다. 시선이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원래 가려던 곳이 어딘지조차 잊은 채 이름 모를 값비싼 브랜드에서 젊은 점원에게 응대받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백화점은 인간의 여러 욕망 가운데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을 정확히 건드리며 매번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 명칭이 뜻하는 바와 같이 그러한 백가지 재화가 무대 위 배우들처럼 저마다의 개성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백화점을 대표하는 메이저 브랜드는 신세계, 롯데, 현대 세 곳으로 압축된다. 브랜드는 달라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고급스러움, 체계를 갖춘 구조 등 추구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백화점 내부는 일반적으로 지하1층 식품관, 지상 1층 화장품과 명품관, 2층 여성 명품, 3층 남성 명품, 4층 여성의류, 5층 남성의류 및 잡화, 6층 스포츠 및 아동, 7층 가구 및 전자제품, 8층 식당가 순으로 구성된다. 지역과 건물 형태 등에 따라 층별 구성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사람들이 찾는 물건들은 대체로 으레 있어야 할 곳에 있다.

    그렇다고 물건이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다. 백화점 측은 손님이 더욱 오랜 시간 머물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구매 목적을 잊고 정처 없이 구경하게 하려 내부를 미로처럼 복잡하게 배치한다. 또 창문과 시계를 없애 얼마나 머물렀는지, 몇 시인지조차 잊게 한다. 그 의도대로 사람들은 ‘구경만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할 때와는 다르게 출구를 나설 때에는 저마다 한 손에 쇼핑백을 쥐고 있다.

    백화점의 타깃은 주로 30~50대 여성이다. 남성은 대체로 필요한 물건을 빠른 속도로 구입하고 돌아서서 나간다. 반면 여성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가도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산 뒤 ‘마침 필요했는데 잘 샀다’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이들 30~50대 여성에게 백화점은 어떤 존재일까. ‘쇼핑’이라는 공통된 목적과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장소지만 백화점은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50대 여성에겐 무료한 일상에 활기를 더하는 쉼터, 40대 여성에겐 육아에 지친 나날을 벗어나게 하는 아지트, 30대 여성에겐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거대한 쇼룸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들의 일상 속 백화점은 대략 이런 모습으로 존재했다.

    사춘기 자녀를 둔 50대 주부 A씨에게 백화점은 일상을 보내는 쇼핑 공간이자 ‘쉼터’다. 그는 집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위치한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거의 매주 찾는다. 매년 VIP등급을 유지하는 터라 주차를 무료로 할 수 있지만 운동 삼아 지하철을 이용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백화점 입구에 당도하면 빨간색 일곱 개의 꽃잎 문양 로고가 그를 반긴다.

    1층 수입 화장품 겔랑 매장에서 바닥을 드러내 가는 크림을 대체할 신상품을 구경하고, 2층 명품 의류 로로피아나에서 F/W시즌을 맞아 새로 나온 가디건을 입어본다. 7층 남성정장 듀퐁에서 남편의 와이셔츠를 세일가에 구입하고, 11층 일식당 키사라에서 여고 동창들을 만나 식사한 후 VIP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 옥상정원 S가든을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A씨는 “자녀들이 커갈수록 역할이 줄어드는 걸 느껴 홀로 있는 시간이 무료한데 사람이 많은 백화점에 오면 활기가 느껴져 자주 찾는다”며 “좋은 물건을 사는 것만큼,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기분을 전환하는 일도 소중한데 백화점에선 그걸 동시에 할 수 있으니 항상 백화점을 약속 장소로 잡는 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쉼터이자 아지트

    자녀가 어린 여성에게 백화점은 ‘아지트’가 된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며 다섯 살 난 아들을 키우는 40대 주부 B씨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집 근처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찾는다. 아침 일찍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온라인으로 점찍어 둔 티셔츠를 입어보기 위해 3층 수입의류 이자벨마랑 매장을 방문한다.

    점심 무렵 등하원 길에 친분을 맺은 동년배 엄마들과 백화점 5층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고, 6층 하늘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육아 노하우와 교육 정보도 공유한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 1층 식품관에 들러 자녀 간식과 저녁거리를 사는 건 필수 코스다. 주말에는 백화점 내 문화센터에서 아들이 좋아할 만한 키즈 프로그램을 예약해 수업을 듣게 하고, 1시간 동안 아이쇼핑을 즐긴다.

    B씨는 “매일 육아에 시달려 얼굴이 푸석한 채로 지내다가 한껏 치장하고 백화점에 가면 숨통이 트인다. 점원의 깍듯한 서비스를 받으며 쇼핑하다 보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며 “아이를 낳고 뒤돌아보니 어린 시절 엄마가 왜 그렇게 백화점을 자주 갔는지 이해가 됐다”고 고백했다.

    30대 워킹맘 C씨에게 백화점은 ‘쇼룸’이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요즘, C씨의 백화점 연계 쇼핑 앱마다 위시리스트가 가득 차 있다. C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오후 휴가를 내고 일터인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서 비교적 가까운 명동의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을 찾는다. 5층에 위치한 이탈리아 명품 편집숍 10꼬르소꼬모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여러 명품 브랜드의 새 시즌 트렌드를 구경한다.

    그가 백화점을 찾은 진짜 목적은 제품의 실물을 확인하는 데 있다. 본점 3층 수입의류 산드로 매장에 들러 공식 홈페이지에서 봐뒀던 원피스를 입어보고, 사이즈를 확인한 후 다른 제품을 보는 척하며 빈손으로 나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할인율이 가장 높은 사이트에 접속해 백화점에서 입어봤던 원피스를 구입한다.

    C씨는 “온라인으로 보는 것과 직접 입어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확인 차 백화점을 찾는다. 또 돌아오는 계절의 새 트렌드를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다”며 “내일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온라인이 10~20%가량 저렴한데 굳이 백화점에서 정가에 구입할 이유는 없다. 백화점은 쇼룸처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오늘날의 백화점은 이 같은 다양한 고객 취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편의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백화점의 마케팅 전략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가 처음 선보였다. 봉마르셰의 창업자인 아리스티드 부시코는 당시로서는 혁명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새로운 형태의 상점인 백화점을 선보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소비자 중심 서비스 탄생, 봉마르셰

    170년 전 근대 백화점의 시초가 된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과 창업자 아리스티드 부시코. [Gettyimage]

    170년 전 근대 백화점의 시초가 된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과 창업자 아리스티드 부시코. [Gettyimage]

    1850년대 파리에는 명품 브랜드 샤넬, 에르메스 등 고전적 의류 및 잡화 부티크가 줄지어 영업했다. 실크, 가죽 등 값비싼 재료를 세계 각지에서 공수해 와 하나씩 공들여 만들다 보니 완제품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나를 팔아도 비싸게 팔아야했다.

    따라서 당시 파리에는 제품의 ‘적정 가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출간된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1883)에는 부티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이 “물건을 팔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팔고 싶은 걸 파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성공 비결인 것이지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백화점 탄생 이전의 파리 상점가에는 판매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가 물건에 하자가 있어 교환이나 반환을 요구해도 판매자가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한 비즈니스 형태에 혁신을 꾀한 이가 바로 부시코다. 봉마르셰 백화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창립 스토리에 따르면 부시코는 어린 시절부터 모자 장수이던 아버지 아래에서 일을 배웠다. 파리로 올라와 포목점의 판매원으로 일하던 부시코는 판매 메커니즘이 철저히 공급자 위주로 형성돼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불합리한 판매 방식을 개선하고자 1852년 봉마르셰를 설립하면서 최초로 ‘정찰제’를 도입했다. 백화점 이름을 ‘싼값’ ‘유리한 거래’를 뜻하는 ‘봉마르셰’라고 지은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백화점을 찾은 이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해 방해받지 않고 물건을 구경하고 고를 수 있도록 한 것도 부시코가 창안한 아이디어다. 또 하자가 있는 제품을 바꿔주는 ‘반품제’도 마련했다. 백화점 광고지를 만들어 모객을 시도했으며, 미끼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가 일단 백화점을 찾게 만들었다. 계절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은 제품들은 ‘할인가’에 판매했으며, 여름에 가을 코트를 진열하는 등 계절에 앞선 판매 방식을 취했다.

    부시코는 백화점 건물과 공간 연출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소비자가 꼭 물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 없이 시간을 쓰며 되도록 오래 백화점에 머물도록 한 것. 젊은 건축기사 에펠에게 의뢰해 천장을 유리로 만들어 빛을 한껏 받도록 옥상 정원을 만들었다. 그곳에 카페를 조성해, 무료 음악회를 열었다. 도서실·휴게실·미술관을 설치하고, 폐점 후에는 문화 강좌도 열었다. 또한 당시 파리에서는 드문 깨끗한 화장실도 마련해 소비자의 발길을 이끌었다.

    봉마르셰 백화점은 1984년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를 거느린 LVMH 그룹에 인수된 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까지 그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다. 부시코가 170년 전 틀을 갖춰 놓은 백화점의 판매 방식과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 등은 현재 세계 각지의 백화점에서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vs 화신백화점

    우리나라의 첫 백화점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섰다. 조선시대부터 은성했던 종로와 충무로, 일제강점기 이후 형성된 남대문로와 을지로에는 일본과 서양에서 넘어온 의복, 귀금속, 악기, 도서 등을 파는 상점이 즐비했다. 경성의 소비문화를 이끌던 번화가 한복판에 백화점이 들어선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작가 조경란이 2011년 출간한 에세이집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사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백화점의 원류는 경술국치 이전부터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대상으로 통신판매를 해왔던 ‘출장원 대기소’다. 이들은 상권 확대를 꾀하면서 당시 물건을 유통하던 미스코시 포목점과 협력해 1929년 미스코시 경성점을 세운다. 이후 경성부 청사가 지금의 서울시청 자리로 이전하면서 생긴 충무로1가 부지에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짓는다.

    그렇게 1930년 10월 24일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이 문을 열었다.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지하 1층, 지상 4층, 대지 면적 730평에 종업원만 360여 명을 채용한 당대 최대 규모의 상점이었다. 비록 일본인이 일본 자본으로 세운 백화점이지만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백화점임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백화점 내부를 층별로 한눈에 볼 수 있게 그린 ‘경성삼월신관안내’ 도면. 신세계그룹 신세계 백화점 본점. [조영철 기자]

    당시 백화점 내부를 층별로 한눈에 볼 수 있게 그린 ‘경성삼월신관안내’ 도면. 신세계그룹 신세계 백화점 본점. [조영철 기자]

    신세계 백화점 본점. [조영철 기자]

    신세계 백화점 본점. [조영철 기자]

    신세계그룹에서 운영하는 미디어 채널 ‘신세계그룹 뉴스룸’에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31년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에서 제작한 ‘경성삼월신관안내’ 도면을 보면 지하1층에서부터 옥상까지 층별로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다. 당시 1층에는 주류·음료·기호식품·공예품, 2층에는 침구·기성복·잡화, 3층에는 맞춤복·의류·도서·문구, 4층에는 귀금속·악기·가구·전자제품·그릇 등을 판매했다.

    백화점의 주고객은 상류층이었다. 판매원들은 한국인에게 한국말로, 일본인에게 일본말로 응대했다. 백화점 물산부는 각 도의 도지사에게 편지를 띄워 특산품과 희귀품을 추천받아 판매했다. 그렇게 공수한 나전칠기, 도자기 등은 전시 후 비싼 값에 판매돼 백화점 매출에 크게 기여했다. 대중적으로는 양말이나 넥타이, 화장품 등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상류층의 휴식공간으로 이름이 알려진 옥상정원은 커피를 마시는 이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모던보이로 잘 알려진 소설가 이상의 단편 ‘날개’(1936)에도 등장한다. 주인공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올라,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날개가 돋는 듯 겨드랑이에 가려움을 느끼며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외친 장소가 바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의 옥상정원이다.

    이렇듯 1930년대 백화점은 모던의 상징으로서 상류층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많은 인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배봉균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장은 신세계그룹 뉴스룸에 게재한 ‘근대의 아이콘, 한국 최초의 백화점’에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선진문화를 전파하는 문화 살롱이자 근대화 과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경성 최고의 명물이었다”고 설명한다.

    한국 최초의 백화점을 말할 때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과 함께 이름이 오르는 곳이 한국인이 최초로 세운 화신백화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이곳은 1890년 신태화가 민족자본으로 설립하고 금·은·귀금속을 전문으로 거래하던 화신상회를 원류로 한다. 그는 양복부, 일반 잡화부를 추가해 백화점의 형태를 갖춰나갔는데, 1931년 친일파 박흥식이 36만 원에 매수해 자본금 100만 원을 들여 3층 건물로 증축하고 화신백화점을 열었다. 이듬해 박흥식은 바로 옆의 동아백화점을 인수하면서 백화점을 키웠고, 전국 5개 대도시에 판매망을 갖춰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화신백화점은 1935년 위기를 맞았다. 백화점 인근 노점상에서 발생한 화재가 순식간에 번져 백화점 건물까지 불에 탔다. 1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화신백화점 대화재 속보’에는 “이번 대화재로 인하야 받은 손해는 상품 약 35만 원, 집기 약 10만 원으로 합계 45만 원에 달한다”고 기록돼 피해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흥식은 심기일전하고 2년 뒤인 1937년 11월 11일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3000여 평 규모의 화신백화점을 신축해 재개장했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까지 갖춘 최신식 건물이자, 한국인이 건립한 최대 규모의 건물이었다.

    대한민국의 최초의 백화점으로 늘 거론되는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일본인이 일본 자본으로, 화신백화점은 한국인이지만 친일파였던 박흥식이 설립했다는 점에서 뼈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시기 백화점의 태동은 현재의 백화점을 있게 한 모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후 백화점은 광복과 6·25전쟁, 산업화와 IMF,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등 역사의 흐름 속에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오늘날 백화점은 사람들의 소비문화 속에 의미 있는 공간이자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

    3大 백화점 연간매출 29조8900억 원

    1960~1970년대 생겨난 미도파·쁘렝땅·태평 등 여러 백화점 브랜드는 대부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경영난을 겪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브랜드는 롯데·신세계·현대 3곳으로 압축된다.

    전체 매출만 놓고 보면 롯데가 가장 앞선다. 2021년 기준 롯데는 11조7740억 원, 신세계는 9조6360억 원, 현대는 8조4800억 원 순이다. 3대 백화점의 연간 총매출은 29조8900억 원으로 집계된다. 점포 숫자는 롯데가 32개로 현대 16개, 신세계 13개를 압도한다. 점포별 크기는 신세계 센텀시티점이 19만8462㎡로 가장 넓고, 다음으로 신세계 대구점(10만3000㎡), 롯데 잠실점(10만3000㎡·에비뉴엘 포함)이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점포 수 대비 매출 실적은 신세계가 가장 높다. 단일 점포 실적만 놓고 보면 신세계 강남점이 지난해 국내 최초로 연매출 2조 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명품에 여윳돈을 쓰는 이른바 보복 소비가 늘어나면서 명품 시장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백화점 매출에 있어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 신세계 강남점은 이른바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을 모두 보유한 데다 각종 희소 명품 브랜드를 다양하게 입점시켜 매출 신장 효과를 누렸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1층 화장품 및 명품 부분 리모델링을 단행해 변화를 꾀한 것도 주효했다.

    명품 시장 성장에 따라 다른 백화점 지점들도 고르게 수혜를 보았다. 신세계 본점·센텀시티점·대구점, 롯데 본점·잠실점·부산본점, 현대 본점·무역센터점·판교점 등은 2021년 기준 단일 점포 연매출 1조 원을 넘긴 ‘1조 클럽’ 점포에 이름을 올렸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베이비디올. [신세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베이비디올. [신세계]

    3대 백화점은 저마다 고착화된 이미지가 있다. 신세계는 고급화의 선봉에 선 이미지를 갖는다. 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출점 계약 시 백화점의 매출은 물론 이미지까지 고려하는데 신세계는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사넬)를 모두 보유한 점포가 강남점을 포함해 본점, 부산점, 대구점까지 4곳으로 가장 많다. 반면 다른 백화점 브랜드들은 현대 압구정본점, 롯데 잠실점, 갤러리아 압구정본점 각 1개 점포씩이다.

    신세계 지점 가운데 2000년 오픈한 강남점은 특히 3대 명품 외에 크리스찬 디올·프라다·구찌·생로랑·발렌시아가 등 주요 명품 브랜드가 총집합해 있어 ‘명품 쇼핑에 최적화된 백화점’으로 인식된다. 또한 본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건물을 2007년 리모델링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킨 후 영업을 이어가고 있어 전통성과 고급함을 동시에 지닌다.

    ‘고급’ 신세계 vs ‘혁신’ 현대 vs ‘親서민’ 롯데

    현대는 강남구에만 압구정본점과 무역센터점까지 두 곳의 백화점을 운영하지만 모두 규모 면에서 작고, 입점 명품 브랜드의 종류도 다소 아쉬워 신세계에 비해 임팩트가 약했다. 그러나 2015년 판교점 오픈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당시 현대는 판교점 인테리어와 MD 구성 등에 사활을 걸었고, 그 덕에 언론과 세간의 조명을 받으며 백화점 평판을 크게 개선했다. 현대는 지하 1층 식품관에 미국 뉴욕 유명 베이커리 업체인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입점했는데, 이를 구입하기 위해 사람들이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뤄 1인당 구매 개수까지 제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현대는 지난해 또 한 차례 도약했다. 2021년 2월 여의도에 기존 백화점의 틀을 깬 ‘더현대 서울’을 오픈하면서 Z세대 공략에 성공한 것. 특히 3대 명품 가운데 한 곳도 유치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매출 8005억 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현대 서울은 오는 연말 개점 1년 만에 1조 클럽 입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현대는 더현대 서울을 통해 차세대 백화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전통적 유통업계를 혁신해 나가는 이미지까지 챙기게 됐다.

    두 백화점 브랜드에 비해 롯데는 친근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다. 점포 수는 3사 가운데 가장 많지만 두드러지게 이목을 끄는 지점은 타사 대비 손꼽기 어렵다. 강남구 대치동에 강남점이 있지만 규모가 작아 롯데 인천터미널점, 광주점, 울산점 등보다 매출이 적다.

    롯데월드타워. [롯데그룹]

    롯데월드타워. [롯데그룹]

    이런 이유로 강남권에서는 롯데 잠실점이 대표성을 띤다. 이곳 역시 1988년 개점한 뒤 개보수를 지속하며 명맥을 잇고 있지만 건너편의 롯데월드타워에 비해 고급스러움이 덜한 것은 사실이다. 2014년 롯데월드타워 내 명품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에비뉴엘이 들어서면서 잠실점은 명품 쇼핑 기능을 사실상 나눠 가지게 됐다.

    1979년 개장한 뒤 강북의 대표 백화점으로 신세계 본점과 쌍벽을 이루는 롯데 본점 역시 1990~2000년대 명동 부흥기 당시의 빛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중국인 관광객과 따이공(중국 보따리상)이 가장 선호하는 백화점으로 꼽혀 다소 복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내국인들이 쇼핑을 꺼리기도 했다.

    이러한 시장 평가에 위기감을 느낀 롯데는 지난해 말 정준호 대표를 포함해 신세계백화점 출신 임원을 4명이나 영입해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고급 백화점으로 도약을 꾀하고 있다. 정준호 대표는 올해 초 조직문화 개편을 시도하는 한편, 강남점 내·외관 리뉴얼을 통해 강남권 제1백화점으로 변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0년 새 온라인에 역전, 위기의 백화점

    이들 3대 백화점의 경쟁 상대는 이제 서로가 아니다. 오프라인 판매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 유통 기업인 백화점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입지를 확대해 온 기업에 꾸준히 도전을 받으며 생존의 기로에 섰다.

    2000년대 초반 움트기 시작한 온라인 유통시장은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보급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온라인 쇼핑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아지면서 소비자의 선택도 급격히 늘었다. 차츰 온라인 유통 기업은 백화점 및 오프라인 유통 기업을 위협할 만큼 소비시장에서 하나의 큰 축을 형성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유통업계의 무게중심은 온라인 쪽으로 기울어졌다. 온라인 유통 기업은 공산품부터 유통기한이 정해진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상품이 없을 정도로 영역을 확장했다. 오프라인 유통 기업도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온라인 채널을 강화하고 있기는 하다. 2022년 8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표한 ‘주요유통업체 매출동향’ 자료에서 ‘올해 상반기 업태별 매출 구성’은 온라인 쇼핑 비중이 48.6%로 가장 높다. 이어 백화점 18%, 편의점 15.9%, 대형마트 14.6%, SSM(기업형 슈퍼마켓) 2.9% 순이다.

    올해 초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백화점 매출이 크게 개선되리란 전망도 있었다. 실제로 백화점은 상반기 동안 해외 유명 브랜드(26.9%)와 아동·스포츠(26.3%) 부문 매출이 증가해 전년 대비 18.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됐던 온라인 쇼핑도 10.3%로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하며 실적 호조세를 이어갔다. 최근 2년 동안 온라인으로 넘어간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굳어진 것.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대해 “온라인을 통한 장보기와 화장품 구매 등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형성된 온라인 비대면 소비문화가 거리두기 완화에도 이어지면서 온라인 매출이 성장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백화점 위기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실적이 개선됐으나 여전히 명품 판매 의존도가 높고, Z세대 사이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20대들에게 ‘백화점의 이미지’에 대해 묻자 이러한 경향이 그대로 드러냈다.

    서울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영명(27) 씨는 “백화점은 엄마가 옷 한 벌 사준다고 할 때 따라가는 곳이다. 친구들끼리 쇼핑하러 갈 때도 SNS에서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팝업스토어를 가지 백화점을 약속 장소로 잡지는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쇼핑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개인 작업실을 운영하는 프리랜서 정시은(28) 씨 역시 “1년에 한두 번 명품 아이템을 사고 싶을 때나 부모님 선물을 사야 할 때 백화점을 찾기는 한다. 그러나 요즘엔 카카오톡으로 명품 선물을 할 수 있고, 온라인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많아 백화점을 갈 일이 없다”며 “심지어 올해는 한 번도 안 갔다”고 답했다.

    미래 유통 공간 되려면 ‘새로움’ 필수

    최근 수년 사이 백화점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있어왔다. 네덜란드의 미래학자인 바이난트 용건은 3년 전 출간한 저서 ‘온라인 쇼핑의 종말-리테일 혁명이 만드는 새로운 미래’에서 “전통적 재판매 업자(백화점)의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는 단순한 ‘판매와 구매’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소비자에게 정말로 가치를 부가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서서히 이동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화점 안에 온라인 및 오프라인 ‘숍 인 숍’ 시설물과 공간 제공,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인도해 주고 수령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부가적 역할 수행, 팝업스토어에서 VR 및 AR을 활용한 심도 있는 체험 제공 등 새로운 서비스 발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이난트 용건이 제안한 이러한 서비스가 2년여 지난 요즘 실제로 백화점에서 행해진다는 것. 백화점에서 입점 브랜드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주목받는 브랜드와 협업해 독특한 구조물을 설치한 팝업스토어를 열어 SNS를 통해 핫플레이스로 등극하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또 스마트폰 앱에서 구입한 물건을 백화점 매장에서도 수령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VR 기술을 이용해 팝업스토어를 체험할 수 있는 시도도 계속돼 왔다. 지난해 4월 프랑스 잡화 브랜드 롱샴은 롯데백화점 잠실점 매장을 온라인에서 VR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똑같은 형태의 디지털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미국 명품 브랜드 코치도 지난해 12월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에 팝업스토어를 설치하면서 이를 VR 가상현실로 구현해 이목을 끌었다.

    이 같은 서비스 혁신 이외에도 백화점이 쇼핑과 문화, 여가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던 부분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비 트렌드를 연구하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는 지난해 2월 현대백화점에서 오픈한 ‘더현대 서울’에 주목하고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2022)를 출간했는데 그 책에서 “뉴리테일 시대에 전통적 유통업은 미래 유통 공간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타깃 고객들이 ‘이곳은 나의 공간’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투사할 수 있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공간, 즉 ‘페르소나 공간’만이 소비자로 하여금 가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측면에서 더현대 서울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소비심리가 쪼그라들었던 지난해 2월 오픈하면서 명칭에서 ‘백화점’이란 타이틀도 빼버릴 정도로 ‘신개념 백화점’을 표방했다.

    ‘몇 시인지 알 수 없게 해야 쇼핑을 더 오래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백화점 상층부를 유리지붕으로 덮고, 중앙부를 뻥 뚫어 햇살이 1층까지 쏟아지게 했다. 중앙부에는 인공폭포를 형상화한 구조물을 설치해 마치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절정은 5층 정원인데 기둥 하나 없이 탁 트인 공간에 천연 잔디를 깔고, 수십여 그루의 나무와 다양한 꽃을 심었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새소리가 흘러나와 실제로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그래서 명칭도 ‘사운즈 포레스트’다.

    더현대서울 내부.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 내부. [현대백화점]

    개점 1년 6개월을 넘긴 더현대서울은 여전히 Z세대 핫플로 통한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해 보면 ‘더현대서울’로만 37만2000여 게시물이 뜨고, 연관어 해시태그까지 합하면 40만 건을 훌쩍 넘는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사운즈 포레스트가 가장 많은데, 백화점 내부 곳곳이 포토스폿이다.

    공간이 주는 신선함과 동시에 입점 브랜드가 주는 새로움도 성공 포인트로 작용했다. 오픈하기 전 현대백화점 임원이 직원들에게 ‘지하 2층은 임원들이 모르는 브랜드로만 채우라’고 특명을 내린 덕이다.

    앞서 ‘백화점은 엄마 따라 가는 곳’이라고 말했던 김영명 씨도 더현대서울을 말할 땐 “갈 때마다 새롭다”며 말투가 달라졌다. 그는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던 브랜드, 압구정이나 성수까지 가야 살 수 있던 힙한 브랜드를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좋다. 매번 신생 브랜드 팝업스토어가 열리니 구경하며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경하는 재미에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금, 백화점이 나아갈 길

    변화의 중심에 선 백화점업계 관계자들은 저마다 생존 전략을 세우고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과거 백화점은 ‘물건 판매’가 핵심이었다면 지금의 백화점은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고 그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일례로 코로나19 시기 디지털로 대전환이 이뤄졌는데, 앱에서 단순히 할인권을 뿌리는 게 아니라 그림 경매, 책 대여, 여행 안내 등 거의 포털사이트 역할을 하는 수준으로 브랜드 후킹(hooking) 요소를 만드는 데 사활을 거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탈(脫)백화점 전략이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백화점이 명품 입점과 VIP 고객 유치에만 혈안이라는 시각은 억울하다. 트렌드 변화를 최전방에서 살피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상품을 발굴해 입점하고, 소비자가 백화점에서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통적 오프라인 유통업체로서 근본 가치를 재고하는 것도 백화점이 가진 숙명이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마케팅학)는 ‘리:스토어 전략’(2020)이라는 책에서 “다시 방문하고 싶은 느낌을 갖게 하는 요인, 그곳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오프라인 리테일러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에 없던 새로움과 가치가 요구되는 오늘날, 백화점이 나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소비자는 지금도 또 다른 재미와 가치를 지닌 백화점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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