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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마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동물萬事㉕]

항우의 오추, ‘삼국지’의 적토 둘러싼 전설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적토마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동물萬事㉕]

  • ● 검은 용이 변해 말 됐다던 오추
    ● 주인 죽자 따라 목숨 끊어
    ● 웬만한 장수보다 유명한 삼국지의 적토
    ● 사실은 한혈마 계통의 총칭이었다는 설도
말의 수명은 보통 25~30년 남짓이다. [GettyImage]

말의 수명은 보통 25~30년 남짓이다. [GettyImage]

전쟁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한 명마를 거느렸다는 점이다. 마케도니아의 정복군주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에게는 부케팔로스가 있었고 중세 스페인 중부의 왕국 카스티야의 구국 영웅 엘 시드는 명마 바비에카를 탔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유명인이 타고 다니는 차가 유명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말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말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주인의 명성이라는 이야기다. 동양의 전쟁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당대의 장수보다 더 이름을 날리는 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나라 왕 항우의 오추마와 삼국지의 적토마다.

탄생설화까지 있는 항우의 애마 오추

초나라의 왕 항우와 그의 애마 오추. [박순철]

초나라의 왕 항우와 그의 애마 오추. [박순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으로 산을 뿌리째 뽑고 당당한 기세가 세상을 뒤덮는다. 중국 초나라의 왕 항우(項羽)의 이야기다. 항우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장수 중 하나다 

항우는 한고조 유방(劉邦)과 중원의 주인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끝내 패했다. 역사의 주인공은 유방이었지만 초한대전(楚漢大戰)의 주인공은 전장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항우라 보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그의 삶이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지만 항우는 살아생전 연인이라곤 절세가인(絶世佳人) 우희(虞姬) 한 명뿐이었다. 

우희와의 사랑 말고도 항우의 생애에 낭만을 더하는 소재가 있다. 초한쟁패기 당시 최고의 명마라고 손꼽히던 추(騅)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 항우본기(項羽本紀)에는 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본기는 항우 같은 왕의 기록을 남긴 글이다. “유미인명우(有美人名虞), 상행종(常幸從), 준마명추(駿馬名騅), 상기지(常騎之)”, 항우는 우미인과 함께했고 추(騅)라는 날랜 말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항우의 애마 추는 사람이 아닌 말이지만 자신만의 탄생설화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추는 원래 말이 아닌 용이었다. 이야기는 하늘에서 시작된다. 하늘의 검은 용(黑龍)이 검은 말로 변해 물가로 내려온다. 외모는 말의 모습이지만 사나운 성미는 하늘에서 용으로 살 때와 같았다. 



말이 된 용은 논밭을 횡행하며 작물을 짓밟고 다녔다. 말은 원래 사람이 타는 가축이다. 사람이 충분이 쫓아낼 수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말의 난동사건을 해결하겠다며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말이 사납게 날뛰면 대다수의 사람은 다칠까 두려워 쉽게 다가설 수 없다. 말은 가축이지만 용만큼 위험한 동물이다. 빠른 다리로 땅 대신 사람을 박차면 말에 치인 사람은 중상을 면하기 어렵다. 몇몇 사람이 검은 말의 난동을 막으려 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상처만 늘어서 돌아오는 사례가 늘자 사람이 가축을 두려워하게 돼 버렸다. 

영웅인 항우는 반나절 만에 천성이 흑룡(黑龍)인 말 등에 오른다. 그뿐만 아니라 완벽히 자신의 애마로 길들인다. 이 같은 전설은 세상을 뒤집을만한 힘을 가진 영웅이라면 평소 타고 다니는 말도 당연히 필부의 말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후세인에게 심어줬다.

주인 따라 스스로 목숨 끊어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Excalibur)를 뽑은 아서왕(King Arthur)의 전설도 추의 흑룡 전설과 비슷하다. 아서는 바위에 단단히 박혀 아무도 뽑지 못하던 검을 뽑으면서 예언에 있는 것처럼 브리튼(Britain)의 지배자가 됐고, 항우는 아무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추를 길들이며 초나라의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항우는 전장을 추와 누비며 전설적 영웅으로 거듭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마지막 결전인 오강(烏江)전투를 앞두고 항우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 항우는 자신이 아끼던 말까지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추를 전장에서 내보내기로 한다. 항우는 오강의 하급 관리인 정장(亭長)에게 추를 배에 태워 강 건너로 가라고 지시한다. 정장의 손에 이끌려 배에 오른 추는 항우가 사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주인에게 달려가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추는 다시는 거센 강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추는 검은 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후대 사람들이 추의 이름을 고쳤다. 까마귀 오(烏)자를 추 앞에 붙여 오추(烏騅)라 불렀고 이제는 이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까마귀의 윤기 나는 검은 깃털처럼 추가 새까맣다는 것을 강조한 이름이다.

고위층의 전유물이던 명마

항우 사후 400여 년 후 등장한 명장 여포(呂布)도 ‘적토(赤兎)’라는 이름의 명마를 타고 다녔다. 명마는 현재의 기준으로는 고급 승용차와 비슷하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여유가 있는 사람만 명마를 타고 관리할 수 있었다. 항우는 명문거족(名門巨族) 출신에 초나라의 군주였다. 여포는 항우처럼 왕위는 없지만 한나라 조정에서 역적 동탁(董卓) 척살의 공로를 인정받아 온후(溫侯)라는 작위를 받은 고위층 인사였다. 고대 중국에서 황제 아래 신분서열은 왕후장상(王侯將相) 순이다. 

온후 여포의 식읍은 당시 행정단위로는 하내군(河內郡)에 위치한 온현(溫縣)이다. 후한 시절 하내군은 지금의 경기도와 비슷한 크기의 넓은 땅이다. 제국의 수도 낙양(洛陽)이 있는 군(郡)이다보니 기군(畿郡)이라고도 했다. 후일 북송(北宋)의 수도가 되는 개봉(開封)도 하내군에 속한다. 온현은 제갈량(諸葛亮)의 북벌에 맞서 조위(曹魏)를 지켜낸 사마의(司馬懿)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여포의 붉은 말 적토는 ‘삼국지’에 나와 항우의 오추보다 더 유명하다.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兎)”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람 중에서는 여포가 최고, 말 중에서는 적토가 최고라는 뜻이다. 항우에게 오추가 있다면 여포에게는 적토가 있다. 

적토는 오추처럼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놓았다. 후한의 역사를 담은 ‘후한서(後漢書)’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에는 “포상어양마(布常御良馬) 호왈적토(號曰赤菟) 능치성비참(能馳城飛塹)”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포는 적토라는 좋은 말을 늘 타고 다녔다. 적토는 능히 성을 넘을 수 있었고 참호 위를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후한서는 붉은 토끼라는 뜻의 ‘赤兎’ 대신 붉은 호랑이라는 뜻의 ‘赤菟’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동물은 토끼였고 가장 용맹한 동물을 호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토마(赤菟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호랑이 같이 용맹한 붉은 말이라는 의미가 된다. 무엇이 됐든 간에 적토마는 군마에게 최고의 이름이다.

삼국지 주요 장면 빛낸 조연 적토

삼국지연의의 관우는 명마 적토를 타고 전장을 누볐다. [위키피디아]

삼국지연의의 관우는 명마 적토를 타고 전장을 누볐다. [위키피디아]

여포는 전장을 누빈 장수인 만큼 체구가 크다. 게다가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가볍지 않은 병장기를 들고 다녔다. 적토는 이렇게 무거운 주인을 태우고 책의 표현처럼 성을 넘고 참호 위를 날았다고 한다. 후한서가 사실이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마다. 

정사인 후한서와는 달리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적토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작가적 상상이 허용되는 소설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것이다. 연의에서 적토는 웬만한 장수보다 비중이 높다. 

연의 속 적토는 원래 병주목(幷州牧) 동탁의 말이었다. 동탁은 적토를 집금오(執金吾) 정원(丁原)의 수하 여포를 거두기 위한 뇌물로 활용한다. 집금오는 현재 수도방위사령관과 비슷하다. 이렇게 연의에서 적토는 여포가 동탁의 수하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후 적토는 여포를 등에 태우고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여포의 최후는 좋지 않았다. 서주(徐州)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적토를 수중에 넣은 조조도 동탁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말로 삼지 않고 적토를 회유 수단으로 활용한다. 

조조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관우(關羽)를 수하로 삼기 위해 적토를 선물하지만 조조의 의도와 달리 관우는 신세를 갚을 정도의 공훈을 쌓은 후 적토를 타고 유비의 품으로 떠난다. 이후 관우는 무성(武聖)으로 추대될 만큼 많은 군공을 세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존심이 높던 관우는 평소 우습게 여기던 동오(東吳)에게 급습을 받고 패전해 사망한다. 관우 다음으로 적토의 주인이 된 이는 손권(孫權)이었다. 하지만 손권도 적토를 직접 타지 않고 공을 세운 마충(馬忠)에게 선물로 준다. 하지만 적토는 영웅이 아니면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우를 잊지 못해 단식투쟁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적토에게 마충은 눈에 차지 않은 주인이었다.

적토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일 수도

서기 189년 여포는 적토를 선물로 받고 상관인 집금오 정원을 해치고 동탁에게 투항한다. 그리고 10년 후인 199년 조조 군에 체포돼 처형당하게 된다. 여포가 적토의 주인이었던 시기는 10년이나 된다. 말의 수명은 25년이니 10년은 일생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다. 

여포 사후 1년 후인 200년 관우는 조조에게 받은 적토를 타고 원소의 맹장인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척살한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다 오관육참의 전설을 남기고 유비의 군영으로 돌아간다. 20년 뒤인 220년 동오군에 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러니 소설 속의 이야기를 모두 진실이라고 가정하면 관우는 20년이나 적토의 주인이었다. 여포와 관우 두 영웅이 적토를 탄 기간을 합치면 30년이 넘는다. 말도 동물이므로 수명이 있고 노화를 겪게 된다. 30년간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말의 신체적 전성기는 보통 4~5세 가량이다. 말이 15세가 넘으면 군마로는 쓰기는 어렵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적토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적토는 특정 말의 이름이 아닌 붉은 한혈마(汗血馬) 계열의 말을 이르는 총칭일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르면 동탁이 여포에게 뇌물로 준 적토, 조조가 관우에게 선물로 준 적토, 손권이 마충에게 하사한 적토가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상상의 발로일 뿐이다. 전장에서 여포를 태우고 다닌 적토의 이후 행적은 확실치 않다. 그 누구도 진실을 모른다. 죽은 조조나 관우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신동아 2021년 4월호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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