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궁하면 중도실용’인가

  • 입력2010-07-01 12: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월드컵 축구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는 지방선거 참패의 쓰라림을 덮어주는 때맞춘 이벤트일 것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이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숨은 돌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과 그리스 전이 열린 6월12일, 몇몇 아침신문의 만평이 재미있다. 선거 패배에다가 늑장. 거짓보고에 사실조작까지 서슴지 않은 군의 실상을 드러낸 천안함사건 감사결과, 발목 잡힌 세종시·4대강 사업, 나로호 발사 실패,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연판장 사태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MB(이명박 대통령)가 ‘대한민국’(한겨레신문) ‘골… 골… 한 골만 더…’(중앙일보)를 외치는 그림이다. 풍자라고는 하지만 국면 전환을 바라는 MB의 간절함이 절절이 묘사되어 있다. 물론 대통령이 월드컵 축구로 시국의 위중함을 모면하려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알 일이거늘.

    오히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감사원의 천안함사건 중간감사결과 발표(6월10일)가 지방선거 이전에 나왔더라면 그나마 건진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도 야당에 넘겨주었을 위험성이 높았을 테니까.

    감사원은 이상의 합참의장이 천안함사건이 발생한 3월26일 밤, 술에 취해 국방부 지휘통제실을 비웠으며, 뒤늦게 복귀해 자신이 제대로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해군 2함대사령부는 사건 발생 6분 후인 오후 9시28분 천안함으로부터 1차 보고를 받은 뒤 해군작전사령부에는 3분 후에 보고했지만 합참에는 17분이나 지나 보고했다. 또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천안함 부근에 있던 속초함이 북상하는 물체에 격파사격을 하면서 북한의 신형 잠수함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음에도 합참 등에 보고할 때는 ‘새 떼’라고 하도록 보고라인의 담당자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기는 상황을 총괄해야 할 국방부도 마찬가지였다. 국방부는 관계규정에 따라 ‘위기관리반’을 소집해야 하는데도 소집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김태영 장관에게는 소집한 것처럼 허위보고를 했다. 사건 직후 침몰원인 규명과 관련된 동영상 공개과정에서는 말 바꾸기를 3차례나 했다.

    한마디로 군의 대응은 늑장보고와 거짓보고, 현장보고 묵살 등 ‘종합부실세트’였는 데도 이 대통령은 “초기 대응은 잘했다”고 했으니, 청와대는 군의 거짓보고에 속아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기망한 꼴이 되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군의 초동대처가 엉망이 되면서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정부의 최종발표까지 일부 의심받는 결과를 초래한 점이다. 국내에서조차 의심받는 결과를 중국이나 러시아가 흔쾌히 받아들일 리 있겠는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결의안을 채택하게 하려는 정부의 외교노력이 장애에 부딪힌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군의 한심한 초기대응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생때같은 우리 장병 46명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북한의 소행이 명백한 이상(정부 발표를 의심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사건 발생 초기 신중한 자세를 보였던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둥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지방선거 개시일인 5월20일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 발표를 하고, 나흘 뒤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대(對)국민담화를 한 것 등이 지방선거용 ‘북풍몰이’ 인상을 강하게 풍긴 점이다. 이른바 보수 대집결을 통한 선거압승 기도는 초반에 대단한 위력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북풍은 정권심판론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을 두려워한 젊은층을 야당 지지 쪽으로 결집시켰을 뿐이다. 정권 측은 그 평가야 어떨지라도 우리 사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자리 잡은 평화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천안함 조사결과를 인정하는 사람은 애국시민, 불신하는 사람은 친북좌파’라는 식의 냉전적 이분구도는 더 이상 씨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참패했고 민주당은 앉아서 횡재를 했다.

    ‘침묵의 나선형’이란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속성이 있어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견이라고 생각하면 그 의견을 드러내 고립되기보다는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 언론의 의견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의견은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 ‘숨어있는 민심’이다. ‘소수의 역설(逆說)’이란 이론이 있다. 응집된 소수가 이완된 다수를 이기는 역리(逆理)이다. 즉 똘똘 뭉친 소수의 의견이 흩어지거나 숨어버린 다수의 의견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특정 견해의 과잉(過剩) 대표성이 나타난다.

    이번 지방선거 전에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는 ‘침묵의 나선형’과 ‘소수의 역설’이 결합된 여론조사의 함정을 보여준다. 즉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응한 반면 그 반대인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침묵했던 다수는 투표소로 몰려가 자신의 의사를 표로 나타냈다. 그 결과 여론조사와는 엉뚱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주요언론이 공론장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언론이 숨어있는 민심을 찾아내 공론화했다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느긋하게 팔짱 끼고 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지방선거 결과가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명박 정권의 행보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할 것은 분명하다. ‘MB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일단 중도실용의 국정기조로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MB표 중도실용’이 여전히 효용성을 지니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야당과 비판세력이 줄곧 ‘소통 없는 강압통치’를 비난해온 터에 중도실용을 다시 내세운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올드 보수’를 절대적 지지기반으로 하는 MB의 운신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세종시와 4대강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부터가 난감한 문제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세종시 수정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킨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반대의견을 설득하고자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충남·북 도지사를 모두 민주당이 차지한 데다 선진당 소속의 대전시장 역시 ‘세종시 원안 고수’를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도 반대다. 선거에 나타난 충청 민심을 거스를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2012년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 승리도 보장할 수 없다. 현실권력의 문제가 아닌 미래권력의 이해가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세종시 수정이 ‘MB의 신념’이라 한들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국회에 수정안을 계류시켜놓은 채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시간만 벌려 한다면 충청민심이 가만있을 리 있겠는가. 더구나 지방권력도 넘어간 상태다.

    효율성과 지방균형발전의 두 가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에 대해선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수도 분할의 비효율성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수도 분할보다는 차라리 수도 이전이 낫다고 본다. 그러나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났다. 그렇다면 세종시 원안을 기초로 행정의 비효율을 완화하는 방안을 한 번 더 검토할 수밖에 없다. 그를 위해 대통령이 충남·북 도지사 및 대전시장 등과 만나 협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야말로 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소통의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이요, 중도실용의 국정운영이 아니겠는가.

    4대강 문제도 간단치 않다. 청와대 측은 “4대강은 이미 국회에서 결정해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생각도 확고부동한 듯하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생각은 당에 따라 상반된다. 한나라당 소속인 경기 경북 대구의 단체장들은 찬성이고, 민주당 소속의 충북 충남 전북 강원 단체장들은 반대다. 무소속의 경남은 반대고, 민주당 소속이지만 전남은 찬성이다. 낙동강은 자칫하다간 두 쪽이 날 판국이다.

    ‘궁하면 중도실용’인가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종교계를 비롯한 일부 학계, 시민사회 등의 반대가 거세다는 점이다. 일반 국민도 반대여론이 높다. ‘다목적 녹색뉴딜사업’이냐, ‘탐욕에 눈먼 성장주의의 발로’냐는 가치관이 충돌해 접점을 찾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제 무턱대고 밀어붙일 수 없게 된 것은 명백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은 사업의 내용에 앞서 여론 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MB식 리더십에 대한 반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4대강 사업을 동시 착공해 2년 만에 완공한다는 ‘속도전’에 대한 재검토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애초 수질이 가장 나쁘다는 영산강부터 시작해 공사과정의 시행착오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보완해가며 낙동강, 금강, 한강의 순으로 넓혀갔으면 지금과 같은 반대여론이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당은 하천 정비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사업의 성격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홍수는 4대강 본류보다는 지류와 소하천 등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4대강 사업 예산의 일부를 지류와 소하천 정비로 돌리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강에 따라 보(洑)의 개수와 준설의 깊이를 재조정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꾸준히 제기되는 대운하 의혹도 자연스럽게 불식되지 않겠는가.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위험하다. 지금은 효율성을 앞세웠던 개발독재 시대가 아니다. 민심에 역행하는 비민주적 리더십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에 대한 성찰(省察)이다. 본질적인 성찰 없이 ‘궁하면 중도실용’이라면 이명박 정권의 위기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