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명품 업체에 한국 시장은 ‘성장과 기회의 땅’이다.
- 한국 소비자는 명품에 우호적이며, 더 비싼 브랜드를 소비하려는 ‘상향 구매’ 성향도 높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컨설팅업체 맥킨지는 한국 명품 소비자의 심리와 구매 패턴을 분석한 보고서 ‘2010 한국 명품 소비자 서베이’를 발표했다.
- 한국의 명품 소비자 700여 명을 비롯해, 일본,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소비자의 설문조사 결과가 담긴 이 보고서는 기업은 물론, 일반 소비자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준다. ‘신동아’는 맥킨지의 협조를 얻어 보고서 전문을 공개한다. <편집자주>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
한국의 명품시장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명품 매출이 정체 혹은 침체 상태에 있는 일본·유럽·미국 시장과 달리, 한국의 고가 디자이너 의류 및 액세서리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한국의 대표적 명품 판매 채널인 백화점의 매출은 16.7% 신장했다. 이는 전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에 해당한다.
한국 내 명품 고객의 구매행태 및 심리에 대해 맥킨지가 최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한동안 명품 구매를 중단했다”고 한 응답자 대부분은 “명품 소비를 재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경기 회복 조짐과 함께 한국인들의 명품 소비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시장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글로벌 매출의 4%를 차지하는 한국의 명품시장은 이제 세계 명품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명품산업의 규모는 약 40억달러로, 패션과 관련된 총 지출의 15%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제 명품 소비는 한국인에게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 백화점 중 하나인 신세계에 입점한 해외 명품 브랜드 수는 2000년대 초 20개 미만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약 300개로 늘어났다. 이처럼 더욱 다양한 명품 브랜드가 한국시장에 소개되면서 브랜드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소비자의 쇼핑 행태 역시 점차 변화하고 있다.
명품 친화 성향과 피어 프레셔
맥킨지 조사 결과 한국 명품시장의 꾸준한 성장세를 견인하는 2대 요소는 한국인의 ‘명품 사랑’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동료 압력)’로 분석된다.
한국인은 그 어떤 문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명품 친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고가(高價) 제품 지출 규모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한 한국인 응답자는 전체의 5%에 불과했다. 반면 다른 선진국 응답자는 10~15%에 달했다.
매장뿐 아니라 레스토랑, 아틀리에, 갤러리 등을 함께 배치해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60~70%는 ‘명품 착용의 기능적 혹은 정서적 가치’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구매 증대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제품의 인지도 상승 및 유통 채널의 편의성 향상은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지목된 이유였다.
조사 결과를 카테고리, 소비자, 유통채널별로 나눠 살펴보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트렌드가 발견된다. 이는 종합적으로 한국 명품시장의 지속적 호황세를 보여준다.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시장의 명품 가방 및 구두 매출이 대폭 신장했다. 제품에 따라 매출 성장률이 10~30%에 달한다. 시계 및 보석류 역시 두 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명품 패션의류의 경우 매출 성장률은 5% 미만에 그쳤으며, 2008년 매출 수준에서 오히려 하락한 브랜드도 일부 존재한다.
한국 명품 고객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추세 중 하나는 ‘상향 구매’ 성향이다. 피혁 제품, 액세서리 및 시계, 보석류 제품의 경우, 한국인 응답자의 18~19%가 “최근 평소 구매하던 브랜드보다 더 고가의 브랜드를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평소보다 더 저렴한 브랜드로 하향 구매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패션의류 품목에 대해서는 “저가 브랜드로 하향 구매했다”고 밝힌 응답자가 상향 구매한 응답자 비율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패션의류는 피혁 제품이나 시계, 보석류만큼 신분 상징 기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하향 구매 의향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게 한 업계 전문가의 설명이다. 고가 의류 지출을 줄인 소비자 중 절반 이상은 “저렴한 브랜드도 충분히 좋은 수준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명품 백 매출이 증가한 이유
전통적으로 명품시장의 주 고객층은 40~60대의 부유층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고 패션을 통한 강한 자기표현 욕구를 지닌 20~30대가 새로운 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의 경우 20~30대 쇼핑객 비중이 2006년에는 35%였으나 2009년에는 44%로 늘어났다. 리테일 업체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높은 연령층의 소비자에 비해, 젊은층이 전체 소득 중에서 고가 의류 및 액세서리에 지출하는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명품에 가장 열광하는 소비자 층의 연령대는 18~24세 및 24~29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 구매는 정말 신나는 일이다”에 동의한 응답자 비중이 18~24세는 34%, 24~29세는 29%로 집계됐다. 반면 더 높은 연령층의 경우 20% 미만에 그쳤다. 또한 두 연령층은 모두 ‘브랜드 인지도’를 명품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명품을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두 연령층 모두 “명품 착용의 가치를 즐기게 되었기 때문” 혹은 “명품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루이비통을 보유한 패션그룹 LVMH나 구찌 등은 1000달러대의 ‘입문 제품(entry level item)’을 도입함으로써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코치와 같이 상대적으로 중저가인 명품 브랜드 역시 이러한 추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명품시장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신규 고객층은 바로 남성이다. TV, 인터넷, 인쇄매체 등의 영향으로 남성들은 이제 쇼핑을 더욱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명품시장의 주 고객층은 여전히 여성이다. 그러나 한 패션지의 통계에 의하면 여성 명품 구매자의 증가율은 12%에 그친 반면 같은 기간 남성 명품 구매자는 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간파한 백화점들은 패션에 민감한 하이엔드 남성 고객을 겨냥한 편집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명품 편집매장인 ‘슈와다담’의 공간을 확대해, 남성성과 희소성을 강조한 다양한 남성 명품 잡화를 판매하고 있다.
맥킨지의 조사 결과 실제로 남성들은 ‘채널 접근성의 증진’을 명품 구매 확대의 주 요인으로 꼽았다. 패션의류 소비자의 답변을 살펴보면 남성 응답자 중 73%가 명품 구매의 주된 이유로 “명품 구매가 더욱 편리해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반면 이를 가장 큰 구매 이유로 선택한 여성 응답자는 43%에 불과했다.
아웃렛과 온라인 채널의 급부상
백화점은 한국 소비자가 명품을 구매하는 가장 중요한 채널이다. 그러나 프리미엄 아웃렛과 온라인 숍 등 새로운 유통 채널이 최근 확대되고 있다. 이에 롯데, 신세계, 현대 등 한국의 대표 백화점들은 이러한 신규 채널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유통 채널 다각화를 통해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것이다. 한국시장에서 이들 3개 백화점의 명품 매출 점유율은 4분의 3에 달한다.
백화점은 쇼핑객과의 강력한 유대, 세일 및 특가구매 기회 제공,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한 비(非)금전적 인센티브 등을 통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명품 판매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백화점은 현금할인(cash rebate), 무료 주차권, VIP 라운지 이용권, 특별 사은품 등 다채로운 혜택을 제공한다. 응답자의 70% 이상은 2009년 한 해 백화점에서 명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은 광범위한 점포망과 전략적 위치 조건, 포괄적 상품 구색과 매장 구성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공략한다. 명품 브랜드 역시 백화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2009년 한 해 동안 판매된 명품 브랜드 ‘불가리’의 시계 중 60%는 백화점을 통해 판매됐다.
브랜드 부티크 매장은 여러 명품 브랜드가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유통 채널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관(外觀)에도 불구하고, 부티크 매장의 고객 방문율과 구매율은 백화점 대비 3~7% 정도 낮은 편이다.
한 명품 브랜드의 간부는 “부티크 매장의 경우 공간이 워낙 크고 인건비가 높아 사실상 큰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의 상징’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브랜드 부티크 매장이 제대로 기획·운영된다면, 매우 강력한 홍보·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2006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앞에 들어선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는 10층 건물에서 2개 층만을 매장으로 사용한다. 나머지 층은 레스토랑, 아틀리에, 갤러리 등을 배치했다. 이를 통해 에르메스만의 차별화된 경험을 소비자에게 선사한다.
프리미엄 아웃렛은 비교적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신규 판매 채널이다. 보통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지난 시즌의 상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명품 브랜드들을 파트너로 확보한 백화점들이 아웃렛 사업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론칭한 ‘리테일 포맷(retail format)’이 바로 이 프리미엄 아웃렛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국 소비자 중 “최근 12개월 동안 명품 구매를 위해 프리미엄 아웃렛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10%에 그쳤다. 그러나 현재 프리미엄 아웃렛은 괄목할 만한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2008년 문을 연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김해점은 지난 한 해 무려 155%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신세계는 올해 안에 두 번째 아웃렛을 경기도 파주에 개점할 예정이며 세 번째 매장은 부산에 열 계획이다.
전자상거래(E-commerce) 역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유용한 인터넷쇼핑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온라인 쇼핑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온라인 설문 응답자 중 40% 이상은 명품 구매를 위해 최소 1회 이상 온라인 채널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현재 명품을 소비하는 고객 중 35~45%는 과거에 비해 온라인을 통한 명품 구매가 늘어났다고 답했다. 단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품목 중심으로 온라인 구매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즉 온라인 구매 품목의 평균 단가는 약 50달러 수준인 반면, 오프라인 구매 품목의 평균 단가는 100달러 이상이다. 한국인 상당수는 진품 여부, 사이즈, 애프터서비스, 실제 제품 확인 욕구 등으로 인해 고가상품의 온라인 구매에 대해서 아직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편이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장세 및 다각화 추세를 감안하면 한국은 명품 브랜드 업체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다. 명품업체들이 한국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자 한다면 다음 요소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아르마니의 전략
한국시장에서 ‘입문 제품’의 도입을 통해 신규 고객층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스토리를 강조하면서 명품으로서의 명성과 위상이 희석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폭넓은 소비자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보급형’ 품목을 출시하는 것은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칫 너무 대중적이거나 일반적인 브랜드 라벨로 인식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국인은 명품 제품의 하향 구매보다는 상향 구매 성향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품 의류 브랜드 중 하나인 아르마니의 전략을 보자. 이 브랜드는 가장 대중적 고객층을 먼저 공략한 뒤 소비자가 엠포리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콜렉지오니, 마지막으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블랙라벨까지 상향 구매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유도한다. 에르메스 역시 명성과 높은 가격대는 유지하면서도, 지갑이 얇은 젊은 고객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500달러 미만의 팔찌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 높은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는 경기 여주 신세계 첼시 프리미엄 아웃렛.
에스티 로더나 프레쉬 같은 명품 코스메틱 브랜드는 고객의 신용카드 뒷면에 멤버십 바코드가 내장된 소형 스티커를 부착하는 방식을 활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DKNY 등 일부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는 초대받은 고객만 입장할 수 있는 파티나 한정판 세일 행사를 열어 멤버십 혜택의 매력을 부각한다.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명품 브랜드 역시 자체 부티크 매장 운영부터 온라인 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매 채널에 대한 관리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온라인 채널의 경우 한글로 구축된, 품위 있는 웹사이트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명품의 경우 무엇보다 제품에 대한 시각적 소개 및 상세한 설명이 중요하다. 즉 높은 수준의 제품 사진과 정확하고 자세한 제품 설명을 반드시 게재해야 한다.
브랜드 웹사이트는 고객이 특정 상품 및 브랜드에 대한 상세 정보를 얻기 위해 찾는 첫 관문이다. 따라서 잡지 광고나 플래그십 매장을 만들 때만큼 탄탄한 기획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패션잡지 ‘엘르 코리아’가 론칭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엘르 앳진(Elle Atzine)’은 소비자가 오프라인 명품 매장을 방문하기에 앞서 상품을 먼저 확인하는 필수 사이트로 급부상하고 있다. 엘르 앳진은 잠재적 고객에게 3차원(3D) 쇼룸을 제공함으로써 실제 매장에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7월 현재 구찌, 버버리, 쇼메 등 26개 주요 명품 브랜드가 엘르 앳진 내에 가상매장을 열었다. 100개 이상의 패션 및 화장품 브랜드가 엘르 앳진 입점을 통한 제품 홍보를 계획하고 있다. 엘르 앳진은 현재 3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상태다. 최근 삼성 갤럭시폰 등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인 ‘앳진 모바일’도 론칭했다.
한국시장에서 명품 브랜드들은 다른 선진국 시장과는 사뭇 다른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명품 소비자층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신규 채널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명품 브랜드에 한국시장은 실로 막대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