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맞물리면서 노후를 지지할 수 있는 자산을 어떻게 마련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과 함께 노후 대비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개인연금에 대해 살펴봤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한 근로소득자의 노후를 위해 등장한 것이 퇴직연금이다. 올해는 달라진 제도에 따라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는 기업이 많아, ‘개인퇴직계좌’에 정산된 퇴직금을 예치하려는 금융권의 발걸음이 바쁘다. 내년에는 자영업자나 회사가 운영하는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도 가입할 수 있는 ‘개인형 퇴직연금’시장이 열려 퇴직연금의 판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소득공제냐 연금소득세 면제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해결되지 않는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시중에는 다양한 개인연금 상품이 나와 있다. 한시라도 빨리 가입해야 이득이라고 하지만, 종류가 많고 설명이 복잡해 마냥 뒤로 미루는 사람이 많다. 언제 받을지 까마득한 연금보다는 당장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투자 방법을 택하려는 심리가 더 강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건 이제 노후는 스스로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는 시대에 고령층은 늘어나고 청년층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연금을 준비하고 그 연금에 기대어 노후를 보내는 것이 속 편하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직장인은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라도 연금 상품 하나쯤 들어둔 경우가 많다. 월 25만원씩 납입하는 연금 상품에 가입하면 연간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제 적격’이라고 하는 이런 상품에는 은행에서 판매하는 연금신탁과 증권사의 연금투자신탁(펀드), 그리고 보험사에서 흔히 연금저축보험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 모든 금융기관을 합산해 분기별 납입금 300만원까지 가입 가능하고, 연간 최대 300만원 한도 내에서는 100% 소득공제를 해준다.
가입자를 헷갈리게 하는 상품으로는 생명보험사에서 판매하고 소득공제 혜택이 없는 세제 비적격 연금보험과 변액 연금보험이 있다. 이런 상품들은 당장의 소득공제 혜택은 없지만, 5.5%의 연금소득세를 면제받게 된다. 가입한 지 10년이 지나면 주민세를 포함한 이자소득세 15.4%도 비과세된다.
지금의 소득공제와 훗날의 소득세 면제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소득공제 한도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합해 연간 300만원이어서 퇴직연금에 따라 개인연금은 소득공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총 600만원이 넘는 연금소득은 종합소득 신고대상이다. 자신의 종합과세표준액에 따라 세제 적격과 비적격 상품 사이에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 공제 가능한 금액을 제외하면 연봉이 그리 많지 않은 소득자는 세제 비적격 상품이 나을 수 있다.
하나대투증권 상품기획부의 이순규 차장은 “세제 적격 상품은 중도 해지해서는 무조건 손해를 보게 되므로, 신중하게 연금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도해지 시에는 소득공제를 받았던 금액과 발생 이익에 주민세 포함 기타 소득세 22%를 내야 하고, 5년 내에 해지하면 납입액의 2.2%에 해당하는 만큼의 가산세와 주민세가 붙기 때문이다. ‘소득공제 되는 금융 상품은 이제 연금 상품밖에 없다’는 선전 문구에 혹해 덥석 가입할 일은 아니다. 또한 종류를 막론하고 연금 상품은 반드시 해지하지 않고 유지한다는 마음을 다져야 한다. 중도 대출 가능, 해지 후 원금 보장 등 안전장치가 붙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반드시 바람직한 연금 상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채권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은 연금신탁은 수익률이 낮아도 안정적이고, 주식 등 투자 대상을 달리할 수 있는 연금펀드는 기대 수익률이 높다는 것이 가장 흔한 설명이다. 그러나 추후 수익 혹은 손실이 얼마나 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가입자의 책임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공시 이율과 변액 상품
연금보험에는 공시 이율대로 받는 일반 연금보험과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결과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변액 연금보험이 있다. 교보생명의 ‘교보 100세 연금보험’은 공시이율을 적용하는 상품이다. 공시이율이 낮아져도 10년 미만까지는 연복리 2.5%, 10년 이상은 연복리 2.0%를 최저 보증하도록 설계됐다. 본인 생존 시에만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 후에도 100세까지 상속인에게 연금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만 15세부터 70세까지 가입할 수 있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45세부터 80세까지에서 선택할 수 있다.
같은 회사의 ‘교보 100세 시대 변액 연금보험’은 이름 그대로 변액 연금보험 상품이다. 대개의 변액 연금보험처럼 가입자의 손실 우려 없이 한번 오른 연금액은 납입액의 일정 수준까지 지급을 보증한다. 이 상품의 특징은 연금 지급 개시 이후, 즉 연금을 타는 기간에도 투자를 계속해 수익을 더하는 ‘실적 배당형 종신연금’이라는 것이다. 연금 지급 개시 이후에는 공시이율을 적용하는 변액 연금보험과 차별되는 점이다. 연금을 받는 도중 사망하게 되면 남은 적립금을 상속인이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코리아인덱스 혼합형, 글로벌인덱스 혼합형, 단기 채권형, 채권형 4가지이며 주식을 편입할 수 있는 비중은 연금 수령 개시 이전 50%, 이후에는 30% 이내로 되어 있다.
미리 가입해야 복리 효과 누려
‘교보 100세 시대 변액 연금보험’은 연금을 타는 기간에도 투자를 계속해 수익을 더하는 ‘실적 배당형 종신연금’이다.
연금 지급 형태에는 종신형, 상속형, 확정형이 있다. 연금 상품은 납입할 때는 없는 돈인 것처럼 잊고 지내다, 지급 개시 이후에는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 제일이다. 노후 생활을 보장한다는 연금 본연의 목적에 가장 합당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신형 연금 상품은 생명보험사에서만 판매한다. 신탁이나 펀드, 손해보험사의 연금저축 보험은 5년, 15년, 20년 등 지급기간이 정해진 확정형 상품이다.
대개의 금융상품이 일찍 가입할수록, 다시 말해 시간을 길게 가져갈수록 나중에 받는 금액이 크다. 연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종신형은 가입기간이 길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이 높을수록 납입은 적게 하고 연금은 많이 지급받게 된다.
교보생명 광화문 재무설계센터의 이종인 웰스매니저는 “나중에 여유 생길 때 가입하자고 미루기보다 소액이라도 미리 들어야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죽을 때까지 상당한 연금을 받고 싶다면, 일찍 준비하는 것이 정답이다.
상속형은 상속세를 줄이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입자가 살아 있는 동안 연금을 조금 받는 대신 상당액을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이점이다. 상속할 현금 자산이 많은 자산가는 일찍 상속형 연금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괜찮은 방법이다. 종신형이나 확정형에도 가입자가 일찍 사망하는 경우 상속 등을 통해 지급을 보증하는 상품들이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써프라이스(Surprice)’ 연금형 상품 2종을 판매 중이다.
모두에게 다 좋은, 언제든 자신 있게 가입 권유를 할 수 있는 연금 상품은 없다. 각자 처한 상황과 목적에 맞게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일례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액만큼까지만 세제 적격 확정형 상품에 가입하고, 그 이상의 여유자금은 세제 비적격 종신형 상품에 불입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55세부터 몇 년간은 확정형 상품에서 연금을 타고, 경제활동이 어려워지는 몇 년 후에는 종신형 변액 연금보험이 목돈으로 불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연금을 개시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연금 상품의 가입 원칙은 미리 준비하고 평생 지급받는 것이지만, 맘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은퇴가 코앞에 닥쳤는데 준비해둔 연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즉시 연금’ 상품이 있다. 이 상품은 목돈을 쥐고 은퇴한 가입자가 이용할 만한 상품이다. 연금 상품은 아니더라도 은퇴 후 정기적으로 소득을 발생시킨다면, 그 역시 노후에 적합한 금융 상품일 것이다. 물가상승률과 투자수익률을 고려해볼 때, 연금을 중심으로 기타 투자 수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충고다.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투자 상품
하나대투증권은 ‘써프라이스(Sur-price)’ 연금형 상품 2종을 판매 중이다. 상품명은 각각 ‘하나UBS 실버오토시스템 월분배식 주식혼합형 펀드’와 KOSPI 2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월 지급식 원금보장형 ELS’다. 전자는 펀드에 가입한 후 매달 투자금액의 0.5%를 분배금으로 지급받는 형식이다. 만기는 5년 이상 연간 단위로 지정할 수 있고, 해지나 만기시에는 잔여 원금에 이익 내지 손실이 난 금액을 계산해 상환받게 된다. 주식에 60% 이하, 채권에는 50% 이하를 투자하도록 돼 있다. 상품 가입 최저 금액은 5000만원 이상이다. 후자인 월 지급식 ELS 상품은 가입 이후 매월 투자원금 대비 0.385%(연 4.62%)의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전자와 달리 원금이 보장되는 것이 장점이다. 만기는 5년이며, 5000만원 이상 100만원 단위로 맡길 수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채권을 이용한 연금형 투자를 권한다. 지난해 출시된 이후 70억원이 판매된 상품이다. 최초 채권 매입을 통해 매달 확정 금리의 수입을 얻고, 나머지 금액은 만기에 맞는 채권에 투자한다. 가입금액은 1억원, 가입기간은 2년에서 5년이다. ‘리빙 파트너(Living Partner) 특정금전신탁’도 추천 상품이다. 월, 분기, 반기, 연 등 고객이 원하는 주기에 맞춰 국공채, 예금, 원금보장 ELS 등에 자산을 편입해 그 결과에 따라 이자를 지급한다. 3억원 이상 계약기간 5년인 상품이다.
현재와 같이 상품이 난립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개인연금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자신에게 필요한 노후자금 가운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수령액을 예상해본 뒤, 나머지 부족분을 보충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좋다.
새롭게 등장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일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개인연금에다 가외의 투자 상품까지 고려해야 하니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길이 첩첩산중이다. 게다가 ‘연금’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금융 상품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기도 하다.
상품마다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금융사들은 저마다 자사에서 출시한 상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소개하고 있어 현기증이 일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말에 현혹돼 섣부르게 휩쓸리는 것 역시 금물이다. 노후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줄 노후자금은 결국 스스로 불리고 지키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