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음은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 경영 원칙
- 서울상상나라, 꿈아띠체험관 등 200여 개 시공
- 연구소 설립, 어린이공간디자인학교 운영
- 통합발주는 수직적 갑을관계 양산, 분리발주가 대안
- ‘건설 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종별로 하도급을 받아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야말로 우리나라 건설 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주)디브이씨는 인테리어부터 상업·주택·오피스 디자인, 전시 디자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공간 디자인 회사다. 1999년 4명으로 창업해 연 매출액 200억 원이 넘는, 국내 4500여 개 실내건축공사업체 중에서 100위 안에 드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학구파 CEO
디브이씨는 외형보다 내실이 더 알차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에서 올해를 비롯해 4차례나 우수디자인전문회사로 선정했다. 2011년 한국실내건축가협회 골든스케일어워드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선정됐다. 품질경영시스템인증(ISO9001:2008)도 2012년 획득했다.
디브이씨를 이끄는 성정아(47) 대표는 실내건축공사업계에서는 드물게 디자인을 전공한 여성 경영인이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그는 현재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공간디자인과 박사과정을 밟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사)한국실내건축가협회 상임이사, (사)대한전시디자인학회 전시기술위원회 위원장,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 서울대표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는다.
▼ 공간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인 1989년, 나고야 디자인엑스포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별천지, 신세계였다. 졸업 후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대전엑스포 전시 디자이너 구인공고를 보고 ‘이거다’ 하고 지원했다.”
▼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창업한 이유는.
“7, 8년 하니까 에너지가 다 소진된 느낌이 들어 재충전을 위해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졸업 무렵 졸업작품 삼아 오피스 디자인 일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동기 4명과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일을 끝내고 돈을 받는데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돈을 받기 위해 창업을 한 셈이다. 그게 1999년 말이었다.”
그의 첫 작품이 썩 괜찮았던지 여기저기서 요청이 들어왔다. IMF 외환위기 시절, 잇따라 기업이 도산하고 실직자가 넘쳐났지만 벤처기업계는 반대로 활황이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벤처기업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사무실 실내디자인 일감이 줄을 지었다.
“아무 준비 없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매출이 늘어나자 회계사무소에서 절세를 위해 법인화를 권했다. 그래서 2003년 법인화했다.”
▼ 성공 요인이 있다면?
“이왕 하는 거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책임질 일이 늘어났다. 처음엔 설계만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영 엉뚱하게 나와 의뢰인에게 감리권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현장 감리를 갔더니 시공업체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말을 안 들었다. 우리가 어려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결국 퀄리티를 지키기 위해 2001년경부터는 설계는 물론 시공까지 직접 다 했다. 그러다보니 직원이 점점 늘어났다.”
주로 공공기관 전시시설 수주
▼ 경영 원칙이 있다면.
“회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게 ‘어음은 절대 발행하지도 받지도 않겠다’였다. 그래서 종합건설사들과는 일을 안 했다. 만약 민간 기업이나 종합건축사무실의 일을 했다면 2008년 금융위기 때 어음부도로 무너졌을 것이다.”
▼ 그럼 일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벤처 창업 붐이 수그러들면서 오피스디자인 의뢰가 많이 줄었다. 그래서 협력회사란 이름으로 대기업 디자인 파트너로 일했다. 이런 일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이라, 일감은 지속적으로 들어오지만 회사를 알릴 수 없었다. 특히 KT본사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T샘’(현재의 올레스퀘어)은 우리가 실시설계·시공했지만 계약자가 아니어서 우리 이름 한 줄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이름을 걸고 일을 하고 싶었다. 2008년 ‘대한주택공사 대전충청권 국민임대주택 홍보관’ 현상공모에 참여했는데 덜컥 당선이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전시 분야 업체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 공공기관 전시시설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나 공공기관의 전시홍보 프로젝트 입찰에 참가해 수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해도 영업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보다는 비교적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곳에서 평가받고 싶었다. 처음엔 매출 비율이 인테리어 90%, 전시 10%였다면 2008년을 기점으로 역전되기 시작해 지금은 전시가 90%, 민간 일이 10% 정도다.”
지금까지 디브이씨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새만금지구 산업단지 홍보전시관,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주제관 및 한의학 박물관, 경남 거제시 칠천량해전공원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국립전주박물관 등 200여 개에 달한다.
▼ 대표 작품을 꼽는다면.
“다 애정이 가서 어느 하나를 꼽기가 힘들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어린이 관련 프로젝트에 강점이 있다보니 능동 어린이대공원 옆에 있는 서울상상나라, 국립중앙과학관 꿈아띠체험관 등을 우선 이야기할 수 있다.”
어린이공간디자인연구소
디브이씨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2008년부터 연구소를 운영해왔다. 연구소에선 어린이를 주제로 한 디자인을 연구한다. 2009년부터는 어린이공간디자인학교도 운영한다.
“회사 특성상 여직원이 더 많은데, 능력이 있는데도 대부분 결혼하면서 육아문제 등으로 회사를 떠난다.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래서 상근은 힘들어도 연구소에서 탄력근무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연구원들이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이다보니 공통 관심사가 아이였다. 처음부터 어린이와 디자인을 주제로 잡은 이유다.”
▼ 2008년이면 세계 금융위기로 힘들 때인데, 매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연구소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남이 시키는 일만 했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초창기 남이 연결해주는 오피스 디자인만 하다 일감이 줄어드니까 막막하더라. 늘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출 중심의 경영자였다면 영업에 더 투자하지 연구개발(R&D)에 투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라 더 좋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정이 더 컸다.”
▼ 연구소를 만든 효과가 있다면.
“연구소는 우리 회사의 브레인, 심장부라 할 수 있다. 공모에 응하거나 제안을 할 때 다른 업체에선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것도 연구소 덕분이다. 진주어린이디자인체험관, 울산유아교육진흥원, 전북 소방안전체험센터, 국립전주박물관 내 어린이박물관,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 등은 연구소가 없었으면 수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어린이공간디자인학교는 어떤 건가.
“어린이들이 스스로 공간을 꾸미고 만들어 창의력과 협동심을 키우는 워크숍 프로그램이다. 어떤 틀을 주고 아이들이 그걸 만들도록 하는 게 아니라, 주제만 던져주고 아이들이 상상한 걸 스스로 힘을 합쳐 만들게 한다. 아이들 스스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거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자체 프로젝트를 개발해 일반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예를 들면 테마의 거리를 만드는 거다. 더는 비밀이다. 일을 하러 전국을 다니며 느낀 게 서울과 달리 지방은 구도심 공동화가 심하다. 그런 곳에서 좋은 사업을 해보고 싶다. 또한 어린이공간디자인 잡지를 만들 계획이다. 그동안 연구소에서 축적한 자료와 역량을 잡지를 통해 어린이,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싶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느낀 가장 큰 애로점을 묻자 성 대표는 입찰 제도를 들었다.
“조달청 입찰 방식의 경우, 높은 가격점수 비율(20%)로 업체 간 가격경쟁이 벌어져 저가 수주 문제가 심각하다. 기술평가 전 제안서와 가격을 제출하는 상황에서 가격점수로 불이익을 보지 않으려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가 수주를 하면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발주자가 사업예산을 적정하게 책정했다면 가격평가 없이 기술평가만으로 업체를 선정하거나 가격평가를 최소화해야 한다.”
디브이씨가 만든 국립중앙과학관 꿈아띠체험관(왼쪽)과 칠천량해전공원.
기술능력보단 가격점수
그는 또한 “전시시설물 제작설치 등 문화시설 관련 사업의 경우 건축 분야와 전시 분야를 분리해서 발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건축 분야 중심으로 통합발주가 이뤄져 원활한 사업 수행과 사업예산 편성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
전문성과 기술력을 갖춘 디브이씨조차 분리발주 확대를 주장할 정도로 통합발주는 전문건설업체 전체에 큰 피해를 준다. 통합발주는 발주자가 공사 전체를 하나의 원도급 업체에 일괄 발주하는 방식이다. 원도급사는 전체 공사를 종합적으로 계획·관리·조정하고, 전문건설사들은 하도급사가 되어 공종(工種)별로 공사에 참여한다. 발주처-원도급사-하도급사로 이어지는 수직적·종속적 체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반면 분리발주는 발주자가 전체 공사를 공종별로 시공 능력을 가진 전문건설업체와 나눠 계약하는 방식이다. 통합발주에선 하도급사일 수밖에 없던 전문건설사도 발주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 원도급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지금까지 통합발주를 고수해왔다. 국가가 발주하는 공공공사조차 원칙적으로 분리발주를 금지한다. 통합발주라는 발주-원도급-하도급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다단계 공사구조는 수직적 갑을관계에 의한 불공정 거래나 부조리를 양산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거래비용으로 인한 공사비 누수, 저가하도급 등 여러 병폐를 낳고 있다. 발주자 처지에서도 공사의 종류와 특성에 따른 적합한 발주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제한돼 선진화된 건설공사 입·낙찰제도 정착에도 걸림돌이 된다.
건설업계는 “경직된 통합발주 방식을 탈피해 분리발주나 주계약자 공동도급제 등 수평적 발주생산체계를 활성화해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가 수직적 갑을관계가 아닌 수평적 협력관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수직적 도급생산방식에 따른 불법·불공정 하도급 행위 원천차단,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공사비 누수 방지 및 이를 통한 시공품질 제고, 경쟁력 있는 중소·지방건설업체 육성을 통한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 발주자 역량 강화를 통한 공사 목적물 품질 제고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선진국은 분리발주 활성화
유호선 숭실대 교수는 “갑을 간의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공정 하도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최선의 대안은 수평적 발주, 생산체계를 통해 갑을관계가 생겨나는 것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분리발주”라 말한다.
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리발주는 이미 전기, 통신, 소방, 설비공사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공사용 자재, 폐기물 처리 등에 시행되고 있으며, 종합건설업계의 주장처럼 큰 문제도 없고 잘 운영된다. 오히려 하도급 불법행위 근절, 부실시공 방지, 예산 누수 방지·효율성 제고, 중소기업 육성 등 많은 장점이 확인되었다”고 강조했다. 분리발주는 이미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활성화돼 있다.
박근혜 정부도 지난해 5월 28일 발표한 ‘140개 국정과제’에 대규모 계약의 분할 분리발주 법제화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종합건설업계의 반대 등으로 추진 의지가 약화되는 모습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건설공사 잘못에 대한 책임 소재 불분명 등 부작용을 들어 제동을 건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30일 기획재정부에서 분리발주 법제화와는 별도로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해 분리발주 활성화를 위한 숨통을 열어주었다. 현행 분할계약 금지의 예외조항을 확대한 것.
이종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는 중소기업과 하도급자 같은 경제적 약자도 공생 공존할 수 있는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다. 분리발주 법제화를 통해 현재의 수직적·종속적인 건설발주와 생산체계를 수평적·협력적 생산체계로 전환해 건설업계의 불공정 하도급 문제를 원천 차단하고,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