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드러난 낙하산 사장
김은경 전 장관과 서주원 사장, 환경단체 출신
신창현 전 의원 서류 통과…‘정치인 반대’ 청원 올라
역대 사장 전부 환경부·정치권 출신
노조 “LH 연루 정치낭인 받을 수 없다”
환경부 “사장 제대로 검증하겠다”지만 신 의원은 통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전경.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5월 4일 사장직을 공모했다. [동아DB]
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신 전 의원이 결국 사장에 취임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립지관리공사가 설립된 2000년 이후로 역대 사장이 전부 환경부 출신이거나 정치권 관계자였다. 매립지관리공사 출신 인사나 매립지 문제를 오래 다뤄온 전문가가 사장이 된 사례는 전무하다.
환경부 장관이 개입한 사장 자리
환경부 출신이나 정치권에서만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사장의 선출 방식에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설립 및 운영 등에 대한 법률’(수도권매립지공사법) 12조에 따르면,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은 환경부 장관이 임명한다. 장관이 사장을 임명할 때 환경부 내부 인물을 우대하거나, 정치권의 눈치를 볼 공산이 크다.물론 장관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절차도 있다. 사장 후보 공모를 받은 뒤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추천위원회의 서류·면접 심사를 거쳐 2~3명으로 최종 후보를 압축하는데, 이 중 한 명을 환경부 장관이 선택하면 그 사람이 사장이 된다. 심사 기준은 △공사 관련 사업 및 환경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 △경제 관련 지식이나 경험 △대규모 조직 운영 경험 △최고 경영자 자질 △윤리관·인품 등 다섯 가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장치가 있어도 환경부 장관이 원하는 인물을 앉힐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환경부 장관이 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선임에 개입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가 ‘환경부 블랙리스트’다.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중 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에게 사표를 받기 위해 표적 감사를 하고 동시에 그 자리에 낙하산 인사를 앉히려고 했다는 의혹이다. 매립지관리공사 사장도 이 리스트에 오른 자리 중 하나다.
2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5-1부(부장판사 김선희, 임정엽, 권성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사장 공모(2018년 3월 22일)가 시작되기 한 달여 전인 2018년 2월 12일 청와대에 매립지관리공사 사장 후보로 현재의 서주원 사장을 추천했다. 김 전 장관이 서 사장을 내정한 셈이다.
실제 채용 과정에도 서 사장은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3월 13일에는 김 전 장관이 환경부 공무원을 통해 서 사장(당시 후보자)에게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업무계획 파일을 보냈고, 28일에는 사장 모집 공고문과 지원 서류 파일을 보냈다. 4월 9일에는 환경부 공무원을 통해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추천위원회에 환경부 위원으로 참가하는 김동진 당시 금강유역환경청장에게 연락해 ‘서 사장은 김 전 장관이 추천한 인물’이라고 알려줬다. 김 전 청장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에서 서 사장에게 최고점을 줬다.
김 전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서 사장이) 적임자인지 꼼꼼하게 평가해 달라는 말을 전화로 들었을 뿐 서 사장이 내정자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라며 “서 사장이 평생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인천에서 활동해 왔기 때문에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환경부 공무원이 “환경부 운영지원과 인사팀에서 김 전 청장에게 연락해 서 사장이 내정자임을 고지하였다”고 진술하면서 서 사장이 사실상 환경부 내정자였다는 사실이 일부 드러났다.
청와대·대선 캠프 출신이 앉던 자리
초대 이정주 전 사장(2000년 7월~2003년 7월)은 환경부 자연보전국장, 감사관, 공보관을 역임한 환경부 관료 출신이다. 2대 박대문 전 사장부터는 청와대·대선 캠프 출신 인사가 자리에 앉았다. 박 전 사장은 (2003년 7월~2006년 7월)은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청와대 환경비서관으로 일한 뒤 매립지공사 사장 자리에 앉았다. 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인 3대 장준영 전 사장(2006년 7월~2008년 6월)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시민사회비서관 출신이다.
4, 5대 조춘구 전 사장(2008년 7월~2012년 12월)은 사장 임명 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회의 직능정책본부 부본부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조 전 사장은 원래 2008년 4월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 성북을 지역구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출마하려 했다. 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고 같은 해 7월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에 부임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조 전 시장의 인사를 두고도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조 전 사장은 임기 초기부터 수도권매립지를 인천 서구로 영구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민들의 비판을 받다가 2011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이하 경영평가)에서 매립지관리공사가 D등급(S~E등급 중)을 받으며 그에 대판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2011년 8월 사장 공모에서 재신임을 받자 재차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그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2012년 12월 19일 사장직을 사퇴했다.
노조 “가장 유능한 사장 필요…낙하산 안 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한 신창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사 내부에서는 신 전 의원의 응모를 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매립지관리공사 노동조합은 5월 24일 성명을 발표해 “공사 사장은 정치인을 위한 논공행상 자리가 아니다”라며 유감을 표했다. 노조 관계자는 “차기 사장은 인천과 서울·경기의 갈등을 봉합하고 새 수도권매립지를 찾아야 하는 등 소임이 크다”며 “한 공사의 사장을 뽑는 데 실력보다 인맥이 우선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수도권매립지를 두고 인천시와 서울시·경기도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2015년 7월 인천시와 환경부· 서울·경기 등 매립지 관련 ‘4자 협의체’는 인천 서구에 있는 수도권매립지를 2025년 폐기하기로 했다. 4자 협의체는 인천 서구의 수도권매립지를 대체할 공동 매립지를 찾고 있으나 아직까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공동 매립지를 찾지 못했다고 다시 인천시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워졌다.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쓰레기 독립’을 선언하며 “타 지역 폐기물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반면 서울시와 경기도는 “4차 매립지를 찾지 못한다면 지금의 수도권 매립지를 계속 이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차기 사장은 빠르게 새 매립지를 찾거나 인천시를 설득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셈이다.
낙하산 차치하고서라도 LH 물의 인물 받을 수 없어
6월 7일에는 신 전 의원이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되면 안 된다는 청와대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수도권매립지주민지원협의체(이하 주민협의체)도 6월 13일 ‘신 전 의원의 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임명을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전달했다. 주민협의체는 수도권매립지 주민 대표 및 전문가들로 구성된 단체인데,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대한 법률’에 따라 주민지원사업 추진 협의, 환경영향조사 수행기관 설정, 주민감시요원 추천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주민협의체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택지 개발 후보지의 정보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은 부적절한 인물은 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 전 의원은 2018년 9월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신규 택지로 논의되는 지역을 사전 공개해 물의를 빚은 이력이 있다. 이 사건으로 신 전 의원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으나 2019년 7월 16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같은 비판에 ‘신동아’는 신 전 의원의 해명을 들으려 신 전 의원 측에 연락을 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신 전 의원은 의왕시장 재임 시, ‘의왕시를 해체해 인근 도시에 분할·편입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하는 등 시민들과 소통 없이 행동한 전력이 있다”며 “공사 사장으로서 지역 주민·환경단체·3개 시도(인천시·경기도·서울)·환경부 등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수도권 매립지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제는 낙하산 없다”며 믿어달라는 환경부
재차 불거진 낙하산 의혹에 환경부는 “더는 낙하산 인사가 없다”고 못 박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 이후) 서 사장에 대한 낙하산 논란도 불거진 상황에서 새 사장까지 ‘낙하산’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라며 “차기 사장으로 어떤 사람이 유력한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검증해 가장 적합한 시장 후보를 내도록 할 예정”이라 밝혔다.하지만 일각에서는 환경부를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서류 심사를 통과한 인물이 신 전 의원을 포함한 3명이기 때문. 신 전 의원을 제외한 두 명의 이름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환경부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우려됐다면 서류심사에서 (신 전 의원을) 떨어뜨렸을 것인데 이번에도 정치권 인물이 (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자리에 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매립장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여러 현안을 풀어야 하는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인사가 임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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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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