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요금 11년째 동결, 탈수록 적자
화물운송, 전체 물류 중 달랑 1.4%
스마트 교통 시스템 나오는데 철도만 제자리
노선 정리, 역사 개발로 수익성 높여야
유정훈 아주대 교수. [지호영 기자]
코레일은 2015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를 낸 2015년에도 영업이익 1144억 원 대비 이자비용 4802억 원으로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용산역 개발사업 관련 법인세를 일부 환급(2147억 원) 받으면서 당기순이익 5776억 원을 실현한 터다.
2016년 12월 SR(수서고속철도) 출범 이후에는 2017년 한 해에만 8623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듬해 강릉선 개통으로 매출이 5조5545억 원 증가하면서 영업손실이 –853억 원으로 개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인 2020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1조2381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비용은 매년 느는데 요금은 11년째 제자리
현재 코레일은 이용자가 타면 탈수록 적자를 내는 구조다. 운영비와 인건비는 해마다 오르는데 그에 비해 요금은 11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철도요금은 2011년 4.9% 인상된 이후 지금껏 동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은 3년 연속 공기업 최대 규모 신규 채용을 단행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고통 분담 차원에서 당초 계획 대비 341명 늘어난 총 2003명을 채용했다.악화일로를 걷는 코레일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국토부에서 고강도 혁신을 주문한 가운데 적자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월 초 국가 제반 교통 시스템을 연구해 온 유정훈 아주대 교수(교통시스템공학부)를 만나 코레일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할지에 대해 물었다. 유 교수는 “동결된 요금, 화물수송 부문 경쟁력 약화,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등 숙제부터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철도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어떻게 타계할 것인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누적적자 18.7조 원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철도산업 자체가 21세기에 경쟁력이 있는 산업인지를 봐야 한다. 20세기 초반에는 철도가 물류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로망이 확대되고 자동차 보급이 확산하면서 역할이 달라졌다. 미국, 캐나다 등 대륙의 경우 철도 물류의 역할이 지금도 커서 화물열차 신호대기에 걸리면 1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길어야 서울~부산 400㎞인 데다 철도 화물수송이 효율적이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로가 촘촘하게 깔려 있고, 닿지 않는 곳이 없어 육로 화물수송이 훨씬 편리하다. 전체 물류 운송에서 철도가 차지하는 비율이 1.4% 정도로 낮다. 다만 석탄, 곡류 등 벌크 화물수송은 철도가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석탄과 곡류 물류량도 1970~80년대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그러면 남는 게 철도 컨테이너 수송인데 이 역시 트럭이 빠르고 편리하다. 철도의 경우 컨테이너를 배에서 트럭에 옮기고 다시 철도로 옮겼다가, 정차역에서 다시 트럭으로 옮겨야 하는데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 적자가 나는 구조다.”
화물수송은 구조적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쳐도, 여객수송은 다르지 않은가.
“코레일은 기초 교통을 담당한다. 무궁화호, 새마을호, 서울지하철 1호선, 4호선 등이 있다. 광역철도의 경우 적자가 나면 정부에서 50~60%를 보전해 주지만 지하철 부문 손실은 보전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기초교통 요금을 정책적으로 낮게 책정한다. 서울지하철의 경우 원가가 2000원 정도인데 지금 기본요금이 1250원이다. 요금 자체를 원가보다 낮게 해놓으니 시민이 이용할수록 적자가 발생한다. 물론 기초 교통이니 국민의 최소한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또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서 낮게 책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손실분은 정부가 채워줘야 한다. 정리하자면 철도산업의 융성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시대적 한계 상황, 원가 이하로 책정된 요금에서 계속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코레일의 적자가 SR이 출범한 2017년부터 두드러지게 확대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 기존 수서~부산 · 목포 등 알짜 노선을 SR에 넘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SR 출범 영향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요금부터 봐야 한다. KTX가 도입되기 전인 2000년대 초, 요금 산정을 놓고 관계 부처와 학계 논의가 있었는데 입장 차가 컸다. 정부는 ‘철도요금이 비싸면 안 된다’며 처음부터 낮게 책정하려 했고, 전문가들은 ‘KTX는 기초 교통수단이 아니니 비싸게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비행기 값의 3분의 2 정도로 결론났다. 그 당시 조금 올려놨기에 지금 어느 정도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
그러면 SR 얘기로 돌아가서, 그때 왜 SR을 설립하려고 했는지 봐야 한다. 원래 독점체제는 여러 문제를 내포한다. 그 당시 철도산업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국민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실제로 SR 출범 이후 이용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부터 지금에 와서 양사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SR이 당초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느냐부터 봐야 한다. 지금 SR은 수익이 나는 구조인데, 코레일의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지적하는 것은 철저히 공급자 관점의 얘기다. 국민은 어찌 됐건 편리하고 쾌적하게 SRT나 KTX를 이용할 수 있으면 된 거다. 코레일 적자가 SR 때문은 아니다.”
철도산업 경쟁력 논의할 시점
2005년 설립된 코레일은 지난해 누적적자 18조6608억 원을 기록하고, 올해 경영평가 E등급을 받았다. [Gettyimage]
철도산업 자체의 사업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물론이다. 아까 철도의 화물수송 비중이 전체의 1.4%라고 했는데, 수치를 높일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7월 말 코레일이 화물운송 부문 실적 개선을 위해 KTX 길이 2배에 달하는 50량 장대화물열차(777m)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코레일의 물류 적자가 약 2400억 원으로 비중이 높다. 물류수송은 나갈수록 적자다. 그런데도 하겠다면 어떻게 수익화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철도수송은 멀리 갈수록 효율이 높다. 100㎞ 이하 근거리 화물수송은 의미가 없기에 서울에서 최단 대전 밑으로는 내려가야 한다. 또 아무리 기술을 도입해 50량, 100량으로 만들어놔도 이용자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현재 점유율만 보면 장대화물열차가 의미 있는 도전은 아니다. 공기업이니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수록 철도의 화물운송은 경쟁력이 없는 것 같다.
“트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트럭은 사고가 많이 나는 반면 철도는 안전성이 높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면 한계로 지적되는 대형화물의 철도 이송 부문 효율을 높이겠다는 전략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지금 코레일은 그 전략이 안 보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무인 트럭 화물수송이 실용화됐다. 빠르면 5년 안에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텐데 그때 가면 철도는 경쟁력이 더 떨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철도 화물수송 경쟁력 강화 방안을 연구해서 사업성이 없는 구간은 접고, 특화된 부문만 살려야 한다. 교통 환경과 운송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에 코레일도 기술의 전환과 개혁이 필요하다.”
여객수송 부문 적자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나.
“코레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도시철도의 만 65세 이상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분을 정부가 100% 보전해 줘야 한다. 원인 제공자는 법률이다. 노인복지법 제26조에 무료로 태우라고 했으면 당연히 손실분을 채워주는 게 맞다. 그런데 정부는 코레일의 광역철도 부문에만 50~60%를 보전해 준다. 그 비율도 근거가 있는지 관계 부처에 물어보니 없다고 하더라. 기재부에 예산을 요청하면 그해에 많이 남으면 60%, 적으면 50% 이런 식이라고 한다. 이건 정부가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기재부와 보건복지부 모두 뒷짐 지고 있다.
또 원가 아래에 맞춰진 요금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사실 원가가 얼마라고 하지만 따져보면 그보다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요금이 원가보다 낮은 상황에서는 코레일도 핑계 대기가 너무 좋다. 전체 적자의 주원인이 11년째 요금을 동결했기 때문인데 고육지책으로 원가절감을 해봐야 티가 안 난다. 일단 요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원가절감을 논할 수 있다.”
근거리 수송은 손해라고 지적하셨다. 그러면 철도 노선도 수익성을 따져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류와 여객 각 노선의 수익성을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특히 물류는 연구해 봐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육송 기술은 기술면에서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뒤늦게 코레일이 물류 혁신을 단행하고 기술혁신을 추진해도 몇 년 뒤 트럭 및 육송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다. 그러면 철저히 이용자 관점에서 벌크 수송만 담당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여객 수송은 무조건 고속으로 가야 한다. 서울~부산 KTX 표정속도를 200㎞/h 이상으로 유지하는 한편 표정속도 50㎞/h인 무궁화호는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국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한다. 그런데 요즘 농어촌 거주민도 기차보다 차를 선호한다. 스마트 모빌리티가 어떤 수준인지 봐라. 최근 국토부에서 농어촌에 수요응답형 DRT(Demand Responsive Transport)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앱으로 미리 신청만 하면 버스가 데리러 오는 형식이다. 이미 세종에 셔클, 청주에 콜버스가 도입됐다. 부르면 집 근처로 태우러 오는데,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국토부에서 무궁화호, 새마을호를 정리하는 대신 DRT를 국비로 지원하면 된다. 우리가 교통 시스템을 얘기할 때는 공공성과 효율성을 봐야 한다. 자꾸 공공만 추구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무조건 철도 여객은 직선, 직결, 급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운송에 치중 말고 개발도 적극 나서야”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철도산업의 위기를 논하며 “코레일의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호영 기자]
코레일의 위기인데, 한국만의 문제인지도 궁금하다.
“전 세계적으로 철도산업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다. 철도는 비용이 많이 든다. 도로는 깔기만 하면 끝이다. 철도는 철로를 까는 데 돈이 들고, 기차를 개발하든 사와야 하고, 지속적인 유지보수도 필요하다. 교과서에도 ‘철도는 요금으로만 운영되기 힘든 운송수단’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일본, 홍콩, 유럽 등은 모두 복합환승센터 개발로 수익을 낸다. 일본과 홍콩에 가면 역마다 백화점이 있다. 그런데 코레일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 용산 정비창 부지도 코레일이 개발 의지가 있었다면 진작부터 LH와 손잡고 부동산 개발에 나서야 했다. 솔직히 국토부에서 경영 정상화를 얘기하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국토부 차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할까.
”국토부도 사실 어려운 문제가 있다. 원래 코레일은 ‘철도청’이었다. 그때부터 철도청 사람들은 국토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부 안에 철도 전문 관료가 없다. 국토부 과장, 국장이 담당하는데 철도에 대해 자기들보다 모르니 따르지 않았다. 지금은 코레일 출범 이후 20년 가까이 흘렀으니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코레일 경영 정상화가 요원하게 느껴지는데,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한 말씀 해보라.
“코레일이 철도만 바라보지 말고 교통 시스템 전체 변화를 보고 조응해야 한다. 철도가 가진 장점이 분명히 있으니 투자를 통해 장점은 극대화하고, 노력해도 열세인 영역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등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양손에 떡을 쥐려 하면 다 놓치게 된다. 또 정부는 리더십을 단호하게 발휘해야 한다. 적절한 지원을 하면서 소비자 관점에서 코레일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절대 공급자 관점에서 싸우지 말고, 철저히 국민 편의성을 고려해 국가 전체의 이익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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