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으로 미국은 경기부양, 한국은 성장 감소 효과
근본 원인 ‘높은 통화량 증가율’과 ‘낮은 경제성장률’
국제 정세 불확실성 높아져… 환율 1500원 돌파 가능성↑
미국에 투자해야하는 기업이 달러 풀까…
환율 낮추는 법? ①생산성 제고 ②자본 투입 확대 ③규제 개혁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 법인세 인하, AI 규제 철폐…
개인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내수기업은 원자재 조기 확보
국가 역할 어느 때보다 중요, 개혁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불과 5년 전까지 11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어쩌다 1500원을 바라보는 처지에 놓였을까. 학계와 금융권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젊은 거시경제학자로서 다수 언론의 주목을 받는 석병훈(49)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원인을 물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후 2006년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강의하다가 현재 이화여대 경제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거시경제학·부동산경제학·국제경제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세수 변동성 요인 △한국 주택정책의 장기 효과 △최저임금 인상의 거시경제 영향 등의 연구가 주목받았다. 이외 그는 IBK기업은행 사외이사, 아시아개발은행 컨설턴트,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자문교수 등으로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근본 원인 ‘높은 통화량 증가율’과 ‘낮은 경제성장률’
1400원대 고환율 현상이 이어지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환율의 장기 변화를 설명하는 대표 이론이 ‘상대적 구매력 평가설(PPP·Purchasing Power Parity)’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두 나라의 통화가치 변동은 ‘통화량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에 의해 결정된다. 먼저 통화량 측면에서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한국의 M2(광의통화) 증가율은 5.4%, 미국은 4.5%였다. 한국의 통화량이 더 빨리 늘어나 원화가 달러보다 많아졌다는 뜻이고, 그만큼 원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올랐다. 경제성장률도 한국(1.8% 내외)이 미국(2.0% 내외)보다 낮은 상황이다. 한국은행 전망에 따르면 2027년까지도 이런 격차가 이어질 걸로 예상된다. 성장률이 낮다는 건 국력, 즉 경제의 ‘기초 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뜻이고, 이 역시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이 된다.”
엔화나 유로화 같은 다른 주요 통화와 비교했을 때도 원화 약세가 두드러진 편인데.
“최근 달러화 전체 지수(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텍스)는 98~99 수준으로 거의 변동이 없는데, 원화만 유독 약세를 보였다. 이는 단순한 달러 강세가 아니라 원화 고유의 약세 요인이 작용한 탓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바꿔놓은 ‘특정 사건’ 때문인데, 바로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으로 결정된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다. 민간이 트럼프 정부 임기 내 3년간 1500억 달러를, 정부도 10년간 매년 최대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의 주력산업 기반이 점차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결국 미국은 경기부양 효과가, 반면 한국은 성장 감소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변화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달러 환율의 급등을 촉발한 핵심 요인이 된 셈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고환율 원인으로 서학개미를 지목했다. 반면 정부의 ‘확대재정정책’ 탓에 통화량이 증가해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가.
“원·달러 환율이 오른 이유를 개인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의 대미 투자 증가 탓으로 보는 건 사실과 다르다. 개미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에 자금을 옮기는 건 ‘원인’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다. 고환율의 근본적 이유는 미국의 경제기초 체력이 한국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전망에서도 2027년까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을 것으로 본다. 성장률이 높으면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주가도 빠르게 오른다. 그러니 합리적 투자자라면 당연히 한국보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석 교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정부의 ‘확대재정정책’이 오히려 원·달러 환율 상승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 이런 확장 정책이 한국의 통화량 증가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정부가 민생지원금 등의 정책으로 재정을 풀면 가계의 저축이나 예금이 늘어 M2에 반영된다. ‘상대적 구매력 평가설’에 따르면, 통화량이 미국보다 더 빨리 늘어나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현재 기준금리는 미국이 3.75%로 우리나라(2.5%)보다 높다. 올해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우리나라에 외국인 투자가 늘어 환율이 내려갈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환율을 결정하는 경제학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금리차로 환율을 설명하는 이론은 주로 단기적 환율 변동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가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한미 금리차가 좁혀지면, 달러 약세와 함께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 환율 흐름을 결정하는 건 금리보다 경제의 기초체력, 즉 펀더멘털이다. 그 핵심 지표가 ‘통화량 증가율’과 ‘실질 경제성장률’이다. 한국의 통화량이 미국보다 더 빠르게 늘고 성장률은 낮은 상황이라면,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 높아져, 환율 1500원 돌파 가능성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8% 내외로 보이는데, 고환율 현상도 지속될까.“그렇다. 시장 참여자 역시 장기적으로 환율이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어 달러 보유 비중을 늘리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수요 자체가 환율 상승 압력을 꾸준히 만들어낸다. 게다가 연초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미·중 갈등, 중·일 관계 악화, 대만 문제 등 여러 지정학적 리스크가 얽히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상황에 따라 1500원 돌파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외환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1500원대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에서 안정되는 흐름이지만, 정부 개입이 약화한다면 추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2025년 12월 24일 개입했는데 2주 만에 한 50원 정도 떨어졌다. 정부가 개입해도 이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시장 참여자들이 학습하게 된 셈 아닌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어디까지나 일시적 효과에 그친다. 경제이론상 현재 원·달러 환율은 장기적 상승 추세에 놓여 있다. 환율이 안정되려면 수출 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해 시장에 공급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유인이 거의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주요 수출 기업인 반도체·자동차·조선 업종이 모두 향후 3년 안에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굳이 환전했다가 다시 달러로 바꾸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시장 내 달러 공급 자체가 크게 줄었다. 정부가 기업들을 불러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와 환전 전략을 조정하라’고 당부하더라도, 기업 처지에서는 이윤 극대화 원칙을 포기하기 어렵다. 게다가 대미 투자 역시 ‘국익 차원’에서 결정한 일 아닌가. 여기에 달러 환전 부담까지 떠넘기면 기업에 대한 과도한 요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최소 트럼프 집권 3년간 환율은 이대로 간다고 봐야 하나.
“그런 셈이다. 지금으로 봐서 미국은 인공지능(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성장률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한국과 일본 등 각국에서 투자를 유치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당분간 우리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 당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1월 13일 환율은 1472.9원으로 장중 1470원을 돌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 전광판에 나오는 원·달러 환율 시세. 뉴스1
“지금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물가상승’이다. 한국은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식량도 쌀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온다. 이런 구조에서 원·달러 환율이 고환율 상태로 고착되면, 수입 원자재나 식품 가격이 원화 기준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수입 소고기나 밀·옥수수 같은 곡물은 가격 상승이 바로 체감된다. 특히 곡물은 가축 사료로도 쓰이기 때문에, 사룟값이 오르면 국내 축산물 가격이 오르고, 이어 가공식품과 외식비까지 단계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물가가 오르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기가 어려워진다. 현재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약 2%)보다 낮은 1% 성장 전망이 나올 정도로 경기둔화 상태다. 원래라면 금리인하로 경기를 부양해야 하지만, 물가 부담 때문에 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이는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 위험이다.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외국인은 국내 주식에서 수익이 나더라도 원화 환전 시 환차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실제로 이런 흐름이 강해지면 주가가 하락하고, 국내 투자자의 자산 가치가 감소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된다. 결국 고환율은 물가 상승 → 금리 제약 → 외국인 자금 유출 → 소비 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경기침체를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약 4000억 달러로 세계 10위권이지만, 그것을 모두 시장에 투입해도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외환시장 규모와 참여 자금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의 급등·급락을 막아 변동 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생금융상품 거래가 많기 때문에 환율이 널뛰면 쏠림이 심해져 오히려 급등락을 부추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추세 자체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것밖에 해법이 없다.”
환율 낮추는 법? ①생산성 제고 ②자본 투입 확대 ③규제 개혁
석 교수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 세 가지 영역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첫째로 노동 투입량과 생산성 제고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게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인력이 더 많이 일하도록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호봉제 대신 성과급제 확대, 주 52시간 근무제의 탄력적 적용 같은 제도개편이 요구된다. 반도체 R&D 인력이 ‘더 일하고 싶다’고 해도 주 52시간 제한 때문에 막히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교육 투자도 중요하다. 특히 대학·고등 교육 강화, 그리고 인구절벽 시대에는 고학력 숙련 이민자 유입 정책이 불가피하다. 숙련 인력에게 비자 편의, 가족 동반, 주거·교육비 지원 등을 패키지로 제공해 장기 체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자본 투입 확대다. 국내 투자를 늘리려면 기업이 투자할 유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작년 세제 개편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이 1%포인트 인상되면서 한국이 미국보다 법인세 부담이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국내에 투자를 늘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최소한 법인세율을 미국 연방세 수준으로 낮추고, 산업 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셋째, 총요소생산성 향상이다. 이는 같은 자원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느냐의 문제다. 노동시장 경직성을 낮추고, 산업 간 칸막이를 없애는 규제 개혁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AI 기술을 의료·금융·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적용할 수 있게 규제를 풀면, 이는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팩트시트 및 MOU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우려되는 부분이다. 여러 가지로 역주행하는 정책이 있다. 노란봉투법이라든지, 주 52시간제 해지 반대, 일괄적인 정년 연장, 고강도 상법개정안 등이 추진되는 한 노동시장 경직성을 낮추기 어렵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을 활용해 환율 관리에 적극 나선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통화스와프 연장,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환율 변동으로 생기는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환율을 현재 수준으로 미리 고정하는 것) 비율 확대 등을 시행했다. 여기에 올해 새로 마련된 뉴 프레임워크(New Framework) 체계를 통해 한국은행·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등이 모두 참여해, 외환시장 안정과 연금 수익률을 동시에 고려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증진)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원·달러 환율이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강화하거나 한국은행과 통화 스와프(거래 당사자 간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하고, 일정 기간 후 원금을 재교환하기로 약정하는 거래)으로 달러 보유를 제한받으면, 나중에 환차익을 얻을 기회가 사라져 장기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미래세대의 노후 자금을 희생시켜 단기 환율 안정을 꾀하는 셈이다.”
이어 그는 지난해 관세 협상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에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비슷한 성격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미 투자와 관련한 정부의 외화 조달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최대 2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중 150억 달러는 외화 자산 운용 수익, 나머지 50억 달러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달러 표시 채권) 발행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나 외화 자산 수익은 미국채 수익률 변동에 따라 달라지고, 향후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국채 수익률이 떨어져 150억 달러 수익이 유지되기 어렵다. 이 경우 추가로 달러 조달을 위해 외평채 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정부 부채, 즉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장기적으로 경제·재정 건전성과 세대 간 형평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위험이 크다.”
개인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내수기업은 원자재 조기 확보
미래가 암울한데,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자산을 관리해야 하는가.“현재 국제 정세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체포·송환 사건부터 미·중 갈등, 중·일 및 양안(兩岸) 긴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변수까지 지정학 리스크가 얽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 필수다. 달러 강세에 대비해 달러 표시 자산의 보유가 불가피하다. 미국 국채나 주식 ETF, 미국 주식 직접 투자가 있다. 또한 최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포트폴리오에 암호화폐 자산(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포함하면 동일한 위험도에서 평균 수익률이 높아진다. 단 암호화폐자산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주식 같은 다른 위험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위험을 통제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암호화폐 자산이 주식·채권·부동산·금 등 전통 자산과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스크 분산 수단으로 일정 비중을 편입하는 것도 유효하다.”
이와 더불어 석 교수는 국제정세가 불안한 만큼 금과 은 등 전통적 안전자산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은 안전자산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금과 달러 같은 안전자산 수요가 높아진다. 금값 상승 시 은값도 연동해 오르는데, 은은 산업 수요까지 겸비한 자산이라 변동성이 낮다. 최근 AI 산업 확산으로 구리 수요도 늘고 있어, 금·은·구리 같은 금속류는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며 유망한 실물자산군으로 꼽힌다. 비유하자면 금이 ‘강남 3구’라면, ‘은은 마·용·성’, ‘구리는 서울 외곽’처럼 가격 흐름이 차례로 이어지는 구조다. 결국 지금 같은 중상주의적 경쟁과 ‘실력 행사’의 시대에서는 달러·금·암호화폐자산 등 안전 및 대체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특히 내수기업의 어려움이 클 듯한데.
“앞으로 내수기업은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첫째로, 국내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며 수입 원자재의 원화 표시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고환율과 물가상승 압력이 겹치면서 생산비는 오르는데, 소비 위축으로 제품 수요는 줄어드는 전형적인 ‘샌드위치 압박’에 직면한 셈이다. 둘째, 지금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상주의와 실력 행사’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계 공급망이 양분화하고 있다. 미국·유럽이 주도하는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대립 축이 나뉘는 구조다. 이에 따라 내수기업은 수입 원자재 확보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내수기업은 △환율 변동에 대비한 환헤지 상품을 적극 활용하고, △비축 가능한 원자재는 조기 확보하며, △수입 공급망 다변화를 병행해야 한다. 특히 국제 정세 불확실성 속에서는 언제든 공급이 차단될 수 있으므로, 선제적 조달 전략이 필수다.”
수출 기업은 다른 전략이 필요할 듯하다.
“수출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가격경쟁력을 강화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중국의 자원 무기화 조치로 인해 일본 기업의 생산 차질이 생기면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 자원 무기화의 영향이 한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따라서 수출 기업도 원자재·광물자원의 수입 공급망 다변화, 생산 거점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 일부 생산시설을 미국이나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 지역으로 옮겨두는 방식이다. 미국이 수시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재조정하거나 관세를 무기화하는 만큼, 현지 생산·투자 확대가 불확실성에 대응할 실질적 방법이 된다.”
“국가의 역할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경제 전망이 과거 경험했던 굵직한 경제위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석 교수는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지적하며 국가 개혁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을 탈출하는 글로벌 자본,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수요를 한국으로 끌어오는 적극적 투자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고학력·고숙련 이민자를 수용하는 이민 정책과,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다국적기업의 국내 투자 유인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단순한 법인세 인하만으로는 부족하고, 미국 IRA가 도입한 것처럼 초기 투자 비용을 직접 줄여주는 방식이 핵심이다. 법인세는 공장을 짓고 이익이 발생한 뒤에야 의미가 있으니, 미래에 깎아줄 세금을 현금처럼 먼저 지원하는 ‘다이렉트 페이(직접 환급)’ 방식으로 설비 투자 부담을 낮춰줄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와 각종 규제 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경직적인 임금, 근로시간, 인력 운용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해외 기업은 한국을 매력적인 생산기지로 보지 않을 것이다. △성과 중심 임금체계, △유연한 근로시간제, △산업 간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를 동시에 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장기 해법이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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