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스터디 장소 찾아 헤맨 기억…공간 대여 비즈니스로
- 한겨울 전단지 배포…“일출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 14년 만에 전국 136개 지점, 매출 400억, 폐점률 0
- ‘애니팡’ 만든 선데이토즈…일요일마다 토즈에서 준비
- “직원·협력사와 5년 내 아시아 석권할 것”
테라스 라운지는 마치 영국 런던의 코벤트가든을 옮겨놓은 듯하다. 라운지를 등지고 뻗은 30여 m의 메인스트리트 양옆에는 책상과 테이블을 갖춘 14곳의 모임 공간이 들어섰고, 개인 우편함과 휴식 공간도 마련됐다. 와인셀러와 프로젝터, 전자레인지가 설치된 다이닝 모임 공간과 방음시설을 갖춰 악기·보컬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 벽면에 거울이 설치된 취업준비생 리허설 공간도 갖췄다.
이곳은 공간 서비스 그룹 (주)피투피시스템즈가 최근 문을 연 ‘토즈 마이스(MICS)센터’ 신반포점. 누구든 이용료(2시간에 6000원)를 내면 회의(Meeting), 집중 교육(Intensive education), 협업(Co-working), IT 인프라를 활용한 작업(Smart working)이 가능하다. 그래서 머리글자를 따 ‘마이스(MICS)’ 라는 이름을 붙였다. ‘토즈(TOZ)’는 이 회사의 마케팅 브랜드. 김윤환(43) 피투피시스템즈 대표가 말하는 공간 서비스란 ‘고객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과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임 공간’ 필요성 절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미래를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려면 지금 나의 시·공간을 바꿔라’는 모토가 걸려 있습니다. 맞다고 봐요. 스마트 사회에서의 경제 가치는 창의성이고 창의성은 개인의 두뇌에서 나오는데, 개인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하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일과 공부잖아요? 일과 공부를 위한 최적의 공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사무실 임차하고 집기 마련하는 게 부담스러운 1인 기업인이나 벤처를 꿈꾸는 사람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회사원들이 자주 찾습니다.”
김 대표가 14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간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적당한 공간’을 찾아 헤맨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8년 한국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미국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면서 스터디 모임을 위한 공간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고시원, 독서실, 도서관에서 6년간 회계사 시험 공부를 했는데, 그룹 스터디를 할 때 적당한 공간이 없어 난감했습니다. 커피숍이나 식당은 손님들 대화 소리와 음식 냄새로 집중이 안 됐어요. 어렵게 찾은 조용한 찻집이나 학교 잔디밭에서 모임을 했는데, 그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죠.”
이후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그는 자신이 겪은 낭패감을 떠올리며 창업을 결심한다. 개인의 안정된 삶을 위해선 회계사도 좋겠지만, 사회적으로 뭔가 필요한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
“공간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지인들과 상의하면 ‘커피 장사 할 거냐’는 핀잔만 들었어요. 50년간 가구사업을 하신 부친도 ‘회계사 아들이 커피숍 같은 거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무척 속상하셨을 거예요. 당시 사회적 인식이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부친은 내색하지 않고 ‘참을 인(忍)자를 가슴에 새기되 그것을 남이 모르게 하라, 사장으로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라’며 사업을 지원해주셨어요. 지금도 저의 가장 큰 지지자입니다.”
장사꾼이냐, 사업가냐
창업을 생각하던 2000년은 ‘프리챌’ ‘다음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가 급성장하던 시기. 그전까지가 학연, 지연, 혈연 중심의 모임이었다면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하면서 주제별 동호회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었다. 김 대표는 3000여 개 인터넷 카페 운영자와 기업 인사담당자를 만나면서 ‘모임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2001년 한 해 동안 3600명에게 연락해 이 가운데 40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어요. 공간 서비스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목적의 공간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300명쯤 만날 무렵 ‘회사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서더군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스터디, 커뮤니티 모임부터 기업 회의와 세미나, 콘퍼런스를 위한 공간 등 다양한 수요도 확인했습니다. 문을 열면 고객이 달려올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인터뷰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친인척을 설득해 창업자금을 빌렸고, 2002년 1월 서울 신촌에 70평(231.4㎡) 규모의 토즈 1호점을 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20만 장 넘게 전단지를 뿌리고 커뮤니티 운영자들을 초대해 홍보했지만, 첫달 이용 고객은 300명을 넘지 못했다. 하루 10명도 채 안 됐다.
서울 반포동 ‘토즈 마이스센터’ 신반포점 테라스 라운지.
소비자에겐 공간 서비스업이 아직 생소하던 그 시절, 회의나 스터디 모임을 하려고 커피숍이나 찻집, 패스트푸드점을 찾던 사람들을 토즈 모임센터로 끌어들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 결과 고객 재방문율이 90%를 넘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필사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다. 할인쿠폰을 나눠주고, 고객 의견은 빠짐없이 기록해 시설과 조명 등을 하나하나 바꿔나갔다.
지성이면 감천. 1호점은 1년 반이 지나서 마침내 적자를 면하게 된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것. 그의 노력은 3호점인 강남점을 열고부터 결실을 본다. 강남점은 매달 6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이 3000만 원을 넘겼다.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견뎌내며 끊임없이 개선책을 모색한 결과였다.
“4년을 고생, 고생하다가 수천만 원의 월수입을 올리다보니 그냥 여기에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장사꾼으로 끝내느냐, 사업가로 남느냐를 두고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창업 초기 신촌점 4층 창가에서 고객을 기다리던 때가 생각나더군요. 비가 와서, 눈이 와서, 차가 막혀서 손님이 없을 거라고 합리화한 시간들, 고객 한 분이 얼마나 반갑고 소중했는지를 절감한 그때 기억을 되새기며 ‘갈 데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애니팡’ 인큐베이터
그는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다양한 공간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방음장치를 갖춘 소리 부스, 자신의 모습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유리 부스, 강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동영상 촬영 스튜디오 부스 등이 그것. 지금은 전국에 21개 토즈 모임센터(Moim Center)를 냈고, 연평균 100만 명의 고객이 방문하는 견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재방문율도 90%에 달한다.
열정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 창업자들에게 토즈는 일종의 인큐베이터 노릇을 한다. 대표적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과 ‘티켓몬스터’ 관계자들은 창업 초기에 토즈를 활용했고,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의 이정웅 대표도 한때는 매주 일요일 토즈에서 창업을 준비했다. 이 대표가 회사명을 ‘선데이토즈’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 토즈에서 취업 준비를 한 대학생, 공개입찰을 준비한 회사원들이 ‘성공’한 뒤 감사 인사를 하러오기도 한다.
토즈 설립 10년차인 2010년, 김 대표는 독서실로 눈을 돌린다. 학생 시절 자신도 독서실에서 오래도록 공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독서실 공간은 그대로인 데 착안한 것. 2010년 4월부터 2년간 학생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했다.
“열람실 밖에 휴식 공간인 테라스를 마련했는데, 학생들이 테라스 공간을 선점하려고 경쟁을 벌이더군요. 개별 인터뷰를 해보니, 조용한 책상에서보다 조금 시끄러운 공간에서 공부가 더 잘된다고 해요. 저도 학창 시절에 앞뒤가 뚫리고 약간의 소음이 있는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됐던 것 같았습니다. ‘함께 공부한다’는 동질감과 경쟁심이 생기니까요. 사람마다 공부가 잘되는 공간이 다른 거죠.”
미국 하버드대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개인의 학습유형을 7가지로 분류한다. △읽고 쓸 때 집중력이 오르는 ‘언어학습형’ △소리 자극을 받아야 집중되는 ‘청각학습형’ △토론하고 소통하려는 ‘사회학습형’ △밀폐된 공간에서 집중이 잘되는 ‘자기학습형’ △형광펜 등 색과 지도를 이용해 공부하는 ‘시각학습형’ △수와 논리적 사고에 강한 ‘논리학습형’ △몸의 움직임과 촉각에 예민한 ‘신체학습형’이다. 사람의 지능에 따라 학습 유형도 다르다는 것인데, 우리의 독서실은 40여 년간 칸막이가 높은 조용한 공간만 강요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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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과 다중지능이론
김 대표는 토즈 R·D센터의 연구 결과와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기반으로 5가지 공간을 갖춘 신개념 독서실 ‘스터디센터’를 선보였다. 스터디센터에 들어서면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학습 유형을 확인한 뒤 학습 공간을 찾아가는데, 기존 독서실 공간과 같은 ‘솔리터리룸’에서 공부하다가도 동질감과 경쟁심을 갖게 하는 ‘오픈 스터디룸’으로 옮겨 다니며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2012년 3월 1호점을 연 ‘토즈 스터디센터’는 7월 현재 전국에 84개점을 열었다. 이용료는 월 16만~18만 원. 하루 평균 1만6000명이 스터디센터를 이용하고 좌석 점유율은 106%에 달한다. 센터를 찾는 학습자 중에는 고시촌이나 독서실에 가기 불편한 성인도 30%쯤 된다고 한다. 신청 후 대기 기간이 평균 두 달에 이를 만큼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인기를 끌다보니 메가스터디 같은 대형 학원의 문의가 잇따랐다. 메가스터디와 메가엠디 독서실 공간은 토즈가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그렇게 다그쳐도 안 가던 독서실을 자녀가 스스로 가겠다고 하니 신기하다며 찾아오기도 해요. 기존 독서실은 내 책상만 공부 공간이었는데, 스터디센터는 센터 전체가 공부 공간이니 오랫동안 체류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겁니다.”
토즈는 올해 100호 센터를 돌파하고, 향후 전국 독서실 시장의 10%(540개)를 점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처음엔 본사가 직접 투자해 운영했지만, 현재는 본사 투자와 함께 가맹점주와 본사가 공동 투자하거나 가맹점주가 단독 운영한다.
또한 토즈는 소형 사무실과 세미나실을 갖춘 6곳의 ‘토즈 비즈니스센터’,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IT 인프라와 사무환경을 갖춘 ‘토즈 스마트워크센터’ 70여 곳을 구축하는 등 ‘스마트 워킹’의 표준을 만들고 있다. 정부 세종·서울청사와 국회, 킨텍스 등에 마련된 스마트워크센터는 출장 나온 공무원들의 임시 사무실로 인기가 높다. 공공분야에서만 67억 원의 실적을 올린 것도 이처럼 높은 만족도 덕분이다.
내친김에 지난 7월에는 기업과 임대사업자에게 IT를 기반으로 사무실의 효율적 공간 배치를 도와주는 ‘스페이스 비즈 그룹’을 출범시켰다. 그동안 축적한 공간 기획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 수요에 맞는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비용 절감에 필사적인 중소기업에 공간 서비스는 필수다. 200평 쓰는 사무실을 70평으로 줄이고, 대신 스마트워크센터를 갖춰 임시직 직원들이 쓰게 하는 등의 공간 효율화를 통해 비용을 줄인 회사도 많다”고 귀띔했다.
창업 지원, 협력사와 相生
2001년 5명으로 시작한 토즈는 현재 17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비즈니스센터와 스터디센터 등 전국에 136개 토즈 공간 서비스 지점이 생겼고, 올해 400억 원 매출(지난해는 210억 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136개 지점 중 문을 닫은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
김 대표는 “상권 분석과 수요 예측 등 철저한 데이터 분석이 바탕이 됐지만, 협력사와의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스터디센터 예비 창업주 100명을 대상으로 1억 원을 지원하는 ‘토즈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실행한 것도 창업 지원과 협력사의 상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김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토즈의 협력사 중엔 우리보다 규모가 큰 업체가 많은데, 한번 손발을 맞추면 웬만하면 함께 일합니다. 공사기간을 맞추고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함께 연구개발해야 하거든요. 가령 (가구 제작업체) 시디즈와는 R·D, 도원전자와는 냉난방시설 설치 및 애프터서비스, 아이센트와는 네트워크 구축 등을 함께 합니다.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하기 어려운 연구개발, 시제품 생산, 품질보증 등을 협력사와 손잡고 할 수 있습니다.
입찰도 최저가 입찰방식이 아니라 협력사가 적당한 마진을 가져가는 단가 입찰을 하는데, 단가는 내부 심사기준을 정해놓았어요. 협력사가 꾸준히 일해야 우리도 좋은 품질의 센터를 선보일 수 있으니까요.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보니 시디즈는 토즈만을 위한 비규격 상품을 만들어 납품할 정도가 됐습니다. 한순간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지속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파트너십이 중요하죠. 이제는 협력사와 함께 해외시장에 뛰어들어 승부를 낼 겁니다.”
김 대표는 국내시장을 뛰어넘어 5년 내 ‘아시아 지역 공간 서비스 1위 기업’을 목표로 해외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발상’과 ‘발전’
김 대표와 2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면서 프랑스 동부 알프스의 유명 생수 에비앙(Evian)을 떠올렸다. 1790년 지병인 신장결석으로 고생하던 레세르 후작이 3개월간 에비앙에서 요양하며 이 지역 샘물을 마신 뒤 신장결석이 완화됐다는 그 샘물.
이 소식에서 영감을 얻은 샘물 주인이 에비앙에 ‘물(水) 치료센터’를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1826년부터는 병에 물을 넣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1829년, 규모는 작지만 최초의 생수회사가 생겨났고 에비앙 시(市)는 이 회사와 1892년부터 2027년까지 에비앙 지역 샘물을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샘물 주인의 경험과 아이디어는 세계에서 처음 ‘돈 주고 사먹는’ 생수를 선보였고, 오늘날 생수 구매는 세계인의 일상사가 됐다. 에비앙의 샘물 주인과 토즈의 김 대표를 보면서 아이디어는 최초의 발상이 아니라 어떻게 잘 발전시켜서 마무리할 것인지에 성공 여부가 달렸다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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