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본능이 재생산 본능 압도
관악구 출산율이 서울서 가장 낮은 이유
주택 가격 오를수록 혼인율 떨어져
“서른이 넘었는데 반지하 살아요, 나랑 결혼해 아이 낳을 사람이…”
아파트 공급, 출산율 1위 세종시 만들다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도 출산율 높이지 못해
똘똘한 제조업 일자리, 중장년층 전유물
돈 늦게 벌기 시작하니 저축도 결혼도 늦어
집과 직장 가까워야 아이 낳는다
정책 방향을 결혼 독려에 맞춰야
[Gettyimage]
연봉 200억 원, 매년 100만 권의 교재를 파는 수능 스타강사 현우진(35) 씨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유튜브 강의에서 “앞으로 10년 뒤면 대입 평가 방식이 바뀔 것”이라며 은퇴를 시사했다. 현씨 외에도 이른바 ‘1타 강사’ 중 수능의 종언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기 때문. 1월 대학교육연구소의 ‘대학 구조조정의 현재와 미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입학 가능 인원은 2020년 46만4826명에서 2040년 28만3019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보고서는 가파른 학령인구 감소 원인을 평균 합계출산율(이하 출산율)에서 찾는다. 출산율은 가임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수다. 2018년 이후 출산율이 가파르게 감소해 2040년에는 학령인구가 28만 명대로 줄어든다는 것.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출산율은 2018년 1.0명의 벽이 깨지며(0.9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출산율은 빠르게 하락했다. 지난해 기준 0.81명까지 떨어졌다. OECD 38개 회원국의 평균 출산율은 1.61명. 한국의 출산율은 그 절반 수준이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부호인 일론 머스크도 한국의 출산율에 놀랐다. 머스크는 5월 2020년 한국의 출산율(0.84)을 트위터에 게시했다. 이 글에서 머스크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붕괴를 겪고 있다”며 “출산율이 변하지 않는다면 한국 인구는 3세대 안에 현재의 6%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인구 붕괴는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은 2041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고령화가 겹쳐 일할 사람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2020년 3737만9000명이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향후 5년간 177만 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이 같은 저출산 기조가 이어진다면 2030년부터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0%대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출산으로 국가가 흔들릴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예산 대량 투입해도 출산율 급전직하
2009~202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과 출생아 수를 나타낸 그래프. 2015년 이후 계속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
실패 원인으로 방만한 예산 운영이 꼽힌다. 지난해 8월 국회예산정책처와 감사원은 각각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인구구조 변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보고서는 모두 “저출산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지출됐다”고 지적했다. 창업 지원은 물론 인문학 강화 프로그램 등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돼 있었다. 최성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전의 저출산 대책은 저출산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기존 복지정책을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하에 묶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서울 출산율, 세종 절반 수준
신혼부부·청년 주거 지원 사업도 실효를 내지 못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 보고서를 통해 “청년층의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결혼 3년차 직장인 김모(33) 씨는 최근 신혼부부 임대주택 입주를 포기했다. 중심업무지구와 너무 먼 거리에 가격도 비쌌기 때문이다. 김씨는 “직장에서 지하철로 1시간 40분이 걸리는 곳에 임대주택이 있었다”며 “직장과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임대주택보다 저렴한 곳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예산 대량 살포에도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정부는 접근 방식을 바꿨다. 3월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 전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이는 저출산의 원인을 수도권 집중화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인수위에서 인구TF 팀장을 맡은 조영태 서울대 보건학과 교수는 “초저출산 문제는 청년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과도한 물리적·심리적 경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별 첫 일자리의 월평균 소득 비교. 대졸자 기준 수도권의 첫 일자리 급여가 가장 높다. [충북정책연구원]
좋은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점차 벌어진다. 김지운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가 2020년 4월 한국경제학회 경제학 연구에 발표한 ‘한국의 생애 소득 불평등 원인에 대한 분석’ 보고서는 “직장인 사이의 임금 불평등이 시간이 지나며 커진다”고 분석했다. 임금 불평등을 결정짓는 요인으로는 교육 수준 등 노동시장 진입 시 조건이 67%, 노동생산성의 변화가 33%를 차지했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첫 직장의 처우가 나쁘다면 이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직장인 이모(29·여) 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만 6년이 돼간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빠른 취업은 눈을 낮춘 덕분이다. 이씨는 “대학 동기들처럼 1년여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에 돈을 버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6년 전 결정을 후회한다. 1년, 길게는 2년 이상 취업을 준비한 친구보다 김씨의 연봉은 낮다. 그는 “지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차례 이직하며 연봉을 올렸지만,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친구들의 연봉을 따라잡긴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취업 늦어지니 결혼·출산·내 집 마련도 늦어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이 서울 일자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일자리는 쉽게 늘지 않는데 사람이 몰리니 청년 실업률은 고공 행진하고 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청년(15~29세) 실업률은 9.0%. 전국 광역시도(평균 7.8%) 중 가장 높다. 취업이 어려우니 신입사원의 나이도 점차 높아진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은 30.9세.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8년(25.1세)에 비해 5.8세가량 껑충 뛰었다.취업이 늦으니 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는 시기도 늦어졌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20년 초혼 연령은 남성 33.3세. 여성은 30.8세였다. 1998년에 비해 각각 4.4세(남성 28.9세), 4.7세(여성 26.1세) 늦어졌다.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도 같은 기간 8건에서 4.2건으로 줄었다.
첫 출산 연령은 같은 기간 28.5세에서 33.4세로 4.9세 늦어졌다.
서울 및 수도권으로 청년이 모이는 가운데 출산율은 계속 떨어진다. 청년이 가장 많이 사는 관악구는 서울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관악구의 20, 30대 인구는 지난해 10월 기준 19만7953명, 전체 인구(48만5000명)의 40%에 달한다. 관악구의 출산율은 0.44명. 서울시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강동구(0.80명)의 절반 수준이며 서울시 평균 출산율(0.63명)과도 차이가 크다.
20, 30대 관악구 주민 중에는 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 많다. 관악구 혁신정책연구단이 2019년 관악구에 사는 19~39세 청년 300여 명을 설문한 결과, 이들 중 정규직 종사자는 응답자의 50.7%에 불과했다. 아르바이트 등 임시 일자리 종사자의 비율은 25%, 학생과 무직자는 24.3%였다. 같은 기간 서울 19~39세 인구의 60.4%가 정규직 종사자였다. 시간제 등 임시 일자리 종사자 비율은 14.2%에 그쳤다. 관악구의 낮은 출산율은 정규직 획득 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관악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관악구에 사는 20대나 30대는 대부분 1인 가구”라며 “보통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후에도 계속 관악구에 사는 윤모(27) 씨는 “서울에 이곳만큼 집값이 싼 곳이 드물다”며 “관악구는 지방 출신 사람들이 서울에 정착하기 전 머무는 징검다리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행복도 1위 강남구, 출산율은 꼴등?
그렇다면 서울에서 가장 유복한 곳의 출산율은 어떨까.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은 7월 17일 ‘시민행복 실태조사 및 전략과제 수립 학술용역’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서울시민 7000명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서울시민의 평균 행복도는 6.18점(10점 만점)이었다.이 중 행복도가 가장 높은 곳은 ‘강남 3구’로 불리는 강남구(6.53점), 송파구(6.51점), 서초구(6.50점)다. 관악구의 행복도는 6.07점으로 중랑구(6.02점)를 제외하고는 최하위다. 보고서는 “자치구별 행복도가 생활환경, 안전, 교육, 소득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행복도 1위의 강남구는 고소득 가구(월 소득 800만 원 이상) 비율이 33.2%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았다.
높은 출산율은 행복도 순도 아니었다. 행복도가 가장 높은 강남구의 출산율은 0.52명. 관악구를 제외하면 가장 낮았다. 일각에서는 강남구의 낮은 출산율이 높은 소득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통계청의 ‘초혼, 신혼부부의 소득구간(근로·사업소득)별 출산자녀 현황’에 따르면 소득이 낮을수록 아이를 낳는 부부가 많았다. 연평균 소득이 1000만 원 미만인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0.76명으로 1000만 원 이상~3000만 원 미만 부부와 동률이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아이의 수는 줄었다. 소득 3000만 원 이상~5000만 원 미만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0.72명, 5000만 원 이상~7000만 원 미만의 부부는 0.67명이었다. 소득 7000만 원 이상~1억 원 미만과 1억 원 이상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0.58명으로 동률이다.
인구밀도 높을수록 출산율 하락
한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노동패널의 자료를 이용해 2010년부터 2019년의 소득계층별 출산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았다. [한경연]
소득이 낮을수록 출산율 감소 폭은 컸다. 2010년 1분위 100가구당 출산 가구수는 2.72이었으나 2019년 51.0% 감소해 1.34가구가 됐다. 2분위는 같은 기간 6.50가구에서 3.56가구로 45.3% 줄었고, 3분위는 7.63가구에서 5.78가구로 24.2% 줄었다. 이미 출산한 가구 중에도 소득이 비교적 높은 가구가 많았다. 2019년 출산 가구 중 고소득층인 3분위 가정이 과반(54.5%)으로 가장 많았다. 2분위가 37.0%, 1분위는 8.5%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한 강남구의 낮은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혼인 연령 탓이다. 출산율은 해당 지역 여성인구의 연령별 출산 현황을 집계해 평생 이 지역 여성이 낳을 아이 수를 추산한 값이다. 가임여성 인구가 같은 지역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두 지역의 출산아 수가 같아도, 아이를 낳은 여성의 연령대가 높은 지역은 출산율이 낮게 집계된다.
강남구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이 34.3세, 여성은 32.6세로 서울 전 지역에서 가장 높다. 단순 가임 여성 인구 대비 출산아 수를 집계하면 강남구는 서울시 말석이 아니다. 2020년 기준 강남구의 조출생률(15~49세 여성 인구 1000명당 출산아 수)은 4.4명으로 노원구(4.3명), 양천구(4.2명), 종로구(3.7명), 강북구(3.4명)보다 높다.
인구 학자들은 수도권의 인구집중 현상이 출산율 저하의 주범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영수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출산율이 하락한다”며 “수도권 과밀 현상을 해결하지 않으면 출산율 회복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서울의 인구밀도는 1만5699명/㎢ 전국 인구밀도 평균치(515/㎢)의 3배에 달한다.
恒産 있어야 出産 있다
전남 여수시의 회사원 박모(34) 씨는 두 아이의 아버지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 28세가 되던 해 고향이던 여수의 화학단지에 취업했다. 이후 1년 만에 결혼, 이듬해 첫아이를 낳고, 지난해 둘째를 낳았다. 박씨는 “수도권에서 전세를 구할 비용이면 여수에서 집을 살 수 있다”며 “굳이 서울에서 아이들을 기를 생각이 없다면 지방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 웃었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주택 가격에 대한 부담은 상당히 낮아진다. 4월 기준 수도권 ㎡당 주택 가격은 644만4000원. 서울은 977만1000원이다. 경기도만 해도 주택가격이 ㎡당 481만2000원까지 떨어진다. 가장 낮은 곳은 충북으로 244만 원. 출산율 1, 2위를 다투는 세종과 전남은 각각 361만4000원, 310만1000원 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7월 발간한 ‘주택가격변동이 혼인율과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는 아파트 등 주택가격이 오를수록 혼인율과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담겨 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2013~2019년 주택 가격이 100% 상승했을 때 출산율이 최대 0.3명까지 감소했다. 무주택자는 주택 소유자와 비교해 출산율이 0.45명 낮았다. 연구진은 보고서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할 수 있다면 가구 주거비용이 낮아지고, 이는 출산율 제고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지방에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여수시에 사는 박씨처럼 지방에 안정적 일자리를 구해 정착하기는 어렵다. 앞서 설명했듯, 지방의 좋은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제조업의 부진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의 설명에 따르면 주로 20, 30대가 점유하고 있는 제조업 및 지방 산업단지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더 정확히는 젊은 세대의 제조업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통계청의 ‘임금근로 일자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제조업 일자리 중 20대 일자리는 1만1000개, 30대는 2만7000개 줄었다. 반면 제조업 전체 일자리는 늘었다. 20대와 3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일자리가 늘어난 덕분이다. 40대는 1만4000개.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3만4000개와 5만1000개 제조업 일자리가 생겼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40, 50대 인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해고도 어려우니 점차 청년 채용을 줄이는 추세”라며 “소규모 제조업체는 인력난에 허덕이지만, 처우와 급여가 열악해 청년들이 등을 돌린다”고 설명했다.
경기 의왕시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임모(32) 씨도 2년 전까지는 충청지역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그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낮은 급여였다. 애초에 급여가 낮았던 데다가 직장을 그만두기 2년 전부터 연봉이 동결됐다. 그는 “2019년 연봉 협상에서 회사 대표가 지난해 연봉을 동결했으니 올해는 5% 인상해 주겠다고 공언했다”고 말했다.
명목상 연봉은 올랐다. 하지만 임씨의 실수입은 줄었다. 물품을 납품할 때 모는 회사차 유류비와 출장비, 식대를 없애버렸기 때문. 2019년 그의 월수입은 230만 원 정도. 하지만 연봉이 오른 뒤 그의 급여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월 2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임씨는 “대표에게 임금을 정상화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임금도 올려줬는데 배은망덕하다는 타박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인의 소개로 수도권에서 배달 일을 시작했다. 지금 그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3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직주근접과 출산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5월 26일 트위터에 올린 글. 현재의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한국은 3세대 안에 인구가 현재의 6%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트위터]
20, 30대 인구의 감소 주요 원인은 서울시 밖 전출이다. 서울시 전출 인구의 52.2%가 이 세대다. 특히 30대의 이탈이 많았다. 박종수 서울시 스마트도시정책관은 “이 부분(젊은 층 주거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훈(36) 씨는 최근 경기 지역으로 이사했다. 전세금이 올라서다. 결혼 후 서울 구로구에 전세로 아파트를 구했는데, 2년 만에 전세금이 2억 원가량 올랐다. 그렇다고 집의 규모를 줄일 수도 없다. 5살 난 아이 때문이다. 60㎡ 남짓 크기 집에서 더 줄이면 이제 답은 투룸뿐이다. 같은 가격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살던 아파트 인근 다세대주택 정도였다. 치안 문제가 걸렸다. 다세대주택 앞은 가로등도 많지 않은 어두운 골목길이다. 김씨는 “골목길이 차도 인데다 대로변에서부터 집까지 어른 걸음으로도 10분이 걸린다. 아이는 물론 아내의 출퇴근길을 생각하니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직장과 집이 멀어질수록 출산도 멀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팀은 2011~2015년 국가건강정보 빅데이터에 등록된 15~49세 여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집과 직장의 위치에 따른 출산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직장과 집이 동일 기초단체(시·군·구)일 경우 출산율은 1.20명. 다른 기초단체일 경우 출산율은 1.08명. 아예 집과 직장이 다른 지방에 있다면 출산율은 1.05명으로 떨어졌다.
부산, 혁신도시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출산율을 높이려면 안정적 일자리와 직장과 가까운 곳의 저렴한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방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서울보다 주택가격이 저렴한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정부는 지방에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2005년부터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409개 공공기관 중 346개 기관(85%)이 수도권에 있었다. 수도권에 있던 기관 중 176개 기관이 이전 대상으로 선정됐다. 기관 통·폐합을 거치며 153개 기관 이전이 확정됐다. 2019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충북 진천군으로 자리를 옮기며 1차 이전을 완료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일한 관계자는 “(정책 수립 당시에는) 출산율 하락보다 지방의 고령화가 더 큰 문제였다. 공공기관이 이전한다면 일하는 인구가 늘고, 그에 따라 지역 경제도 활성화 돼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정책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효과 및 정책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으로 혁신도시의 인구와 고용이 증가하며 단기적 성과를 보였으나, 그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공공 일자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당 지역 인구는 늘었으나 인구 증가가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혁신도시 9곳 모두 인구가 늘었다. 그중 당초 계획보다 인구가 더 늘어난 곳은 부산 혁신도시뿐이다. 부산 혁신도시는 남구, 영도구, 해운대구에 걸쳐 있다. 부산 남구의 출산율은 0.69명, 영도구와 해운대구의 출산율은 각각 0.55명, 0.69명에 불과하다. 부산시 전체 평균 출산율인 0.73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부산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가장 많이 빠져나간 곳이다. 지난해 2월 서울대학교 인구정책연구센터가 추출한 ‘인구 감소 캘린더’에 따르면 2015년 부산에서 서울, 인천, 경기로 유입된 인구는 4155명에 그쳤다. 하지만 2016년 7566명으로 늘더니, 2019년에는 1만3520명의 부산시민이 수도권으로 이주했다.
공공기관 이전해도 2030은 서울로
특히 20, 30대 인구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전국 17개 시도의 20, 30대 인구 증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부산의 20~39세 인구는 2018년 89만9000명에서 2021년 82만6000명으로 줄었다. 감소율은 8.1%. 같은 기간 부산 전체 인구는 344만1000명에서 335만6000명으로 8만5000명(2.5%) 감소했다.부산 외에도 청년층 인구 감소가 두드러지는 광역단체는 울산(-11.1%), 경남(-10.3%), 경북(-9.8%), 전남(-9.17%) 등이 있다. 이 지역에는 모두 혁신도시가 있다.
지난해 말 직장을 구한 유모(30) 씨도 취업 전까지는 줄곧 부산에 살았다. 유씨의 전공은 영상. 대학 졸업 후 목표는 부산 내 영상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해운대에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있으니 부산에서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깨졌다. 졸업한 선배 중 부산에 남은 선배가 드물었다. 그만큼 일자리가 부족했다. 그는 지금 서울 관악구의 반지하 방에 살며, 소규모 영상 프로덕션에 다니고 있다.
유씨에게 결혼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결혼에 앞서 반지하 방에서 일단 벗어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나와 결혼해 아이를 낳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나주 혁신도시도 출산율 높이지 못해
혁신도시가 있는 다른 도시들은 부산에 비해 높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대구가 0.78명으로 부산을 제외하고는 출산율이 가장 낮았다. 전북이 0.85명으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는 경남(0.90명), 울산(0.94명) 충북·제주(0.95명), 경북(0.97명), 강원(0.98명)이다. 출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1.02명)이다.출산율만 보면 대구와 부산을 제외한 지역이 모두 전국 평균 출산율(0.81명)을 상회한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모두 2015년 이후 출산율이 줄곧 하락해 왔다. 특히 전남은 2015년 출산율 1.55명을 기록한 지역이다. 불과 6년 만에 출산율이 0.53명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출산율은 0.43명 줄었다.
전남 나주시 혁신도시의 인구 증가 효과도 크지 않았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의 분석 결과 나주시로의 인구 유입은 한국전력이 본사를 나주로 이전한 2015년(7566명) 정점을 찍었다. 이후 이주 인구가 계속 줄었다. 2016년엔 6158명, 2017년에는 5766명, 2018년에는 나주시 이주 인구가 3746명에 불과했다.
나주시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홍모(51) 씨는 “처음에는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가족과 함께 내려오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며 “지금은 근처 원룸을 빌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는 주말부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예진 서울대 인구정책센터 연구원은 “최근 수년 동안 나주시에 나타난 인구 순유입 현상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간 순유입만으로는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세종시 높은 출산율 계속될까
인구밀도와 실업률이 낮은 지역도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Gettyimage]
조영태 교수는 “지방 곳곳에 인구를 넓게 퍼뜨리기보다는 젊은 층이 서울 대신 정착할 만한 핵심 도시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년층의 수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방 도시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지만 세종은 그중 출산율 하락폭이 작은 편이다. 2020년 이후 전국 모든 광역시·도의 출산율이 하락했지만 세종은 1.28명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인구순유입률 1위(3.9%)를 기록했다. 2위인 경기(1.1%)와 격차가 3배 이상 난다. 특히 20대(6.9%)와 30대(5.6%) 인구 유입률이 높다. 그만큼 도시가 젊다. 지난해 세종시민 평균연령은 36.9세. 전국 평균(42.9세)보다 6세 아래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도 10.2%로 전국(17.4%)에서 가장 낮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정확한 분석을 통해 제2의 세종시를 만들어야 할까. 인구학자들은 세종시의 높은 출산율도 곧 한계에 부딪힐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은 “세종시가 높은 출산율을 기록한 것은 인근 지역 신혼부부가 많이 이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구 감소 막을 방법 없어
이상림 연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세종시에 정부기관이 차례로 이전하며 새 아파트가 크게 늘었다. 인구보다 아파트가 많았으니 집값 부담이 크게 줄었다. 그 덕분에 인근 지역인 대전, 청주, 공주에서 신혼부부들이 세종시로 이주해 살림을 시작했다. 전체 인구에서 신혼부부의 비율이 높으니 자연히 출산율이 높아졌다는 것. 이 연구위원은 “아파트 신규 분양 입주가 멈추면 세종시의 출산율도 전국 평균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학계에서는 대체로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본다. 조영태 교수는 “출산율을 회복해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 인구 감소를 막으려면 출산율이 2.1을 넘어야 한다. 출산율이 1.5명 아래로 떨어지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 문제로 고민한 선진국이 많다. 그 나라 중 출산율 2.1을 회복한 곳은 없다.”
전영수 교수도 7월 KBS 유튜브 콘텐츠 ‘박종훈의 경제 한 방’에 출연해 “출산율이 1993년 1.73명 정도로 떨어졌다가 2010년 2.03명까지 회복한 프랑스의 사례가 있으나 이는 해외 인구 유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유입 인구가 자녀를 많이 출산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출산율이 잠깐 회복됐다”며 “해외 인구 유입이 없는 상황에서 출산으로 인한 인구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산 시대를 맞은 한국 인구정책의 현실적 정책목표는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높여 인구 감소를 완화하는 것”이라며 “동시에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사회에 발맞추어 복지 및 사회제도를 조금씩 고쳐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구정책, 과도한 경쟁이라는 특수성 고려 안 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영국의 인구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편 주장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 맬서스의 인구론은 전혀 걸맞지 않은 주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구론에는 지금의 한국을 예견한 대목도 있다. 조영태 교수는 “맬서스의 이론에 따르면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인구가 증가하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 경우 생존 본능이 아이를 낳고자 하는 재생산 본능보다 앞서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는 청년세대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생존도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하려면 지원금보다 이들의 경쟁을 줄이는 정책을 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먼저 저출산 문제를 겪은 유럽 국가의 사례를 적용하다보니 과도한 경쟁이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선권 국회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이 5월 발표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미혼 출산율이 현저히 낮은 편”이라며 “한국 사회의 이 같은 특수성을 고려했다면 저출산 대책은 결혼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출산율을 분석하는 학자들은 출산율을 회복하려면 청년층의 삶이 한층 더 나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출산 자체를 늘리려 했다면, 앞으로의 정책은 젊은 층이 출산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 이상림 연구위원도 “출산, 육아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청년의 생애 과정을 분석하고 이들이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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