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언급하지 않는 한동훈, 당정 관계 재확립 초석 놓아
민주당은 애초에 언로가 열릴 수 없는 곳
이준석 신당보다 이낙연 신당이 더 큰 파급력
보수는 분열로 그쳐도 민주당은 적통 싸움 시작
지지층 감언만 들으면 총선 승리 멀어져
[영상] “민주당, 서울과 도봉구 홀대하며 방치”
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 [이상윤 기자]
지난해 12월 15일 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시점이 묘했다. 글을 남기기 이틀 전인 12월 13일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했다. 이후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입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이 글에서 2012년 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언급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집권기다. 대통령 임기 막바지였고, 정당 지지율은 30%를 밑돌았다. 정부·여당 심판론이 불거지는 시점이었다. 이를 잠재우고자 나선 사람이 박근혜 전 대통령. 이 전 대통령의 정적이던 그가 나서자, 정당 지지율이 회복됐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는 야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총선에서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치받을 수 있는 여당 인사였다”며 “우리 정부의 입장만 대변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으로 오면 수도권 선거는 어렵다”고 짚었다.
발언 후 2주 정도 지난 뒤인 1월 2일, 서울 도봉구 국민의힘 지역위원회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비대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시점. 그의 생각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김 위원장은 “당정관계 재확립은 당위의 문제”라며 “한 비대위원장이 당정관계 재확립을 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며 기대를 비쳤다.
한 비대위원장에게 기대를 품은 계기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에서 희망을 봤다.”
한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마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정관계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대통령은 대통령의 할 일을 각각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후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은 만큼 아직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 비대위원장이) 취임 일성부터 당정관계 재확립에 대한 시사점을 줬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동훈은 대통령 ‘치받을’ 인사인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임명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동아DB]
“대통령이나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지 못한다면 지난 지도부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비대위가 아니라 현상 유지위원회로 전락하는 셈이다. 새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을 치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지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당이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점이다.”
당정관계 재확립의 분수령 중 하나는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비대위원장) 본인이 살려면 특검을 받아들이고 윤 대통령의 분노, 진노에도 불구하고 여당을 이끌고 (특검) 법안을 통과시키는 쪽으로, 대통령이 거부해도 재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나도 과거에 비슷한 주장을 폈으나, 민주당이 특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정부를 공격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여전히 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나.
“민주당은 총선 승리를 위해 이 문제를 계속 상기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총선용 정치 공격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민심이 흔들린다. 조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국민 과반이 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비대위가) 특검법을 통과시킨다면 당정관계가 바뀌었다는 신호가 된다. 민주당이 비대위원장에게 ‘대통령 아바타’라는 등의 공격도 못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특검법을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한 비대위원장은 특검법은 물론 대통령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다. 당은 당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할 일만 하겠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한동훈 위원장은 1월 10일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경남도당 신년 인사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2부속실 설치’를 건의하고 대통령 친인척 등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1월 8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결을 위해 대통령실과 당이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1월 17일 김 비대위원은 다시 한 번 김건희 여사 문제를 거론했다. JTBC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사과를 언급했다. 1월 21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봉합 수순을 밟았다.
서울 의석 과반 가능
그렇지만 당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은 조사 결과도 적잖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지난 총선 패배의 잔상이 남아 있다. 너무 크게 져버려서 당의 체질이 바뀌었다.”
당이 총선에서 이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의미인가.
“정확히는 중도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들을 창구를 잃었다. 지지율이 높은 당이 되려면 경합 혹은 열세 지역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야 한다. 이들은 예민하게 중도층 지지자들의 민심을 반영해야만 다음에도 당선이 가능하다. 이들은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반면 당 지지율과 무관하게 당선될 수 있는 영남 등 우세 지역 당선자들은 공천이 지상 목표가 된다. 공천만 되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니 당내 권력투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만큼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없게 된다.”
지난 총선에서 이긴 더불어민주당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애초에 언로가 열릴 수 없는 곳이다. 여전히 86세대로 대표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기득권이 공고하다. 그 지점을 생각하면 원외에서라도 쓴소리할 수 있는 여당에 희망이 있다.”
당장 총선을 치르면 여당이 서울 49개 의석 중 몇 석이나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나.
“여론조사 동향을 낙관적으로 해석해 보면 15개 정도 가능할 것 같다. 비대위가 성공적으로 당정관계를 재확립한다면 과반도 꿈은 아니다.”
이준석 대표가 신당을 창당했다. 신당 변수도 생각한 계산인가.
“야당에도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의 개혁미래당이 있다. 개혁신당이 국민의힘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개혁미래당이 민주당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본다.”
낙관적 전망 아닌가. 개혁신당의 동력이나 인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개혁미래당에 합류하려는 야당 인사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압승으로 현역의원이 많아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친명계가 아니어서 공천이 불투명한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신당은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된다. 개인기가 뛰어나거나 조직이 탄탄한 인물은 신당에 합류할 공산이 크다. 여기에 친문·친노계 혹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합류한다면 그때부터는 민주당과 적통 갈등이 벌어진다.”
개혁신당도 여당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은데.
“개혁신당은 정부와 여당의 모습에 실망한 보수 및 중도층 유권자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당이 실망한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개혁신당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결국 지지율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지지율을 회복할 방안이 있나.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감언만 들었다간 당은 점점 우경화되고, 총선 승리와는 더 멀어진다.”
민주당, 재개발 막아
김 위원장이 터 잡은 도봉갑 지역구는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3선한 곳이다. 김 전 의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의 아내인 인재근 의원이 지역구를 이어받아 또 3선을 지냈다. 민주당 텃밭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충분히 당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성과도 있다. 도봉구청장과 도봉구에서 당선한 4명의 서울시의원이 전부 국민의힘 소속이다. 구의회도 여대야소다. 14명의 구의원 중 8명이 여당 소속이다. 같은 날 지역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강혜란 도봉구 구의원은 “김 위원장 덕에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면서 웃었다
도봉구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왜 하필 이곳에 자리 잡았나.
“이곳에 꽤 오래 살았다. 이 사무실 뒤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이 거리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한결같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발전하지 못했다. 사실상 방치된 것이다.”
2022년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도봉구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조4050억 원. 서울 25개 자치구 중 24위. 1위 강남구(71조8530억 원) GRDP의 4% 수준이다.
도봉구 정치인들이 지역발전 노력에 소홀했다는 의미인가?
“민주당 텃밭으로 불릴 만큼 도봉구민들은 꽤나 오래 민주당을 지지했다. 민주당도 충분히 도봉구를 발전시킬 시간과 능력이 있었다. 차기 대선후보로까지 꼽히던 김근태 전 의장은 물론 인재근 의원도 당내 중진이다. 게다가 전 구청장(이동진 전 구청장)은 서울시 전체 구청장협의회 회장이었다. 그런데도 도봉구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기획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동아DB]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만 봐도 알 수 있다. 책에는 재개발돼 다세대주택이 아파트가 되면 지역 민심이 보수정당에 유리하게 바뀐다는 내용이 있다. 민주당이 표를 얻고자 서울 내 낙후 지역 재개발을 일부러 막아온 셈이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이 재개발돼 아파트로 바뀌면 투표 성향도 확 달라진다. 한때 야당(민주당)의 아성이었던 곳이 여당(보수정당)의 표밭이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 설계자다.
김 위원장은 “이렇게 낙후한 지역이 도봉구 외에도 많다”며 “당이 지지율을 회복하고, 민주당과 달리 민생을 먼저 챙기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지금의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 홀대한 민주당에 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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