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익 지음, 세창출판사, 739쪽, 3만3000원
익숙한 이미지가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신화 속 이야기가 브랜드의 가치를 자연스레 설명한다.
신화 연구자인 김원익 박사는 책에서 일상 속 다양한 이름과 로고에 녹아 있는 신화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의 원형은 저자가 10여 년 전 대학에 개설했던 강의 ‘상표와 로고 속 신화 이야기’다. 김 박사는 다양한 신화 속 인물과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친숙한 상표와 로고로 설명했다.
강의는 인기를 얻어 상아탑 밖으로 나왔다. KBS TV 특강 ‘신화, 인간의 거울’로 4회에 걸쳐 방영되기도 했다. 이후 김 박사는 SBS 라디오 프로그램 ‘책하고 놀자’에서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읽기’를 2년여간 진행했다.
이외에도 도서관, 학교, 기업의 인문학 강의를 통해 이름으로 신화의 일면을 소개해 왔다. 강의가 여러 번 진행된 만큼 그 내용은 더욱 방대해졌다. 책은 지금까지 강의한 내용의 집대성이다.
책 내용은 강의의 형식을 닮아 있다. 장(章)마다 브랜드명을 비롯해 다양한 이름에 녹아든 신화를 풀어낸다. 총 120개 장을 통해 나이키, 에르메스 등 유명 브랜드의 이름과 상징은 물론 무기나 전염병의 이름, 심리학 개념, 영화 제목과 곡명을 비롯해 현대 시사, 문화 전반에 붙여진 다양한 이름을 다룬다. 매 장에는 각 신화를 소개하는 명화와 도표를 삽입해 저자의 설명에 실감과 흡인력을 더한다.
단순히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책은 이름과 상징이 어떻게 신화를 재해석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승리의 여신 니케가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이름과 로고가 되는 과정, 그리스 신화 속 괴물 메두사의 이미지가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의 상징이 된 이유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를 통해 신화적 요소가 현대의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면밀히 분석한다.
책이 다룬 내용 중 하나는 디엘이앤씨의 고급 아파트 브랜드 ‘아크로’. 고대 그리스의 가장 높은 도시였던 ‘아크로폴리스’에서 따온 만큼 아크로는 그 지역 아파트 중 가장 높게 짓는다. 높은 만큼 쉽게 눈에 띄고 그만큼 쉽게 유명해진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가 지역을 상징하는 고가 아파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높이와 이름 때문일 공산이 크다.
아파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책은 신화가 현대인의 욕망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방식도 보여준다. 생활의 눈으로 신화를 읽는 셈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신화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다른 이야기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로 세상 모든 이야기의 모델이자 원형이다. 신화는 고대인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야기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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