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은행 희망퇴직은 ‘돈 잔치’… 노조도 대상 확대 요구

[금융 인사이드] “특별퇴직금 5억 원 받고 인생2막 열겠다”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1-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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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大 은행 올해 3000명가량 희망퇴직 전망

    • 역대급 실적에 희망퇴직 희망하는 행원들

    • 대상 연령 40대까지… ‘칼바람’ 아닌 ‘잔치’

    • 고금리 속 ‘퇴직금 잔치’에 싸늘한 시선도

    [Gettyimage]

    [Gettyimage]

    희망퇴직이라고 하면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칼바람이 곳곳에서 불면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에 시달렸다. 최근 국내에 다시 희망퇴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글로벌 경제 침체의 여파가 빠르게 확산하는 영향이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은행에서도 희망퇴직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 주요 은행이 줄줄이 희망퇴직에 나서면서 산업 전반에 걸친 경기침체를 실감케 했다. 희망퇴직 대상 연령이 40대로 낮아진 경우까지 나왔고, 5대 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에서 올해에만 3000명가량이 떠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더해지면서 이목이 쏠렸다.

    다만 최근 은행권에서 이어진 희망퇴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온도 차가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 희망퇴직이란 용어에는 ‘감원 칼바람’이라는 서늘한 수식어가 붙곤 한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수천 명에 달한다는 소식은 안타까운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은행권에는 다소 생소한 표현이 수식어로 붙는다. 칼바람 대신 ‘돈 잔치’라는 단어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은행들이 감원을 대대적으로 하면서도 이런 시선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82년생까지 낮아진 희망퇴직 대상 연령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NH농협은행이 희망퇴직을 단행해 500명가량이 짐을 쌌고, 이후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이 줄줄이 희망퇴직을 진행해 많게는 한 은행에서 700명 이상이 은행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대체로 3년(36개월) 안팎 규모의 월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제시했다. 또 재취업 지원비와 자녀 학자금, 건강검진 등 의료 비용 등을 각각 수천만 원씩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런 희망퇴직 보상 규모를 고려할 때, 부지점장급 인력이 희망퇴직을 할 경우 받을 수 있는 특별퇴직금은 4억~5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퇴직 대상이 40대 등으로 확대된 점도 특징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만 15년 이상 근무한 1982년 이전 출생자를 대상으로 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부지점장 이상만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직급과 연령을 부지점장 아래와 만 44세까지로 대폭 낮췄다. 우리은행 역시 1980년 이전 출생자를 대상에 포함했다.

    이런 희망퇴직은 사실 은행업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마치 연례행사처럼 진행하던 일이다. 실제 5대 은행 희망퇴직자 수는 2020년 1700명에서 2020~2021년에는 2000명대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는 대상 범위를 더욱 넓힌 만큼 최대 3000명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은행들은 디지털 금융으로 전환 흐름 등이 맞물려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2월 29일 내놓은 ‘대한민국 금융소비자 보고서 2023’에 따르면 은행 고객 중 모바일을 이용하는 고객이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 소비자의 82.1%는 최근 6개월 내 모바일 앱을 통해 은행 업무를 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지점 이용 고객 37.9%의 2.2배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은 지속해 지점을 줄이고 있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출장소를 포함한 지점은 총 4129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8개 감소했다. 2018년 9월 말에 비하면 15.5%(758개) 줄어든 수치다.

    다만 점포를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여전히 비대면 금융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이 있어 무작정 줄이기만 할 수는 없다. 특히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월 5일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정상화하는 가운데 은행 영업시간도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은행권에 대한 국민 정서와 기대에 부합할 것”이라며 은행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희망퇴직 연령 하향은 노조 측 요구”

    한용구 신한은행장은 2022년 12월 30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층의 취업 기회 확대 측면에서라도 희망퇴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뉴스1]

    한용구 신한은행장은 2022년 12월 30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층의 취업 기회 확대 측면에서라도 희망퇴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뉴스1]

    앞서 은행권은 2020년부터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당초 오전 9시∼오후 4시이던 영업시간을 오전 9시 30분∼오후 3시 30분으로 단축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은 앞으로도 인력 감축을 이어갈 거라는 전망이 많다. 비용 절감은 물론 IT 전문가 등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용구 신임 신한은행장도 지난해 12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희망퇴직과 관련해 “젊은 층의 취업 기회 확대 측면에서라도 희망퇴직은 불가피하다”고 답하면서 점포 통폐합 작업에 대해서는 “이미 출장소를 포함해 150개 점포를 통·폐합했고,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영업점 통·폐합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지만, 통·폐합 과정에서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앞으로 매년 적지 않은 인력이 퇴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론의 시선은 다소 싸늘하기도 하다. 일단 은행들이 당장 경영이 어려워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 은행들은 한쪽에서는 대대적인 성과급을 지급해 주목받기도 했다. 주요 은행들은 기본급의 300~4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시중은행들이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한 데 따른 결과다. 5대 은행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11조2203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9조5017억 원)보다 약 18% 늘었다. 같은 기간 이자 이익은 40조600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조9000억 원 증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아울러 은행이 강제로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직원들의 수요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에는 되레 노동조합 측에서 희망퇴직 확대를 요구하기도 한다”며 “이번에 연령 등 대상을 확대한 것도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실적이 다소 주춤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희망퇴직 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예상에 신청자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또 치열해진 승진 경쟁에서 밀려날 경우 차라리 희망퇴직을 선택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조건이 좋을 때 인생 2막을 준비하겠다는 직원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

    은행업 전망 밝지 않아, 재정비 필요

    결국 은행들의 감원 칼바람은 다른 업권과는 다르게 단순히 불황에 따른 현상은 아닌 셈이다. 회사 처지에서는 디지털화에 따른 사업 및 인력 구조 개편이 필요했고, 회사원들 처지에서도 그 나름 좋은 조건에 제2의 인생을 선택하려는 이들이 많아진 결과다.

    물론 은행 역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빅테크(대형 IT기업) 등과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전통 은행업의 전망이 예전처럼 밝지만은 않다. 고금리로 서민의 부담이 커지고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는 속에서 성과급이든 퇴직금이든 역대급 규모로 ‘잔치’를 벌이는 은행에 대한 시선이 싸늘할 수밖에 없다.

    다른 제2금융사 관계자는 “은행들의 희망퇴직 확산은 최근 수년간 역대급 실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경기침체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증권사나 건설사, 유통사 등 여타 산업에서 벌어지는 감원 칼바람과는 온도 차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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