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위대한 삶과 리더십 | 김윤중 지음, 리더북스, 288쪽, 1만2000원
올 초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컸지만, 시급한 난제들을 명쾌하게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어 국민의 실망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대다수 정치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족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 요즘의 한국 정치 상황은 관용도 여유도 없는, 마치 닭싸움을 보는 듯하다. 메마른 한국 정치 상황에서 꼭 필요한 리더십이 뭘까 하는 고민에서 이 책은 시작됐다.
많은 정치 지도자가 존경하는 인물로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는다. 5년여 동안 링컨과 관련한 수많은 논문과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분석하면서 그의 리더십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에 그의 리더십을 정리한 인물 평전을 써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벽지의 무명 변호사였던 링컨은 어려운 정치 상황에서 유망한 라이벌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미합중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노예해방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며 오늘날까지 미국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가 됐다. 눈앞의 인기나 이익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와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링컨은 용기, 결단력, 행동력, 관용 및 인내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분열의 위기에서 대통합을 이끌어낸 지도자다. 어떠한 위기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가 하면, 견해가 다른 적과도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토론과 설득에 나섰다. 적과의 공통점을 찾고 통합하려 애썼다. 그의 포용력은 그와 대립했던 남부의 적대 세력에게까지 일관되게 적용됐다. 그리고 의회의 반대에도 남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관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펼쳤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며, 국민과 인류의 행복을 위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또한 뚜렷한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은 양보했다. 신념은 지키되 통합을 중시했던 것이다.
인재를 등용할 때도 사람의 좋고 나쁨에 따라 판단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조차 어떤 직위에 적합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기용했다. 대통령 당선 후 노예제도 폐지 절차 문제를 놓고 정치적 견해가 상반됐던 정적 더글러스를 순회특사로 임명해 연방정부가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각 주에 설명케 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유머 감각이 풍부한 지도자였다. 위기를 유머로 넘겨 오히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감각이 탁월했다.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은 배포가 크고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력도 사실 넉넉한 배포와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정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들, 정치·사회의 높은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링컨의 이야기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켜주길 소망한다. 무엇보다 정치인, 정치 지망생들이 그의 리더십과 삶의 자세를 배우길 기대한다.
김윤중 | 전 박근혜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조직총괄특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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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익 평전 | 고승철·이완배 지음
1983년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발 테러로 사망한 김재익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삶과 경제사상, 업적을 담고 있다. 저자들은 ‘5공화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던 김재익에 대해 “21세기 번영의 초석을 다지고 한국 경제 백년대계를 설계했다. 시대의 선각자에게 우리는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그를 모른다”고 아쉬워한다.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시절 급등하던 물가가 잡혔고, 저축률이 올라갔다. 수입자유화를 통해 개방 경제의 기틀이 닦였고, 통신혁명이 추진됐다. 강력한 개발독재 경제시스템이던 한국 경제가 비로소 자유시장경제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또한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를 발족하고,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1982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는 등 경제민주화의 선각자이기도 하다.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408쪽, 1만8000원
가야만 사는 길-역사는 안보다 | 권희영 지음
교학사가 출판한 ‘한국사’의 대표 집필자인 저자는 그동안 여러 매체에 좌파적 역사 인식에 정면으로 맞서는 칼럼을 기고하며 역사전쟁을 치러왔다. 그의 칼럼을 ‘대한민국 진실 바로알기’ ‘잊어서는 안 되는 것’ ‘무엇을 할 것인가’ ‘문명의 역행과 순응’ ‘한국현대사와 역사교육’ 등 8가지 주제로 묶었다. 교학사 교과서와 천재교육, 금성교육 등 7종의 한국사 교과서를 비교 분석해 이들 좌편향 교과서들의 역사 기술 문제점을 세밀하게 분석한 부록편이 눈에 띈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정립하지 못한다면 북의 핵 위협에 굴복하여 조공을 통해 ‘사이비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비참한 지경으로 떨어져버릴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길만은 막아야 한다. 우리는 ‘가야만 사는 길’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글마당, 327쪽, 14,000원
소설 황장엽(전 2권) | 림일 지음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북한 내 최고위직을 역임하고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철학의 근간을 만든 황장엽은 북한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소설은 황 전 비서의 북한에서의 삶과 북한 체제에 등을 돌리고 1997년 한국으로 망명을 결심하기까지의 고뇌, 2010년 사망하기까지 14년간 한국에서 외롭게 북한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여정을 세세하게 담았다. “북한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선생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너무 쉽고 빨리 잊히는 게 안타까워 선생의 삶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선생의 일생을 왜곡하지 않을 만큼의 살만 붙여 거의 일대기에 가깝게 썼다”고 설명했다. 탈북자 출신인 작가는 2011년 ‘소설 김정일’을 펴내기도 했다. 시대정신, 각권 286쪽 내외, 각권 1만 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김지하와 그의 시대 | 허문명 지음, 블루엘리펀트, 501쪽, 1만8500원
우리는 지금 무감각해질 정도로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지만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붙잡혀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지금까지도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2013년 1월 대선 후보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김지하 인터뷰가 이 책의 출간 계기가 됐다. 동아일보 1월 9일자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독자로부터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너무 쉽게 잊은 것 같다. 그 시대를 더 알고 싶다’는 전화와 e메일을 많이 받았다. 이에 따라 우선 1991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다가 중단하고 2000년 출간한 김지하 회고록을 토대로 그의 증언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그가 살고 있는 강원도 원주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거의 100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각종 자료와 관련자 인터뷰가 더해졌다.
1960, 70년대 신문에 민주화투쟁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유신정권의 소위 긴급조치 시대(1974∼1979년)에는 엄격한 보도통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법정 취재조차 큰 사건의 경우에만 가능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으며, 반정부 민주화운동이 가열차게 일어났던 그 시대를 우리가 잘 모르는 이유다. 1961년의 군사쿠데타는 산업화의 출발이기도 했지만 민주화 투쟁의 출발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지난 1960, 70년대를 다시 봐야 하는가. 바로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의 ‘통합적 역사 인식’ 없이는 통일 한국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민화합은 최대 이슈였지만 통합의 구체적 내용과 비전은 아직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국민통합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가치통합, 세대통합이 없이는 힘들다. 그동안 두 세력은 서로에게 가시 돋친 비난을 쏟아내며 충돌해왔다.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향해 권력지향성이 강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비판했고,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향해 소통 능력이 부재하고 부패한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쓰며 필자가 느낀 점은 산업화, 민주화를 분리해서 봐서는 안 되고 국민적 입장에서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들은 머릿속에서는 서로 다른 것일지 몰라도 국민의 삶 속에서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한마디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인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국민적 소망의 실현 과정이었다. 각 분야에서 리더들이 큰 기여를 하긴 했으나 산업화 민주화의 주역은 모두 국민이었다. 이 책을 통해 지난 시절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모두 노력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의 동시대에 성공시킨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나아가 통일의 문을 열어젖히는 세대가 돼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허문명 | 동아일보 오피니언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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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 칼, 책 | 어니스트 겔너 지음, 이수영 옮김
20세기 대표 지성인으로 꼽히는 저자는 좌·우파 논쟁이 심각했던 시기에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았다. 공산주의, 자유시장의 독재 등을 비판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민족주의 이론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도 역사, 철학, 인류학 등 20세기 인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도 남겼다. 이 책은 저자의 역사철학 관념을 집대성한 것이다. 저자는 역사의 ‘예측 불가능성’을 단언한다.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로 이어지는 이른바 3단계론에서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 저자는 쟁기(생산), 칼(억압), 책(인식)이라는 세 가지 상징물이 인간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와 만나면서 역사의 방향을 바꿔나갔다며 이 상징물들이 인류의 문화, 언어, 개념, 권력, 이데올로기, 테크놀로지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삼천리, 384쪽, 2만2000원
아프리카대륙의 일대기 | 존 리더 지음, 남경태 옮김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며, 인간을 포함해 무수한 동식물 종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그야말로 생명의 요람 같은 곳이다. 오늘날 지구 언어의 3분의 1에 달하는 2030여 개의 언어가 쓰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아프리카를 안다는 것은 인간과 생물, 그리고 지리를 모두 포괄하는 ‘시원의 역사’를 아는 것과 다름없다. 이 책은 아프리카를 유럽 중심주의나 아프리카 민족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하나의 인격체처럼 묘사한다. 대륙의 탄생 과정과 지리, 기후와 같은 외양을 묘사하고 그 내력을 소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또한 자연사적 역사를 풀기 위해 지질학, 고생물학, 언어학, 인류학, 심지어 기생충학까지 동원해 장대한 대륙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프리카 평전이라 할 만하다. 휴머니스트, 992쪽, 5만3000원
제3의 인류(전 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소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소설은 샤를 웰즈 박사가 남극 빙하에서 키 17m인 거인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거인은 문명을 이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은 과거 인류. 한편 웰즈 박사의 아들 다비드 웰즈 박사는 인류 존속을 위해 ‘소형화’ ‘여성화’된 새로운 인류 창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 결과 키 17㎝의 초소형 인간 ‘에마슈’가 탄생한다. 17m의 과거 인류와 170㎝의 현재 인류에 이어 제3의 인류가 탄생한 것. 작가는 이 초소형 인간들에게서 다시금 반복되는 문명사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그려내며 오늘날 파멸로 치닫는 현대 문명에 경종을 울린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한국을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러 차례 언급하는 등 한국 독자를 위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열린책들, 1권 448쪽, 2권 336쪽, 각권 1만3800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펭귄과 리바이어던 | 요차이 벤클러 지음, 이현주 옮김, 반비, 244쪽, 1만6500원
비즈니스의 세계는 종종 정글에 비유된다. 그만큼 치열하다는 뜻이다. 이 분야를 다루는 경제, 경영 관련 책들에는 무한경쟁, 적자생존, 탐욕, 이윤의 극대화 같은 다소 ‘험악’한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오랫동안 이 분야의 책을 번역해오면서, 나 역시 이런 표현들에 다소 무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된다. 경쟁보다 협력, 이기심보다 이타심, 이윤보다 상생을 제안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냉혹한 생존경쟁보다 따뜻한 인간성에 눈길을 돌리는 책들이 이제 하나의 흐름이 된 듯하다. 이 책은 연구의 폭과 깊이, 저자의 지명도, 메시지의 선명함에서 그런 흐름의 선두에 서 있는 책이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의 사례를 통해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협력 현상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교수다. 이 같은 내용을 담아 무료로 공개한 전작 ‘네트워크의 부(The Wealth of Networks)’는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비견해 ‘넷부론’이란 애칭을 얻으며, 연구자들과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타적인 협력이 온라인상에서만 벌어지는 특이하고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과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즉 그것이 결코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쉽게 허물어지고 말 장밋빛 전망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진화론부터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등 협력에 대한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종합한다. 도요타, 리눅스, 시카고 경찰,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등 현실의 실례들 또한 다채롭게 등장한다.
대중적인 책을 쓰겠다는 의지, 학술적인 용어나 개념이 독자에게 장벽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쓴 책이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사례가 망라되는 데도 읽기에 결코 어렵지 않다. 물론 번역하기가 쉬웠다는 뜻은 아니다. 쉽게 쓰인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함의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번역하는 내내 여러 서적을 참조하면서 신중을 기해야 했다.
저자는 단지 ‘협력의 시스템’을 제안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아주 단호하게, 협력의 시스템을 구축한 조직만이 미래에 생존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기적인 동기에만 기대는 조직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다양한 동기를 이끌어내는 조직을 결코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조직을 이끄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참조해야 할 이정표를 제시한 셈이다.
얼마 전에 둘째가 수능을 치렀다.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인간의 선의와 이타심을 긍정하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반갑다. 우리가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면서도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는가.
이현주│번역가, ‘위닝포인트’ 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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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교화 과정 |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이훈상 옮김
스위스 태생의 사학자 겸 인류학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78)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가 2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쓴 노작(勞作)이다. 우리가 ‘소위’ 전통이라고 하는 부계 중시, 종손의 가계 계승, 장자 우대 상속, 제사의 관행은 17세기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전통’이 어떤 발달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예 모르거나 종종 잊는다. 이 책은 15~16세기 사회에 신유학(성리학)의 도입과 정착이 지속적으로 강력히 추진된 동기는 무엇이었으며, 신유학이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친족, 조상 숭배, 가계 계승, 상속, 결혼, 상장례 등 6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려 초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한국의 역사를 통찰하며 유교사상이 한국에 미친 영향을 두루 살펴본다. 너머북스, 560쪽, 2만7000원
통도유사 | 조용헌 지음, 김세현 그림
통도사를 프리즘으로 삼아 신화와 불교, 민속신앙을 살펴본 ‘사찰 인문기행서’라 할 만하다. 저자는 신라 자장율사가 통도사 터를 잡을 때 등장한 나무오리 설화를 토대로 오리에 얽힌 신화를 설명하면서 풍수지리와 새 숭배 사상으로 시야를 넓힌다. 통도사 절터에 깃든 용의 신화를 서술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극락전에 그려진 ‘반야용선도’와 스톤헨지, 우드헨지, 네팔의 페와호수, 중국 장가계 등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신화의 상징인 강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기도 한다. 가수 조용필이 통도사 경봉선사로부터 “꾀꼬리를 잡아와봐라”는 화두를 듣고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를 만든 이야기도 전한다. 책 제목의 ‘유사(遺事)’는 ‘사기(史記)’와 대비되는 관점에서 종교적 신이(神異)의 세계까지 역사 서술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의미다. 알에이치코리아, 264쪽, 1만5000원
역사평설 병자호란(전 2권) | 한명기
국제전쟁으로서의 병자호란을 최초로 조망한 본격 통사(通史)다. 광범위한 사료를 섭렵하고 한국사는 물론 중국사, 일본사의 자료와 연구 성과까지 흡수했다. ‘과거’이자 ‘역사’로서 병자호란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오늘의 우리가 직면한 과제들을 푸는 데 필요한 반면교사로서 승화시킨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고 표현했다. 정면의 중국과 배후의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의 처지를 일컬은 말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자는 전략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활로를 찾으려 애쓰되 우리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푸른역사, 각권 396쪽, 각권 1만59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철학이야기 | 윌 듀런트 지음, 정영목 옮김, 봄날의 책, 731쪽, 3만 원
무릇, 모든 책은 시대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저자의 개인사를 오롯이 포함하면서도. 이 책의 탄생 배경과 그 의미를 충실히 짚어주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이 책은 철학책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좋은 문학작품이다’, 하여 그에 걸맞은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을 다시 내겠다고 마음먹고, 또 번역가를 고를 때 정한 원칙이었다.
우선 이 책은 책상머리의 산물이 아니다. 무거운 엉덩이의 힘에 기댄 학문적 결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듀런트는 한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철학 강좌를 맡았다. 그때 그들에게 플라톤을 강의했는데 우연히 출판업자의 눈에 띄어 저렴한 팸플릿으로 만들어졌다. 그 반응이 워낙 좋아서 그런 강좌를 12차례 거듭했고, 모두 ‘The Blue Book Series’라는 팸플릿으로 나왔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강좌를 통한 책 출간의 오랜 선배인 셈이다. 그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는다면, 왜 이 책이 쉬울 수밖에 없는가, 왜 사람의 삶에 집중해 묘사하고 서술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에 더해, 듀런트는 자신의 이 책이 완결된 텍스트가 아니라 원전들의 길잡이에 머물기를 바랐다. 듀런트는 말한다. “이 책은 철학자들을 대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이 책은 머리말이자 권유에 불과하다. 이 책은 철학자들을 풍부하게 인용하기 때문에, 책을 덮은 뒤에도 그들의 글맛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책은 원 텍스트를 읽어보라고 독자들을 여러 번 자극하고 있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때는 1970, 80년대였다. 불행히도 시대의 한계 탓으로, 원전 번역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듀런트가 진심으로 바랐던 원전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2000년대 이후, 니체 전집을 비롯해 볼테르, 쇼펜하우어 등 근현대 철학자는 물론 (천병희, 정암학당 등의 노력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책도 속속 번역됐다. 이런 출판 환경에서만이 이 책이 제대로 이해되고 사용될 수 있다. 필자 역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감동적인 대목을 보다가 플라톤의 ‘파이돈’을 펼쳤고, 이상국가를 다룬 대목을 보다가는 ‘국가’를, 볼테르를 보다가는 ‘쟈디그’와 ‘미크로메가스’를 펼쳐놓고 즐거워했다. 이 모두가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다.
저자 듀런트는 유려한 문장으로 이름 높다. 대작 ‘문명이야기’ 중 ‘루소와 혁명’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유려한 묘사, 우아한 유머가 넘친다. 철학에 대한 지식이나 조예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좋은 한국어 문장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번역가 정영목은 적임자였다. 그 번역문에서 저자의 원숙한 시선, 즉 철학자들의 삶과 사유를, 빛나는 전성기만이 아니라 회의하고 혼란스러워하고, 가끔은 비루한 만년의 삶까지 이해하고 포용하는 넉넉한 시선,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이 그 결 그대로 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감동을 부르고 낳았으리라. 이것이 이 책을 새로 낸 짧지만 분명한 이유다.
박지홍 | 봄날의 책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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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의 물결 | 제임스 브래드필드 무디 지음, 노태복 옮김
전 지구적으로 천연자원이 고갈돼가고 기후변화와 식량 확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자원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흐름이다. 저자는 순환되지 않고 버려지는 자원과 에너지를 활용해 자원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자원에너지 혁명이 제6의 물결이 될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 책은 산업혁명부터 정보통신혁명까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은 5개의 강력한 혁신 물결을 살펴보면서, 제6의 물결이 어떻게 우리의 현실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를 냉철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이미 시작된 제6의 물결의 파고 속에서 어떻게 기회와 경쟁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또한 어떻게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찾을 것인지 정교한 과학적 분석과 예측을 통해 현실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한경BP, 352쪽, 1만8000원
부품사회 | 피터 카펠리 지음, 김인수 옮김
갈수록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자는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딴다. 그런데 기업에서는 뽑을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와튼스쿨 교수이자 인재경영 전문가인 저자는 그 원인을 ‘부품사회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은 채용 과정의 구조적 측면에서 일자리 문제를 조명하고 노동시장에 만연한 편견을 논리적으로 파헤침으로써 사회에 진출하려는 취업준비생과 이직을 고려하는 경력자, 그리고 구인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회사가 입사하자마자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규격화된 직원만 바라면 장기적으로 회사와 국가 경제 모두에 피해를 준다”며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능력과 성향에 맞춘 성과를 낼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레인메이커. 168쪽. 1만2000원
홍보는 위기관리다 | 장상인 지음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홍보 관련 ‘위기관리 매뉴얼’을 담았다. 홍보 업무 경력 30년이 넘는 저자는 풍부한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실전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있다. ‘긴급 기자회견 전의 준비와 마음가짐’ ‘위기 상황 시 기자 질문에는 어떤 패턴이 있는가’처럼 언론 대응 매뉴얼도 매우 구체적이다. ‘공장 화재·폭발 사고 시 체크리스트’ ‘환경오염 사고 시 체크리스트’ 등 위기관리 때 점검해야 할 리스트도 꼼꼼하게 정리했다. 또한 홍보 책임자의 권한과 자질, 위기의 유형과 위기관리의 문제점, 오보 대응 요령, SNS상의 위기관리 등 홍보맨이 일반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정보도 충실하게 실었다. 기업이나 조직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많다. 소담출판사, 288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