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은 건강, 사회·경제, 인권의 균형”
설 자리 잃은 삶 세밀하게 살펴야
공동체 안정과 사회적 연대 강조하는 스웨덴
감염 사실 알리기 어려운 억압적 분위기
강제 안심밴드, 인권침해 우려
숫자가 만드는 공포심
“재확진자 막는다고 방역 기조 바꾸면 안 돼”
[지호영 기자]
초기 방역에 실패한 유럽 국가들이 한국을 방역 모범 국가로 불렀지만, 그건 감염자의 추적(trace), 검사(test), 치료(treat)에 관한 얘기다. 개인정보 공개와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확진자 동선 공개 방식에 대해 서구 언론은 조롱에 가까운 보도를 하기도 했다. 실업과 파산 같은 사회·경제적 혼란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방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한국을 코로나19에 맞서 가장 성공적 노력을 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도 한국의 추적 앱 사용에 대해선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의 사생활을 둘러싼 큰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위기가 전투의 정점이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설 자리 잃은 삶 세밀하게 살펴야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4월 13일 오후 1시 기준(한국 시각) 세계 최대 코로나19 환자 발생국은 미국으로 총 누적 확진환자는 56만433명이다. 뒤이어 스페인 16만6831명, 이탈리아 15만6363명, 프랑스 13만2591명 순이다. [뉴시스]
- 코로나19 대응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에 비유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고강도 방역 정책으로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한국은 초기에 우려하던 것과 달리 코로나19 발생 곡선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에서 발생 환자가 많다고 해서 여전히 그들과 차이 없는 과격한 방역 전략으로 대응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그 곡선을 납작하게 만든 의미가 크게 퇴색될 것이다. 국민이 그동안 잘 따라왔지만 인내에 한계가 생길 것이다. 감염 예방에만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개인정보 보호나 인권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 비정규직 일자리의 위태로움, 극빈층에 대한 구호, 설 자리를 잃은 예술가와 문화인들의 삶도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가 됐다. 먼저 여유가 생긴 만큼 지금 상황이 아주 나쁜 다른 나라를 도울 수도 있어야 한다.”
- 한국의 방역 정책에 대한 평가가 계속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처음엔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이게 끝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돌고 종식될 때까지는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모른다. 지금은 감염자가 많이 생긴 나라가 힘들 것 같지만 사실은 무사히 고비를 넘기면 집단면역 숫자가 많아져 상대적으로 문제가 작아질 수도 있다. 결국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회 안정과 인권 등의 가치를 얼마나 잘 유지했는가, 얼마나 살 만한 나라임을 보여줬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나.”
공동체 안정과 사회적 연대 강조하는 스웨덴
스웨덴 시민들이 4월 11일 스톡홀름의 야외 카페에서 음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상당히 허용하고 있다. [AP=뉴시스]
“코로나19는 감염력이 매우 높으니 어차피 완전히 퇴치할 수 없고, 일시적으로 퇴치해 봐야 다시 재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백신 개발이나 치료제도 단기간에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스웨덴은 사회경제 시스템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발생 양상 그래프를 납작하게 만드는 정도로 통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 스웨덴이 집단 면역을 추구하면서 확진자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있다거나, 집단 면역 실험이 과연 통할까 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집단 면역은 감염이나 백신 접종으로 한 집단 내에서 상당 부분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 면역력이 없는 사람도 전염병으로부터 간접적인 보호를 받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기사들은 마치 스웨덴 정부가 방역을 포기하고 국민 다수가 자연적으로 감염되게 만들어 집단 면역을 하는 방식으로 잘못 대처하고 있다는 투의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스웨덴은 코로나19를 결코 가볍게 보고 방치하는 게 아니며, 집단 면역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이 밝혔다. 스웨덴 정부는 시민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게 하면서도 학교, 스포츠시설, 식당 등에서 시민이 지켜야 할 생활 수칙을 치밀하게 제공하고 있다. 또 정부도 사회보장, 실업, 비상병원 체계 등을 잘 준비하고 있다.”
-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봉쇄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동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 때문에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대국민 연설문에서 ‘쇼핑하는 것이 이웃을 돕는 것이고,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테이크아웃 점심을 먹는 것이 그들을 후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스웨덴은 쇼핑과 외식은 가게 주인, 종업원, 식재료를 공급하는 다른 사람들의 수입과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고, 그것도 사회적 방역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바이러스 퇴치라는 전체의 목적을 위해 문을 닫는 가게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개인적 희생에는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고 있다.”
스웨덴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역점을 두고 있는 경제와 일자리 대책도 눈길을 끈다. △실업보험의 보장성 강화 △직업 교육기간 두 배 연장 △친환경 녹색 일자리 기금 마련 △ 항공사 직원의 의료직 전환 등이 대표적이다. 4월 14일 현재 스웨덴의 확진자 수는 1만948명, 사망자는 919명이다. 9일 726명이던 신규 확진자 수는 14일 465명으로 주는 등 감소 추세다.
감염 사실 알리기 어려운 억압적 분위기
- 스웨덴 정부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일일이 시민 생활을 간섭하고 통제하지 않나.“스웨덴 시민들은 ‘책임 있는 시민’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스스로 행할 과제들을 실천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자가 격리도 잘 지켜지고 있다. 스웨덴은 확진 검사와 추적보다는 중환자 치료 위주의 관리를 하고 있다. 지금은 위험한 도박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많지만, 스웨덴 모델이 성공한다면 인간이 인격체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엄청나게 강한 유행성 질병도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될 것이다.”
- 국내에선 감염 사실을 알리기 어렵게 만드는 억압적 분위기가 있다.
“사실 그 점이 제일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에 걸려서 아픈 것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그 병에 걸려 낙인찍히는 게 더 무서운 상황이다. 감염자는 누구나 거리낌없이 자신의 발병 사실을 밝히고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을 존중받으며 안락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격리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충분히 보상돼야 한다. 그래야 감염자들도 스스로 지역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발적 격리를 할 수 있다. 감염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감염병 확산을 쉽게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 새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시민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낸다. 거기에는 이름 대신 환자 번호가 부여된 사람의 나이, 성별, 대략적인 거주지, 동선 같은 것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런 식의 개인정보 공개가 감염병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번 사태를 겪은 뒤 반드시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정보를 알려줘서 사람들이 확산을 정말 막았는지, 확진자가 들른 곳에는 어떤 피해가 미쳤는지, 그런 정보 공개로 감염병 확산 예방 효과는 별로 없고 오히려 사회에 다른 종류의 피해와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았는지 등을 짚어봐야 한다. 감염된 이나 감염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사실을 감추려 애쓰고, 정부는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면 그야말로 행정력 낭비이며 인권침해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강제 안심밴드, 인권침해 우려
- 해열제 먹고 공항을 무사히 통과한 유학생을 정부가 고발하겠다고 한다.“그 유학생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점은 그에게 혹시 절실하고 긴급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면 정부가 그 문제를 개인의 처지를 고려해서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해 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감염병 유행을 이유로 시민이 방역 당국의 그 어떤 무리한 강압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그런 사건을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자가격리자 참정권 박탈, 전자 팔찌 부착 등 위헌 요소가 담긴 조치를 서슴지 않고 공언하는 정부의 무소불위 방역 행태가 만들어낸 시민의 두려움이 그런 잘못된 행동을 유도했다고 본다.”
정부는 자가격리자 가운데 지침을 어기고 격리지를 무단이탈한 이들이 나오면서 실시간 위치 추적을 위해 안심밴드(손목밴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탈자에 대해서만 도입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인권침해 우려가 제기된다. 장재연 교수는 “매우 작은 일부 이탈 행위자들을 핑계로 다수를 제재하겠다는 이런 종류의 발상은 과거 사상적 탄압, 예비 검속, 인권 탄압 등과 같은 인식이고 태도라고 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도 4월 9일 성명을 내고 우려를 표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손목밴드 도입은 “개인의 기본권 제한과 공익과의 균형성, 피해 최소성에 대한 엄격한 검토와 법률 근거하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이 제도 도입으로 인해 검사를 회피하려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으로 인한 각계의 피해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기업 지원, 실업대책, 추경, 재난기본소득 등 사회·경제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감염자나 격리자의 심리적 피해에 대한 대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감염자나 격리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오래 남을 듯하다. 사람들이 서로를 감염시킬 수 있는 가상의 가해자로 여기면서 사회적 거리가 굳어질 가능성, 친밀하게 접촉하면서 함께하는 사회 활동의 쇠퇴로 인한 사회성 훼손, 함께 소통하고 분업하고 협력하는 것에 대한 국제적 신뢰의 파괴 등도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심리치료, 인권 존중, 사회성 회복, 공동체 신뢰 재건, 국가 간의 소통 증진 등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 역사 이래 고립과 혐오는 가난과 전쟁과 갈등을, 소통과 존중은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다는 교훈을 다시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감염병 살펴보니
4월 15일 기준으로 국내 확진환자는 1만613명, 격리 해제된 이가 7757명, 사망자가 229명이다. 4월 초부터 신규 확진자가 몇 십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고, 4월 10일 대구에서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4월 19일로 끝내고, 일상과 방역을 병행하는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생활방역인지 뭔지 전환할 때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기업이나 기관, 시민이 다시 정상 생활이 가능하도록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 할 일은 하지 않고 여전히 시민들 실천 사항을 논의하겠다고 하니 한심하다. 시민이 여러 사회적 환경에서 지킬 수칙들은 다른 나라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다 만들어져 제공되고 있다. 그걸 이제 논의하겠다니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가.”
- 이제 안정화 단계라고 할 수 있나.
“시민들이 코로나19가 어떤 경로로 확산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규 확진자가 한꺼번에 대규모로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방식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부분을 정상 가동해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개인의 위생 실천은 지속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한 명도 없어야 하겠지만, 다른 감염병 사망자와 비교해도 그리 높은 게 아니다. 2018년 법정감염병으로 인한 국내 사망자는 총 3071명이었다. 그중 인플루엔자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720명이었으니 아직은 코로나19가 독감 사망자보다 적은 상황이다. 해마다 3만 명의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2000여 명이 사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 전체가 코로나19 대응에만 골몰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커질지 모른다는, 지금은 없는 미래의 위험에 대한 공포와 대응은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줄 정도로 과하면 안 된다.”
“재확진자 는다고 방역 기조 바꾸면 안 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현미경 사진. [NIAID-RML 제공]
“코로나19에 걸린다고 다 죽는 게 아니라는 점은 현황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대구에서 확산되던 초기 사망자가 늘어난 이유는 중환자실 수요가 갑자기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이었다. 기저질환이 심한 이들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잘 회복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신규 확진자 수가 아니라 의료기관이나 사회 시스템을 얼마나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능력이 있는 국가는 확진자가 매일 1000명이 나와도 버틸 수 있고, 어떤 국가는 100명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응 능력은 상당한데, 심리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국가보다 더 불안해하고 정상 사회로 돌아갈 용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코로나19 재확진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어떤 신호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검사 방법의 정확성에도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재확진되면 원래 방식대로 다시 자가격리하면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방역은 인구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극히 일부 사례에 집착해서 방역의 기준이나 기조를 흔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숫자가 만드는 공포심
- 나라마다 양성률(검사자 대비 확진자 비율), 치명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 등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무엇보다 어떤 과정을 통해 확진자가 집계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행정력이 총동원돼 증상 유무나 개인 의지에 상관없이 감염자 접촉자나 특정 국가 방문 이력 등을 따져서 검사해 왔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증상이 분명한 사람들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 통계에 잡혔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통계만으로 각국의 대응 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 해석될 가능성이 많다. 다만 그런 통계 수치들을 그 나라 안에서 상황의 악화나 호전, 지역적 차이, 방역 대책 효과 등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한국의 치명률이 낮은 이유는 우수한 의료체계 등도 작용하겠지만, 그만큼 검사 대상이 많아 다른 나라의 경우는 포착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유증상자들까지 확진자 숫자에 포함돼 분모가 커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 검사를 많이 한 것은 긍정적인 부분 아닌가.
“초기에 많이 검사한 것이 지금의 성과를 거두는 기반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초기에 광범위하게 확진자 주변을 샅샅이 조사해서 전혀 증상이 없는 감염자까지 모두 찾아내 숫자를 엄청 키워 공포가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또한 검사의 양성률이 매우 낮은데 광범위한 조사를 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반면에 그만큼 행정력과 비용을 낭비해 비효율적인 조사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방역 당국으로서도 검사 횟수가 많아 음성률이 높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검사를 받아서 지금 코로나19 음성이 나왔다고 해서 영원히 음성일 수는 없다. 면역이 생겨 음성이 나온 게 아니라면 언제든 감염돼 양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7일 현재 우리나라 검사 건수 중 양성 비율은 2.2%다. 러시아(0.8%), 호주(1.9%) 등과 함께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43.7%), 스페인(38.5%), 영국(20.4%), 미국(19.2%), 이탈리아(18.4%), 독일(11.3%) 등은 매우 높다. 한국은 매우 공격적으로 검사했고, 서구 국가들은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검사했다는 것을 이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한국, 100만 명당 4명 코로나19로 사망
- 코로나19의 확진율이나 치명률을 국가별로 비교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어떤 통계가 비교하기에 좋은가.“사망자 통계가 국가 간 피해 정도의 규모를 비교할 때 가장 유용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스페인이 가장 높은데, 인구 100만 명당 350명이다. 그다음이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순이다. 미국은 사망자 숫자로만 보면 2만 명을 넘어 세계 최고인데, 100만 명당 기준으로 보면 57명으로 세계 11위 수준이다. 한국은 100만 명당 기준으로 4명(총 211명 시점)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방역 당국의 경각심은 지나칠 정도로 높고 국민의 협조도 너무나 잘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피해는 정확하게 집계되고 있나.
“사망 피해가 과소 혹은 과대 평가됐다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 모든 사망자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망자가 누락될 수도 있고, 대부분의 사망자가 기저질환자들이기 때문에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교통사고나 테러 등으로 인한 사망은 원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질병은 사망에 이르는 원인이 복합적이고,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는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사태에서는 확진 사망자의 숫자만으로는 인명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어렵고, 논란이 될 수 있다.”
- 피해 규모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하는 다른 방법이 있나.
“전체 사망자 변화를 파악해서 피해 규모를 추정하는 방법이 활용된다. 즉 초과사망자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평상시의 사망자 숫자보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많아진 사망자를 초과사망자라고 한다. 유럽에 유로모모(EuroMOMO)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를 통해 서유럽과 북유럽 24개국 사망자를 매주 단위로 집계해서 초과사망자를 감시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사건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의사들의 진단 오류나 어려움과 상관없이 전체 사망자 숫자에 큰 변화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고 여러 번 정책 제언도 했는데, 실현되지 못해 아쉽다.”
의외로 낮은 초과사망자수
유럽 24개국의 사망자를 매주 집계해서 초과사망자를 감시하는 유로모모 프로그램 홈페이지. 전체 사망자의 변화를 파악해서 코로나19와 같은 피해 규모를 추정하기 위한 것이다.
“4월 9일 발표된 2020년 14주차(3월 30일~4월 5일) 보고서를 보니 한 주 전보다 65세 이상에서 초과사망자가 훨씬 많아졌다. 15~64세에서도 일시적으로 급증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국가별로 보면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 잉글랜드에서 초과사망자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그런데 초과사망자가 지난 수년간 매년 발생한 혹한이나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해서 의료기관에 심각한 부담을 줘 사태가 악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앞으로도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아직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더라도, 초과사망자가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다.”
-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혼란과 공포를 가져왔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해 영국에서만 10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임페리얼 칼리지의 모델링 결과도 나왔고, 그 보고서로 인해 전 유럽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봉쇄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봉쇄 덕분에 더 큰 피해를 막은 것이라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월 15일 현재 영국이 집계한 코로나19 사망자는 1만2107명이다. 그런데 2017~2018년 겨울철에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초과사망자는 5만100명이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강력한 봉쇄 정책을 쓰지 않은 스웨덴도 실제 사망자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 이 또한 매우 의외의 결과다.”
-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전 세계적으로 과장됐다고 볼 수 있나.
“유럽과 미국이 초기에는 입원환자 중심으로 대응하려고 사태를 방치하다가 뒤늦게 방역 방식을 바꾸니까 이미 발생한 엄청난 숫자의 감염자를 확인하게 됐고, 이를 전면적 봉쇄라는 충격적 요법으로 막으려고 하면서 혼란이 더 가중된 측면이 있다.
아직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미생물에 대해 전 세계 지성인과 전문가, 정부와 언론이 너무 성급하게 불안과 공포, 그리고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만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임페리얼 칼리지의 모델링 추정과 같은 엄청난 피해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 모델링의 신뢰성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공포는 잠시라도 내려놓고, 코로나19의 정체, 그리고 그로 인한 건강 피해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살펴볼 의무와 책임이 전 세계 역학 전문가들에게 있다.”
기온 오르면 코로나19 소멸될까
– 학생들의 등교 개학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가르치는 것도 교육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감염률이나 사망률이 100분의 1에 불과하고 특히 청정지역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지자체도 여럿 있어 충분히 대비책을 세워 등교 개학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선거와 정치,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들의 여론 등 여러 요인이 있어서 실행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온라인 교육은 한계가 있다. 현대사회에 감염병은 일상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통해서 어른이 감염된다고 걱정하는데,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교육받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인가. 아이들에게 부모가 묶여 있으니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고, 여러 사회문제가 생긴다.”
- 기온이 오르면 코로나19가 소멸될 수 있나.
“사스, 메르스 등 코로나바이러스류나 호흡기 질환은 일반적으로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많은 질병이 계절에 따라 영향을 받는 계절성(seasonality)이 있으니 기온이 오르면 소멸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만 코로나19는 아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초기에 북반부에서 많이 발생했고, 따뜻한 나라에서는 발생이 적었기 때문에 따뜻해지면 소멸할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런데 북반부는 부유한 국가들이고 그만큼 사람의 이동이 많았고, 남반부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북반부의 겨울에 상대적으로 따뜻한 호주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확진자가 많았다. 계절이 바뀌어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예단할 수는 없다.”
-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동제한령이 내린 뒤 발코니에 나와 이웃들을 격려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전한 뉴스가 인상적이었다.
“유럽인들이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박수를 치고, 서로를 위해 노래하는 것을 보면 현실은 엄중하지만 그들에게 절망적인 상황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격려 분위기를 보고 매우 놀랐다.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 기후위기와 코로나19의 연관성은 어떻게 보나.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자연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이 야기했고, 그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됐으며,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어나 감염병이 유행하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기후변화가 지구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다만 코로나19가 기후변화로 발생했다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고 막연한 주관적인 추정 단계일 뿐이다. 지금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급속한 세계화의 결과라는 점이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도 그런 사례다. 하지만 그런 감염병을 겪은 뒤 그나마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공동의 대응책을 만들고 그에 따라 대응하고 있는 것도 세계화 덕분이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의 선택
- 교류 속도를 늦춰야 하나.“세계화를 통해 이제까지 누리던 무역, 분업, 세계 협업을 도외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잦은 교류로 인해 감염병이 빨리 퍼진 것도 있지만, 그만큼 정보와 소통이 빨라짐으로써 대응도 빨라져 선진국과 후진국의 교육이나 경제 수준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저개발 국가가 빈곤과 기아, 질병 등의 질곡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속도와 교류에 중독됐던 일상은 코로나19 앞에 멈춰 서 있다. 앞으로 우리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잦은 만남, 자유, 여행, 활기로 가득했던 이전의 일상으로 그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인류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권한, 국수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에서 선택과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