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명품 브랜드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로 일명 ‘에·루·샤’라고 칭한다. 루이비통 그룹(LVMH) 산하 크리스챤 디올 역시 브랜드 인지도는 에·루·샤 못지않다. 샤넬이 여성을 위한 실용적 디자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디올은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을 추구해 디올 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디올]
1957년 창립자인 디오르가 사망하자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스물한 살의 이브 생로랑이 디올 하우스를 이어받아 또 한 번 도약했다. 그가 1960년까지 디올 하우스를 이끈 뒤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보한, 지안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등이 이어갔다. 2016년에는 디올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임명돼 현재까지 디올 하우스를 이끌고 있다.
마르셀 부삭(왼쪽)과 크리스티앙 디오르. [Gettyimage]
창립자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 동안 세계 패션을 지배한 프랑스 패션디자이너다. 디오르는 1905년 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2남 3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디오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외교관이 되기 위해 정치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건축과 예술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여성성 극대화한 ‘뉴 룩’과 라인의 시대
1946년 디올 하우스가 자리 잡은 프랑스 파리 몽테뉴가 30번지는 지금까지 디올을 상징하는 주소로 이어져 온다. [디올]
이후 그는 생업에 뛰어들어 프랑스 유명 일간지 ‘르 피가로’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8년 디오르는 프리랜서로 모자를 만들며 일러스트를 그리던 일을 정리하고 파리의 주요 쿠튀리에인 로베르 피게의 회사에 들어가 보조 디자이너로 일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디오르는 군대에 입대했다. 1941년 군 복무 뒤 파리로 다시 돌아온 그는 프랑스 디자이너 뤼시앵 를롱의 부티크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피에르 발맹(Pierre Balmain)과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건 1946년이다. 디오르는 지인의 소개로 프랑스에서 최대 직물 회사 부사크의 대표인 마르셀 부삭(Marcel Boussac)을 만난다. 디올의 재능을 알아본 마르셀 부삭은 디오르에게 자신의 직물 회사로 들어올 것을 권유했지만, 디오르는 이를 거절했다. 대신 마르셀 부삭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론칭했다. 이것이 크리스챤 디올의 시작이었다.
신생 브랜드에 불과하던 디올은 1947년 혁신적인 ‘뉴 룩(New Look)’을 선보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뉴 룩이라는 명칭은 1947년 첫 번째 크리스챤 디올 컬렉션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스타일을 본 미국의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멀 스노가 소감으로 “참으로 새로운 룩이다(It’s such a new look)”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잘록한 허리 라인과 볼륨감 있는 스커트가 특징인 뉴 룩. [디올]
뉴 룩 발표 이후 디올은 다양한 실루엣의 드레스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1950년대 H라인, A라인, Y라인 등 새로운 실루엣을 선보였다. 1954년 뉴 룩에서 하의의 부피를 줄인 형태인 H라인을 발표했고, 다음 해에 H라인에서 아래를 넓힌 A라인을 발표했다. 1955년 F/W 컬렉션에서 디올은 A라인을 뒤집은 모양인 Y라인을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A라인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라인이다. 어깨는 좁고 가슴과 허리는 다트를 이용해 딱 맞게 했으며 허리부터는 아래로 주름이 넓게 퍼지는 스타일이다. 디오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브 생로랑이 A라인에서 더 나아간 트라페즈 라인을 선보였고, 이로 인해 디올 하우스는 파리 쿠튀르의 주역으로 승승장구했다.
다이애나妃가 사랑한 ‘레이디 디올’
레이디 디올을 든 다이애나비. [디올]
얼마 후 다이애나는 아르헨티나를 공식 방문하면서 이 백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 장면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디올의 가방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1996년 디올은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Lady Diana Spencer)’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다이애나의 애칭인 ‘레이디 디(Lady Di)’에서 유래한 ‘레이디 디올(Lady Dior)’로 명칭을 변경해 가방을 정식 발매했다.
이후 다이애나는 거의 모든 색상을 주문할 정도로 레이디 디올을 애용했고, 중요한 자리에서 자주 레이디 디올을 선보였다. 1996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방문 당시 다이애나는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네이비 슬립 드레스에 블루 새틴 레이디 디올 백을 들고 참석해 또다시 시선을 사로잡았다. 블루 새틴 레이디 디올 백은 그의 눈동자 색을 닮은 매혹적인 블루 컬러로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모델이었다. 2022년 11월 디올 하우스는 블루 새틴 레이디 디올 백을 미니 사이즈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창립자인 디오르는 주머니에 네 잎 클로버와 작은 나뭇조각을 부적처럼 항상 지니고 다녔을 만큼 점성술과 운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디오르의 관심은 레이디 디올에 D.I.O.R 알파벳이 달린 백 참의 이름을 ‘럭키 참’이라고 하는 데 반영됐다. 또 1947년 뉴 룩을 발표한 크리스챤 디올의 역사적 첫 컬렉션에서 VIP들을 위해 준비한 의자는 나폴레옹 3세의 의자였다. 레이디 디올 가죽에 적용된 퀼팅은 이 나폴레옹 3세의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진 패턴 ‘카나지(cannage)’다. 카나지는 프랑스 역사에서 빛나는 시절을 상징하며 디올만의 아이코닉한 패턴이 됐다.
디올은 전 세계의 예술가들과 함께 시그너처 백인 레이디 디올 백을 새롭게 해석하는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등 예술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해석한 디자인을 제안하면, 이를 디올의 탁월한 장인 정신과 테크닉으로 융합해 유니크한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디올의 상징이 된 오블리크 패턴
디올 2022 가을 여성 레디-투-웨어 패션쇼. [디올]
오블리크 패턴은 디올을 대표하는 패턴이다. 명칭은 1951년 크리스챤 디올 F/W 컬렉션에서 이름을 따왔다. 오블리크 패턴은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크 보한이 제작했고, 1969년 S/S 컬렉션에 처음 선보였다. 1971년 디올 컬렉션 가방에 대대적으로 사용된 오블리크 패턴은 1990년대, 2000년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존 갈리아노에 의해 스트리트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이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올의 헤리티지에서 되찾은 오블리크 패턴을 아카이브 백 디자인에 사용하면서 디올 하우스를 다시 빛나게 하고 있다. 오블리크 패턴은 존 갈리아노가 말 안장에서 영감 받아 디자인한 새들백,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북 토트백, 스니커즈 등에 사용되면서 뉴트로 트렌드에 탑승했다.
“디올의 향수는 디올 드레스만큼 탁월해야 한다”
미스 디올 과거(왼쪽)와 미스 디올 현재. [Gettyimage, 디올]
디오르는 열정적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카트린에게 영감을 받아 디올의 첫 번째 향수인 ‘미스 디올’을 세상에 알렸다. 디오르는 자신이 만든 드레스만큼이나 향수도 탁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초의 미스 디올 향은 당시 유행하던 시프레 노트, 그라스 로즈, 재스민, 오크모스를 조합해 젊고 세련된 숙녀를 연상시켰다. 사랑의 향이 나는 향수를 만들고 싶었던 디올의 바람에 따라 로맨틱한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향이 미스 디올 향수의 포인트다.
향수를 담은 향수병 또한 오트쿠튀르 드레스처럼 섬세하고 정교해야 한다는 디올의 철칙으로 바카라 하우스 장인은 8자 모양을 본뜬 곡선 형태의 향수병을 제작했다. 그리고 1950년대 지금 미스 디올 향수의 상징이 된 리본 장식이 달린 직사각형 크리스털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1951년 디오르는 그라스 중심에 있는 성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매입해 향수의 원료가 될 향기로운 꽃과 다양한 나무를 심으며 휴식을 취했다. 디오르의 꽃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은 ‘플라워 우먼’에 대한 영감과 아이디어에서 드러났다. 디오르는 코롤(Corolle·꽃봉오리)이나 튤립 라인의 실루엣, 안감이나 옷 밑단에 꽃 모양의 수를 놓거나 자신의 양복에 달기도 했다. 꽃과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디오르는 1957년 이탈리아 몬테카티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수병 디자인은 향만큼이나 브랜드에 미치는 상징성이 크다. 특히 1999년 출시한 디올 쟈도르 향수병 디자인은 여성의 페미닌한 실루엣을 강조한 상징적 실루엣으로 패션계에 혁명을 가져온 뉴 룩에서 영감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가장 널리 쓰인 항아리의 한 형식인 암포라 디자인은 우아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골드 네클리스 디테일은 페미닌한 매력으로 향수에 강렬한 여성성을 불어넣었다.
최근 몇 년간 패션업계의 성별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크리스챤 디올은 패션과 향수, 코스메틱에까지 ‘영원한 여성성’을 추구하며 여성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