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이라는 가슴 벅찬 꿈
수모 되돌려주는 정의로운 적폐청산?
“보수정권과 맞장 뜨는 공영방송”
反尹 정서 겨누며 당파성으로 장사
MBC 살린 尹정권의 어리석은 대처
‘조작’ 가미된 ‘김건희 때리기’ 방송
박성제 前 사장의 ‘잔인한 천진난만’
‘공영방송의 중립지대화’를 위하여
2022년 10월 13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중 발언과 관련한 MBC 보도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사진 뒷모습은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공동취재단]
정권이 교체돼도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의 임기 보장 때문에 공영방송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긴 하지만 정권교체 이전에 보이던 당파적 논조와 강도는 크게 누그러뜨리면서 중립을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낸 게 그간의 ‘관례’요 ‘전통’이었다. 아마도 정권의 보복이 무서워서 그랬을 게다. 그런데 이마저 다 무너지고 말았다. 곧 몰락할지도 모를 정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공영방송, 특히 MBC는 이전의 전투적 편파성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정권과 맞장 뜨는 공영방송”이라는 새로운 역사 창조의 길로 나선 것처럼 보였다.
공개 토론회나 청문회 열어보자
방송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MBC 사원들은 이명박·박근혜 체제에서 모진 고난과 수모를 당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공영방송의 ‘적폐청산’은 필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어떤 방식의 적폐청산이냐는 것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체제에 협력했거나 그 시절에 무난하게 지낸 동료 방송인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겪은 고난과 수모를 되돌려주는 게 정의로운 적폐청산이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게 생각한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이제 다시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비(非)민노총 계열의 MBC노동조합(이하 ‘제3노조’)은 성명서(6월 24일)를 통해 “박성제 사장 등은 MBC 내 비민노총 기자 60여 명 거의 전원을 정상적인 취재 업무에서 배제해왔다”며 박성제 등 자사 경영진과 보도부문 주요 간부들을 노동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제3노조는 “민노총 언론노조 MBC 본부는 2017년 파업 때 민노총 소속 기자와 PD 10여 명이 신사업개발센터 등에 발령된 것이 ‘유배’라면서 눈물의 집회를 열었다”며 “바로 그 사람들이 MBC 경영권을 장악하자마자 뉴스데스크 앵커를 조명창고로 발령하고 파업 불참 기자 전원을 방송에서 쫓아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최승호·박성제 사장은 겉으로는 ‘인권’을 내세웠다. 보도국 경찰팀을 인권사회팀, 법조팀을 인권사법팀으로 바꿨다. 그러나 그 뒤에서 비민노총 기자들에 대한 조롱과 멸시, 차별과 박해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며 “민노총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인권’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반문명적인 인권탄압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검증이 필요하다. 공개 토론회나 청문회를 열어보자. MBC에서 ‘갑’이 아닌 ‘을’에 위치에 있던 사람들끼리 서로 번갈아가며 괴롭히는 어리석은 일이 어느 정도로 벌어졌는지 알아보자. 괴물은 정권을 쥔 쪽만이 아니라 ‘을’의 위치에 있던 평범한 방송인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해보자. 그런 집단적 성찰이 있을 때에 비로소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다.
“보수정권과 맞장 뜨는 공영방송”이 되는 게 정의로운 적폐청산일까? 그럴 리 없다.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었건만, 방송민주화를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오해하거나 착각한 이들이 많았다. 자신의 이익을 키우고 향유하는 일에 이념의 포장을 씌우면 좀 더 떳떳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MBC가 “보수정권과 맞장 뜨는 공영방송”이 되기 위해 벌인 일들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尹 “이 XX들이…쪽팔려서” 발언 사건
당시 윤 정권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에 대한 MBC의 공세는 집요했다. 7월 6일 MBC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BC 라디오 시사’는 ‘김종배의 시선집중’ 영상의 미리보기 사진에 “김건희 또 사고 쳤다! 대통령 수준 맞아?” “비선논란 김건희 국고손실죄로 처벌?” 등의 문구를 삽입했다.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 신모 씨가 해외순방에 동행한 점을 문제 삼은 것인데, “김건희 또 사고 쳤다!”는 좀 심하지 않은가?그런 식의 보도는 반윤(反尹) 정서를 가진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당파성으로 장사까지 하는 일석이조의 ‘당파성 상업주의’라고나 할까. MBC는 미국의 폭스뉴스처럼 “편향성은 이익이 되는 장사”라는 걸 입증해 보인 것이다. 8월 MBC 뉴스의 유튜브 월간 조회수는 5억8000만 뷰로 역대 언론사 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지상파 3사 중 가장 낮은 조회수를 기록하던 MBC는 2020년에 1위에 올라선 이후, 그 격차를 계속 늘려온 것이다.
김건희나 윤석열이 “언제 또 사고 치나”라고 기다리면서 이른바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 즉 ‘너 딱 걸렸어 저널리즘’을 실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 건 아니었을까? 이 ‘가차 저널리즘’이 실수가 잦은 데다 둔감하기까지 한 독특한 유형의 대통령 부부를 만나면서 MBC 저널리즘의 기본 모드로 승격된 것처럼 보였다. 이를 잘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 9월 하순의 뉴욕에서 벌어졌다.
9월 22일 오전 10시쯤 MBC가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한 ‘오늘 이 뉴스’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사건이 터졌다. 윤석열이 9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48초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환담을 마친 뒤 대표단과 함께 빠져나오면서 잠깐 멈춰 뒤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MBC는 문제의 유튜브 영상을 올린 후 미국 정부에 e메일을 보내면서 AFP통신 기사를 첨부하고는 그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물었다. AFP통신은 전날 MBC 유튜브 자막에 따라 영문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에서 ‘XX들’은 ‘fuXXers’로, ‘바이든이 쪽팔려서’는 ‘Biden lose damn face’로 각각 번역됐다.
여권은 9월 22일 아침까지 각종 모바일 메신저에서 지라시(정보지) 형태로 돌던 윤석열의 발언과 영상이 MBC가 ‘바이든’이라고 단정적으로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먼저 띄우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봤다. MBC가 자막을 단 것을 기점으로 대부분 방송과 인터넷 언론이 비슷한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대표 직무대행은 “MBC는 뉴스 자막에 ‘(미국)’이라는 있지도 않은 말을 끼워 넣어 조작을 완성했고, 조작된 기사를 백악관에 보내 논평을 구하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 와중에도 MBC는 미 국무부의 ‘Our relationship with R.O.K. is strong(대한민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이라는 회신 내용은 애써 무시했다”며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면 당연히 강조해야 할 코멘트를 의도적으로 삭제하면서도, 외교참사 프레임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MBC가 외교참사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윤 정권은 MBC를 ‘국기문란 보도’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실은 MBC를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친 격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최초의 장본인인 윤석열이 일단 사과부터 한 후에 MBC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했더라면 MBC의 행태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질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윤 정권은 내내 윤석열이 억울한 피해자인 양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하면서 MBC를 향해서만 손가락질을 해댔으니, MBC의 입장에선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윤 정권의 어리석은 대처 덕분에 마땅히 맞아야 할 매마저 피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때리기’ 빈도가 너무 잦으면…
2022년 10월 11일 방송된 MBC PD수첩 ‘논문저자 김건희’ 편에서 재연 화면이라는 자막 표시 없이 김 여사의 대역을 쓴 장면. [PD수첩 화면 캡처]
MBC는 10월 11일 방송된 ‘PD수첩’을 통해 ‘논문저자 김건희’라는 회차에서 김건희의 ‘논문표절’ 의혹을 다뤘다. 이 회차의 프롤로그엔 김건희와 비슷한 외모, 옷차림, 헤어스타일 등을 한 여성이 등장했다. 이 여성의 배경엔 ‘의혹’ ‘표절’ ‘허위’ 등의 글자가 나타났다. 해당 방송이 송출되자 여권에서 반발이 제기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대역을 사용할 경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9조(재연·연출)에 따라 ‘재연’이라는 표기 기재 후 해당 내용을 고지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방송 사고가 아니라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에 의한 ‘의도된 조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MBC는 ‘대통령에 대한 자막조작’에 이어 ‘영부인에 대한 화면조작’까지 거침이 없이 방송조작 폭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이어야 할 MBC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송 조작의 달인’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모습에 개탄한다”며 “지난 11일은 ‘조작’ ‘왜곡’ ‘편파’ 방송으로 MBC가 스스로 ‘공영방송임을 포기한 날’로 우리 언론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기홍 동아일보 대기자는 “PD수첩이 김건희 편에서 대역 고지를 안 한 것을 여당이 문제 삼는데 더 심각한 건 그게 아니다. ‘어렵게 만났다’는 소개와 함께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 변조된 제보자가 등장했는데 실제론 대역이었다고 한다. 모자이크와 변조를 하면 누구나 실제 인물이라 여긴다. 이를 응용한 게 모큐드라마다. 불륜 현장 급습 같은 장면 연출에 많이 사용된다. 시청자를 속일 의도가 아니라면 시사 프로가 대역을 쓰면서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 변조할 이유가 별로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보자 목소리 녹음을 방영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그래픽 처리를 해서 자막으로 발언을 내보내고 진행자가 읽어주면 된다. 2008년 광우병 편 제작자들이 그랬듯이 ‘적개심이 하늘을 찌른’ 상태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에 닿기 위해 골몰하는 제작진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만약 전임 정권 때 임명된 사장과 간부들이 아직 보직을 맡고 있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 문 대통령이나 김정숙 여사를 다룬 방송에 이런 식의 마사지가 가해졌다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MBC본부’는 사장과 제작 간부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을 것이다.”
10월 24일 MBC 제3노조는 “지난 토요일 시청 앞과 광화문에서 좌·우파 대규모 집회가 동시에 벌어졌는데, MBC는 어떻게 그렇게 균형 보도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노골적으로 편파 보도를 할 수 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비난했다. 제3노조는 “MBC가 편집한 화면은 온통 ‘김건희 구속’ ‘윤석열 퇴진’ 손팻말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단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 화면은 좌파 진영의 경우 1분 16초간 방영됐고, 우파 진영 방영은 고작 8초에 불과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2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직접 제기한 ‘대통령-법무장관 심야 술자리 의혹’을 놓고 여야가 연일 공방을 벌인 가운데, 유독 MBC만 이 문제를 뉴스로 거의 다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3노조는 10월 26일 성명을 내고 “일간지는 물론이고 KBS와 SBS도 관련 내용과 파장에 대해 보도하고 있는데 MBC 뉴스데스크는 이틀 연속 외면했다”며 “민주당 의원이 시쳇말로 ‘똥볼’ 찬 건 다루고 싶지 않아서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오전 11시쯤 MBC PD수첩 제작진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공지문을 통해 “이태원 할로윈데이 사고 관련 현장 목격자, 실종자 가족, 당국의 사전 대응 관련 문제점에 대한 제보를 기다린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 공지문에는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또 시작됐다’ ‘사전대응...이미 결론은 내놓으셨군요ㅋㅋ’ ‘건수 잡았다고 아주 신났네’ ‘답정너’ ‘애도라고 하고 제보를 받든지’ ‘악마가 한 수 배우고 가겠다’ 등이었다. 그러자 이날 오후 1시 50분쯤 PD수첩 공지문이 수정됐다. 바뀐 게시물에는 “이태원 핼로윈데이 사고 관련 현장 목격자, 실종자 가족 및 관계자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라고만 적혔다. ‘당국 대응 문제점’ 대목이 사라졌다.
이에 MBC 제3노조는 성명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전날 뉴스데스크는 앵커부터 핼러윈 ‘노 마스크 축제’를 홍보하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하면서 “뉴스데스크가 사고 직후 30일 새벽부터 24시간 특보를 지속하면서 참사 당시의 현장음과 화면을 수백 번 반복적으로 방영해 ‘국민적 트라우마’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보도 방식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허’ 사건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진행하면서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국가안보의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MBC가)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조치에 대한 여론은 전반적으로 보아 싸늘했다. MBC에 대해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대통령실의 조치를 비판했다. 진중권은 “MBC를 졸지에 언론자유 투사로 만들어주고 앉았다”라고 비판했는데,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는 정답이었다.
11월 18일 윤석열은 출근길 질의응답에서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국가안보의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MBC가)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에 이기주 MBC 기자가 “MBC가 뭘 악의적으로 했다는 거죠? 뭐가 악의적이에요?”라고 큰소리로 물었으나 윤석열은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후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이 “가는 분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면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자, MBC 기자는 “질문도 못 하나”라며 맞섰다. “말꼬리 잡지 말라” “말조심하라” “군사정권이냐?” “보도를 잘하라”는 등 한동안 고성이 오갔는데, 이게 큰 논란거리이자 이슈가 됐다. 그러자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무엇이 악의적이냐”는 MBC 기자 질문에 대해 10가지 이유를 적시하고는 “이게 악의적”이라고 되받았다. 그 10가지 가운데 일부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음성 전문가도 확인하기 힘든 말을 자막으로 만들어 무한 반복했다.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 국회 앞에 미국이란 말을 괄호 안에 넣어 미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쓴 것처럼 우리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거짓 방송을 했다. MBC 미국 특파원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서 대통령이 마치 F로 시작하는 욕설을 한 것처럼 기정사실화해 한미동맹을 노골적 이간질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회신했지만 MBC는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회신을 보도하지 않을 것이면서 왜 질문을 한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문제 삼자 MBC는 ‘어떠한 해석이나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MBC의 각종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대통령 부부와 정부 비판에 혈안이 돼 있다. 그 과정에서 대역을 쓰고도 대역 표시조차 하지 않았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공영방송으로서 성찰하기보다 ‘뭐가 악의적이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2023년 2월 7일 MBC 최대 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정기 이사회 면접 평가를 통해 MBC 사장 공모에 지원한 13명 중 박성제, 안형준, 허태정 후보를 1차 합격자로 선정했다. 3인은 2월 18일 156명의 시민평가단이 참여한 정책토론회에서 정책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발언을 한 이는 허태정이었다.
“MBC가 ‘민주당 방송’인 걸 모르는 사람 없다”
허태정은 “지금 MBC가 민주당 방송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딱 보니 100만’, 박성제 후보가 보도국장 시절 서초동 조국 옹호 집회 참여 인원에 대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발언한 내용입니다. 박성제 후보가 보도국장 시절 그의 부인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이었습니다”라며 박성제가 주도한 친(親)민주당 성향의 방송을 비판했다. 그는 현 MBC 공정성 점수를 50점 이하로 평가했고, 박성제의 ‘딱 보니 100만’ 발언은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시민평가단 투표 결과 안형준과 허태정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2월 21일 방문진은 안형준을 차기 MBC 사장 내정자로 결의했다. 안형준은 최종면접에서 “공영방송 향한 외풍을 막아내겠다. MBC는 검언유착 의혹을 단독 보도한 장인수, 민간인 전용기 탑승을 단독 보도한 이기주 등 살아 있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면서 “검언유착 의혹 보도는 가짜뉴스가 아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박성제의 기본 노선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MBC 사장 연임이 좌절된 박성제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사장하면서 단 한 번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내용에 간섭을 한 적이 없다. 기자·PD들의 양심과 소신을 믿고 외압을 막아준 것뿐이다. 앞으로도 MBC 언론인들이 진실만을 추구하는 보도를 위해 노력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나겠다.”
무서울 정도로 순진한 말이다. 그의 논리 구조는 단순하다. 간섭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MBC는 진실만을 추구하는 보도를 해왔다는 것이며, MBC가 특정 정당에 우호적이라는 생각은 프레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전혀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잔인한 천진난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단 한 번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내용에 간섭을 한 적이 없다”는 박성제의 주장을 100% 믿는다. 아예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 성향이 다른 기자·PD들은 숙청됐는데, 간섭할 필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의리’는 좀 강한가. MBC 사장 후보이던 허태정이 정책발표에서 지적한 박성제의 다음과 같은 인사 스타일도 간섭의 필요성을 없애줬을 게다.
“현재 MBC의 본부장 10명 가운데 해고자 출신인 박 사장이 임명한 해고자 본부장이 3명, 친한 보도국 입사동기 3명을 포함해 동기 본부장이 4명, 사장이 노조위원장을 할 때 노조 간부였던 본부장 1명 등 모두 8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가 터지면 관계사 사장으로, 회전문 인사로 돌려 막고 계속 의리를 지킨다.”
대선 1년 전에만 가능한 타협
2022년 11월 18일 이기주 MBC 기자(왼쪽)와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끝난 후 설전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두 정당의 차이가 어떠하건, 20여 년 전부터 내가 간절히 꿈꾸었던 건 ‘공영방송의 중립지대화’였다. 그래서 무보수 명예직으로 방송사 사장만 뽑는 이른바 ‘방송의회’ 구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영방송 장악에 혈안이 된 두 거대 정당은 ‘공영방송의 중립지대화’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특히 민주당 진영에선 ‘기울어진 방송 운동장(종편)’ 때문에 공영방송 장악은 꼭 필요하다는 궤변이 의외로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권력과 정치가 손을 떼면 ‘시장 논리’에 따라 저절로 반반이 될 텐데, 왜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민주당 진영 내에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한 반(反)기업 정서 또는 반(反)자본주의 정서를 포기할 뜻이 없기 때문일까?
‘공영방송의 중립지대화’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내가 내린 현실적인 결론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여야 합의는 오직 대선 1년 전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정권이건 사실상 그간 여당 프리미엄으로 주어져 온 공영방송 장악을 스스로 포기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선 1년 전에 여야 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여당 입장에선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대비, 야당 입장에선 대선 기간 중 방송 보도에서 여당 프리미엄을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2017년 5·9 대선 전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루어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집권 후 이 약속을 깨고 5년간 내내 공영방송을 장악해 놓고선 대선에 패배하자 엉뚱한 방송법 개정안을 들고나왔다. 여론 압박 공세를 펴면 국민의힘이 그런 ‘내로남불 꼼수’에 넘어가 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일방적으로 내놓은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면 “대안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건 고약하기까지 하다. 야당 시절 문재인이 지지했던 이용마의 ‘국민 대표단제도’도 있고,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도 있잖은가. 하지만 현시점에선 대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말했잖은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여야 합의는 오직 대선 1년 전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 말이다.
앞으로 3년을 더 기다리자는 게 아니다. 여야 합의를 깬 것과 그럼에도 적반하장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민주당의 사죄가 필요하다. 언론노조와 방송인들은 방송법 개정안을 문재인 정권 마지막 1년 내에 성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거나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공손한 자세로 국민의힘에 타협을 요청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을 모든 정의(正義)는 전세 낸 듯이 당당하게 큰소리를 뻥뻥 쳐가면서 일을 추진해서야 되겠는가. 무엇보다도 MBC가 계속 “정권과 맞장 뜨는 공영방송”으로 머무르겠다는 허황된 야욕을 버리고 스스로 ‘공영방송의 중립지대화 모델’을 실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