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나를 위한 선물, 파리 낭만 여행

[에세이]

  • 노미경 여행작가

    입력2024-04-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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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의 관광 명소 센강. [Gettyimage]

    프랑스 파리의 관광 명소 센강. [Gettyimage]

    누구에게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내겐 여행이 그렇다. 내가 늘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여행지에서 만난 고대 유적과 유물을 통해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늠해 볼 수 있고, 수많은 예술가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을 직접 내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어서다. 신이 수만 년에 걸쳐 빚어낸 영롱하고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이 선사하는 특별한 묘미다. 또한 여행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보다 결핍 속에서 지구촌 구석구석에 밴 삶의 지혜를 배우려 할 때 더 큰 감동과 여운을 안긴다. 정해진 형식도, 규칙도 없다. 계획하지 않았어도, 준비가 완전하지 않아도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여행이다. 그래서일까.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간질간질 설렌다.

    현실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나만의 일탈을 꿈꾼다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내게는 일탈을 위한 낯선 여행지가 언제나 프랑스 파리다. 파리는 시간을 거슬러 중세에 머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진정으로 자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누구든 예술가로 만드는 풍경

    나는 대학생 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파리로 첫 유럽 여행을 갔다. 난생 처음 혼자 간 여행지 파리는, 첫 키스나 첫사랑처럼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던 때라 파리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센강으로 달려갔다. 그 시절 내가 너무나 깊이 빠져 있던 프랑스 가수 겸 영화배우 에디트 피아프 때문이었다. 내 상상 속 센강은 에디트 피아프의 ‘파리의 하늘 밑’ 가사처럼, 파란 하늘 아래서 우연히, 아주 멋진 운명의 연인을 만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턱없이 좁은 센강을 만난 첫 느낌은, 초라해진 옛 애인을 만난 것 같은 실망감 그 자체였다. 나는 배신감을 안고 센강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유람선 위에서 센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종전의 실망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새로운 감동이 가슴에 차올랐다. 강변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예쁜 카페와 멋진 가게가 그림엽서 같은 풍광을 자아내 정신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왜 파리를 찾는지, 어떤 이유로 파리를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파리에서는 누구라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이토록 낭만적인 도시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가 된 것은 루이 14세(Louis XIV·1638~1715) 덕분이다. 루이 14세는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건축,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여기에는 수많은 시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에서 짐작하듯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뤘다. 그로 인해 유럽의 모든 문화예술 중심지는 프랑스로 옮겨지고,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연 이탈리아는 오히려 근세의 기틀을 잡지 못한 채 프랑스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건축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표적 건축물로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을 빼놓을 수 없다. 루이 14세는 1661년부터 1710년까지 50년에 걸쳐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했다. 이 궁전은 프랑스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의 건축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많은 예술가를 지원하며 자신의 궁전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제작하게 했다. 문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의 문학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궁전에서 다양한 문학작품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또 과학자들을 적극 지원해 자신의 궁전에서 다양한 과학 실험까지 진행할 정도로 과학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같은 전통이 지금도 이어진다. 정부 주도 아래 공공기관과 지역 주민이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보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 결과 파리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애칭을 얻었다.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항상 깨끗한 경관과 잘 정비된 공공시설로 중세 분위기를 변함없이 느낄 수 있다.

    내가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부럽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선진국다운 시민의식이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더불어 최소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자 오랜 세월 삶에 스며든 문화였다.

    시간과 돈보다 떠나려는 의지가 중요

    여행은 시간과 돈과 건강이 있어야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떠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다. 시간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심신이 모두 건강해도, 떠나려는 의지 없이는 여행이 성사되지 않는다. 학창 시절부터 내 꿈은 세계 일주였다. 내가 세계 일주를 꿈꾸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사회 선생님의 한 마디 때문이다.

    “너희가 원하면 세계 어디든 여행할 수 있으니 세계 일주의 꿈을 꿔보라.”

    나는 그 꿈을 이뤘고, 이맘때 봄이 되면 나를 꿈꾸게 한 그 사회 선생님이 생각난다. 봄은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다. 어느 순간 나는 가을보다는 봄이 더 좋아졌다. 그것은 아마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150여 개국, 수천 곳의 도시를 여행했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허기를 느낀다. 어디선가 봄노래 가락만 들려와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유혹으로 잠을 설친다.

    허송하기엔 너무도 아까운 싱그러운 봄날, 굳이 해외가 아니어도 가까운 어디론가 떠나보자.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 다양한 문화를 즐기면서 나를 위한 선물 같은 시간을 만끽해 보자. 만약 나에게 상을 내리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파리로 날아가 샹제리제 거리 고급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커피나 와인 한 잔 시켜놓고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떤가. 혼자여도 좋고 둘이면 더 좋다.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샹젤리제 거리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치도록 풍성하고 화려한 밤 문화를 즐기기에도 딱 좋은 도시다. 언젠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봄날, 파리로 훌쩍 떠나보시길. 건강할 때 여행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선물일지니.

    노미경
    ●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 덕성여대 심리학과 졸업
    ● 저서: ‘부탄에서 내 영혼을 만나다’ ‘검은 대륙 황금의 땅 서아프리카’ ‘딸과 함께 떠나는 남프랑스 미소국 여행’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여행 떠나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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