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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간의 새해 아침

잃어버린 10년간의 새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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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간의 새해 아침
“한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옵니다.”해마다 이 무렵 우리가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 중의 하나이고, 시간으로 겪고 마음으로 겪는 이 쉽고도 자명한 일이 내 젊은 날 10년 동안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젊은 날, 1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던 것이 아니라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이 무렵의 서정을 10년이나 잃어버리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물한 살, 그때 처음 문학에 뜻을 두었지요. 그리고 그해부터 신춘문예에 도전했습니다. 첫해엔 멋모르고 하고, 두 번째 해부터는 ‘이게 이제 평생 내 길이다’ 하는 각오로 응모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매년 1월1일 새해 아침에 발표가 나고, 신문 두 면이나 세 면에 실려 세상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이제 막 탄생한 신인 작가의 소설이 새해 아침 신문의 두 면이나 세 면을 독차지하고 나가는 겁니다. 한 작가로서 이만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회도 없는 셈이지요.

이태 전 대통령선거 다음날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기사를 일부러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그날 신문에는 1면부터 거의 중간 면까지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 이어졌지요. 그래도 세 면 연속으로 다른 기사 하나 섞이지 않고 당선자에 대한 기사만 나오지는 않더군요.



그러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가의 경우 당선작과 작가 사진, 당선소감, 심사평, 이것만으로 신문 세 면을 채웁니다. 그것도 한 해가 시작하는 새해 첫 아침에 말이지요.

당선자에겐 이보다 더 기쁘고 신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시의 경우엔 수천 편 가운데 한 편이고, 소설의 경우 수백 편 가운데 한 편이 그해의 영광을 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일정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보통 각 신문사는 11월10일을 전후하여 그 신문 1면에 ‘OO일보 신춘문예 공모’라는 사고(社告)를 싣습니다. 마감은 대개 12월10일 전후입니다. 그러면 각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가 응모작을 정리해 12월15일쯤 예심을 실시하고, 예심을 통과한 작품을 가지고 12월20일(때로는 22일이나 23일까지)쯤 최종심사를 진행합니다. 늦어도 12월24일 전에는 당선자에게 통보하지요.

그러니까 24일까지 신문사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했다면, 그해 자신의 작품은 떨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10년간 내내 그랬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신춘문예 예선심사를 봐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11월10일쯤 그해 신춘문예 공고가 나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 서늘해져옵니다. 이제 신춘문예 응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성작가로 예심에 참가하는 입장인데도 그렇습니다. 자꾸 나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1월10일 신춘문예 공고가 나면, ‘그래, 올해는 꼭 당선되어야지’ 하고 이제까지 쓴 작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감일까지 한두 작품을 더 씁니다.

그러고는 200자 원고지를 한 박스 사놓고 12월10일까지 한 작품 한 작품 옮겨 씁니다. 지금이야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컴퓨터로 출력을 하지만 그때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원고지 위에 옮겨 썼습니다.

중간에 틀리게 쓴 글자가 있으면 혹시 그게 심사위원의 눈에 거슬릴까 싶어 그 페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옮겨 씁니다. 글씨를 잘 쓰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는 것이 최종적으로 옮겨 쓰면서 때로 작품의 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옮겨 쓸 때는 그런 부분까지 고쳐가며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옮겨 쓴 작품들을 누런 사각봉투 안에 신문사 별로 하나씩 넣고(물론 봉투 안에 든 작품들은 다 다릅니다) 마감일에 직접 신문사에 내러 갑니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 동안에 강릉우체국에 나가 우편으로 부쳤지만 졸업 이후에는 직접 신문사로 갖다 주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서울신문에 들르고, 동아일보에 들르고, 한참을 걸어 한국일보, 다시 되돌아와서 조선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를 돕니다. 그때마다 옆구리에 낀 봉투가 하나씩 줄어드는 그 순례 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봉투를 내고 나면 이것이 일년간 나의 글 농사인가 싶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고, 그렇게 길 한가운데 허탈하게 서 있는 내 자신이 불쌍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런 자신에게 연민의 정이 일어 눈물이 글썽 솟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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