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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푸(豆腐)의 역사 조작, 비빔밥의 글로벌 진화

먹을거리史로 ‘장난’치지 말지어다!

더우푸(豆腐)의 역사 조작, 비빔밥의 글로벌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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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아는 수많은 전근대 시기 음식은 ‘근대’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통과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아주 옛날부터 존재한 음식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음식에 민족의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국가나 민족 사이에서 특정 음식의 기득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 싸움의 하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역사나 정통성을 따져가며 음식을 먹지 않는다. 먹는 즐거움은 취향에 따라, 혹은 새로운 맛을 좇아 배가된다. 생명과 같은 음식을 두고 공연히 정통성이나 역사를 내세워 ‘장난’을 치면 안 된다.
더우푸(豆腐)의  역사 조작, 비빔밥의 글로벌 진화

일본의 칭기즈 칸 요리점. 어린 양고기가 나온다고 선전한다.

2006년 가을, 매우 흥미로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구의 모 신문사 기자였다. 그는 최근 대구에 ‘칭기즈 칸’이란 이름을 붙인 음식을 파는 식당이 몇 군데 생겼는데, 그 식당에 가면 몽골제국의 대제(大帝) 칭기즈 칸이 먹던 음식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음식이 정말 칭기즈 칸이 발명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정말 난감하다. 음식문화를 연구주제로 거의 20년을 몰두해왔지만 특정 음식의 역사를 묻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느 누가 특정 음식의 역사나 기원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을까.

몽골공화국 울란바토르에서 목축학을 전공한 몽골인 바토르씨에게 ‘칭기즈 칸 요리’라는 것이 몽골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는 대뜸 화부터 냈다. 왜 몽골인의 역사적 영웅인 ‘칭기즈 칸 대제’의 이름을 음식에 붙였느냐는 것이다. 그는 ‘칭기즈 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일본에 와서 처음 알았는데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그 음식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거꾸로 내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양고기를 즐겨 먹지도 않는 일본인들이 왜 그런 음식을 먹는지 아느냐”고.

한국인은 ‘칭기즈 칸’에 양고기를 넣지 않는다. 주로 쇠고기를 쓴다. 일본에서는 어떨까.

일본 ‘칭기즈 칸 요리’ 탄생 배경



내친김에 인터넷에서 ‘칭기즈 칸 요리’라는 키워드를 쳐보았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홋카이도신문(北海道新聞)’에 2003년 1월7일부터 11일까지 연재한 ‘탐험단이 찾아 나서다(探險團がたどる), 칭기즈 칸 이야기(ジンギスカン物語)’라는 기사였다. 남녀 기자 2명으로 탐험단을 조직,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음식인 ‘칭기즈 칸’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취재한 내용이다. 이 기사와 나의 다른 연구를 결합시켜 바토르씨 질문에 답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19세기말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양모(羊毛)를 군복의 소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양을 키우지 않았으므로 양모를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양모 수입이 쉽지 않았다. 결국 1918년 일본 정부는 양모를 자급하기 위해 ‘면양백만두계획(綿羊百万頭計劃)’이란 정책을 시행했다. 이로부터 홋카이도의 다키카와(川)·삿포로(札幌)·쓰키사무(月寒)와 시코쿠(四國)의 고치(高知) 등지에 전문적으로 양을 키우는 목장이 들어섰다.

양모만을 이용하던 목장에서는 늙어서 쓸모가 없어진 양의 처리에 고심했고, 양고기를 식용으로 싼값에 팔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지배층에서는 공개적으로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문명개화’를 위해서는 서양 사람들처럼 육식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때부터 각종 육식 음식이 개발됐는데 가장 인기를 모은 음식이 일종의 전골인 ‘규나베(牛鍋)’였다. 일본에서 ‘나베(鍋)’라고 하면 보통 우동이 담긴, 철모처럼 생긴 냄비를 가리킨다. 당연히 ‘요나베(羊鍋)’도 만들어졌다. 양고기는 거의 버리는 고기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격도 매우 쌌다. 그래서 일반 서민의 육식에 양고기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칭기즈 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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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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