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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화교 음식 ‘쨤뽄’이 한국에 있는 까닭

나가사키 화교 음식 ‘쨤뽄’이 한국에 있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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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아시아 말레이어에 ‘짠폰’이란 말이 있다. 마구 뒤섞어놓은 혼잡상태를 뜻한다. 베트남어에도 이 말이 있다. 뜻은 똑같다. 타이완 원주민이면서 인류학자인 린즈싱은 고산족 언어에도 ‘짠폰’이 그러한 뜻으로 쓰인다고 했다. 하지만 말레이에도 베트남에도 타이완에도 ‘짠폰’이란 음식은 없다. ‘짠폰’이 사용되는 지역은 모두 1930년대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가 침략한 지역이거나 식민지 경험을 가진 곳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어 ‘쨤뽄’이 군국주의와 함께 이들 지역에 침투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한반도에만 음식으로서의 짬뽕도 존재하는 것일까?
나가사키 화교 음식 ‘쨤뽄’이 한국에 있는 까닭

나가사키 쨤뽄.

일본 규슈(九州)의 서북쪽에 있는 나가사키(長崎)는 참 재미있는 곳이다. 도시 여기저기에 가톨릭 교회들이 우뚝 서 있고, 17세기부터 중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한 당인촌(唐人村)의 흔적도 있으며, 19세기 말부터 형성된 차이나타운도 있다.

2007년 12월 남국의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느 날, 나는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식당 ‘시후(西湖)’에서 ‘·#51748;뽄’과 ‘쟈쟘멘’을 먹으며 중국대륙에서 온 20대 여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이름은 샤링(夏玲).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가 고향인 그녀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에 왔다고 했다.

그녀가 처음 나가사키에 와서 먹어본 중국 음식은 고향의 맛과 약간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일하는 중국식당 ‘시후’는 화교(華僑) 3세가 주인으로 오래전부터 나가사키에 뿌리를 내린 음식점이다. 메뉴판에 오른 음식 대부분은 중국대륙의 식당에서 나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맛은 자신의 고향 음식에 비해 분명한 향이 없는 대신 달았다. 그렇다고 조리방법이 아예 다른 것은 아니었다. 대륙의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향신료를 적게 사용하는 대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풍미를 포함시킨 결과였다.

샤링이 고향에서 전혀 맛보지 못한 음식이 나가사키에서는 중국음식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음식이 주식(主食)으로 판매되는 면류(麵類)와 반류(飯類)다. 대표적인 면류로는 쟈쟘멘(炸醬麵, ジャジャンメン)과 ·#51748;뽄(チャンポン), 그리고 사라우동(皿うどん)이다. 중국대륙에서도 인기가 있는 차오판(炒飯, 볶음밥)이 반류의 으뜸에 들지만, 규니쿠돈(牛肉?)과 같은 쇠고기덮밥도 주문을 많이 받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간혹 타이완에서 온 손님들이 이런 음식이 적힌 메뉴판을 보고 매우 놀라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 음식을타이완의 중국식당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대륙에서 4년 가까이 살아본 내게도 이 식당의 면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쟈쟘멘을 먹어보고, 그 맛이 너무나 한국적이라는 데 놀랐다. 마치 서울의 한 중국식당에 앉아서 먹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일본식 고춧가루인 ‘시치미(七味)’를 뿌리면 그 맛은 그대로 한국의 자장면이다.

고향 떠난 이들이 만든 음식

계산대에 앉은 주인에게 이곳의 쟈쟘멘이 언제부터 이런 맛이었느냐고 물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 천씨(陳氏)는 자신이 어릴 때 먹던 쟈쟘멘과 지금의 것은 맛에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단다. 그러면서 아마 자신의 아버지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한국의 자장면은 그 원조가 1882년 이후에 인천에 거주하기 시작한 산둥(山東) 출신 화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사연이 있기에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식당에서도 똑같은 맛의 자장면을 맛볼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신동아’ 2007년 12월호에서 한국의 중국식당에서 판매하는 짬뽕과 우동이 일제 강점기 일본 화교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자장면·짬뽕·우동과 같은 중국음식을 ‘화교음식’이라고 부른다. 고향을 떠난 그들이 만들어낸 음식이라는 의미다. 이 화교음식은 분명히 중국음식의 일종이라고 보아야 옳다. 하지만 반드시 중국대륙에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이미 고향을 떠났고, 새로운 거주지에 적응하면서 만들어낸 산물이 바로 화교음식이기 때문이다.

원래 ‘화교(華僑)’라는 말은 ‘외국에서 임시로 사는 중국계 주민’을 가리킨다. 그래서 영어로 화교는 ‘overseas Chinese’로 번역된다. 이에 비해서 ‘화인(華人)’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거주지 사회에서 완전히 정착한 중국계 주민을 부르는 말이다. 영어 표기도 화교와 달리 ‘ethnic Chinese’로 적는다.

가령 동남아시아에서 이미 사회적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중국계 주민들은 ‘화인’임에 틀림없다. 국적을 미국이나 캐나다로 바꾼 중국계 주민들도 ‘화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이나 일본의 화교들은 대부분 국적을 타이완의 중화민국으로 두고 있는 체류외국인에 속한다. 그러니 한국이나 일본에서 이민 3세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중화민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화교’라고 불러야 옳다. 그들의 불안정한 거주는 해당 국가에서 그들을 체류외국인으로 규정한 탓이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살던 중국계 주민들은 ‘제비’라고 불렸다. 춘절(春節)만 되면 거의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법 큰돈을 벌고서도 그 사회를 위해 돈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화교에 대한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좋지 않았다. 비속어인 ‘장꼴라’ 역시 원래 금고를 보관한다는 의미의 ‘장구이(掌櫃)’에서 온 말이다. 그만큼 한국의 화교들이 돈 보따리를 끌어안고 사는 구두쇠란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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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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