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브레이터’
흥미롭게도 홍상수의 여행 영화에서 남자들이 택하는 로맨스는 결국 방석집에 가서 여자들과 놀거나 성매매 여성을 불러 하룻밤을 때우는 것이다. 로맨스를 꿈꾸지만 결국 그들이 행하는 일탈은 별 볼일 없고 때론 구차하다.
‘강원도의 힘’의 한 장면은 이 구차함을 잘 보여준다. 여행 일원인 두 사람은 여자를 사서 숙소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한 남자의 여자는 몸매도 미끈하고 얼굴도 예쁘다. 주인공 남자의 파트너는 그보다 못하다. 주인공 남자는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는 이 장면들은 그들이 여행지에서 행하는 일탈이라는 게 이렇게 우습다는 것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낯뜨겁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남자가 둘도 없이 가정적인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집’에 돌아온 남자는 남편으로 되돌아온다. 대문을 열고 나서면 또 다른 애인과 만나고 여행지에 가면 로맨스를 꿈꾸지만 집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군다.
김수용 감독의 ‘안개’가 여행지에서의 일탈을 아릿한 추억과 배반의 모멸감으로 장식하고 있다면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은 그 일탈을 우스운 것으로 비웃는다. 그런 점에서 ‘생활의 발견’은 남자들이 여행지에서 꿈꾸는 일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말했다시피 춘천의 여자 문숙은 먼저 경수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고 고백까지 했다.
경주의 여자 선영은 어땠을까. 선영은 경수의 애를 태우다 태우다 하룻밤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경수는 그 이상을 원하는데 선영은 가차없다. 경수는 춘천에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문숙을 “미친년”이라고 욕하며 떠나왔다. 그런데 경주에서 경수는 춘천에서 보았던 문숙의 모습과 하나 다를 바 없다.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선택해 유혹하고, 우연히 기차 옆자리에 동승한 미녀가 말을 걸어오는 일. 사실상 이는 혼자 여행하는 남자들이 꿈꾸는 로맨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가 하룻밤의 쾌락까지 허락한다면 남자가 꿈꾸던 여행의 일탈은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은 여행에서 꿈꾸는 남자들의 유치한 욕망의 전시장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쉽게 준 여자는 금세 잊고, 끝까지 애를 태우는 여자 옆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여행지에서 로맨스를 꿈꾸지만 결국 그것도 스캔들이자 추문, 일탈에 지나지 않은 것. ‘안개’와 ‘생활의 발견’ 사이에 그 가역반응이 놓여 있다.
덜덜거리는 트럭 위에서

‘더티 댄싱’
로버트에게 이 로맨스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낭만적인 비밀이었다. 영화 속에서 로버트와 니콜이 나눈 로맨스는 나나 무스쿠리의 ‘사랑의 찬가’와 함께 신화화한다.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 일상을 벗어던진 두 연인은 영원과 같은 입맞춤을 나눈다. 10년 전의 일탈을 신화로 기억하는 것은, 그것을 간직한 로버트 자신이다. 일탈은 기억 속에서 낭만적 신화로 자리 잡는다.
영화는 추억의 봉인을 뜯고 현실로 틈입한 로맨스의 흔적으로 진행된다. 로버트의 아이를 홀로 키우던 니콜이 죽고, 이제 아이에 대한 책임이 생부인 로버트에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현실, 일상의 아내에게 10년 전의 비밀을 고백하는 순간 추억은 불륜으로 오염된다. 영화는 난데없이 등장한 남편의 로맨스를 추문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한 가족의 노력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