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비타는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과 뛰어난 연설 재능으로 어디를 가나 남편을 능가하는 환호와 사랑을 받았다.
-‘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 147쪽
대중은 가족과 왕실로부터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한 다이애나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두 아들에게 애정을 쏟고 자선활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려 한 노력을 매일 미디어를 통해 거의 생중계처럼 알 수 있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왕실에서 허락받아야 했던 시절을 통과하자, 이제 일거수일투족을 대중에게서 허락받아야 했던 다이애나. 친정은 물론 시댁과 남편에게도 버림받은 그녀가 기댈 곳은 오직 대중의 사랑뿐이었기에 그녀는 대중의 반응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중은 그녀의 감시자이자 응원자였고 구원투수이면서도 배신의 칼날이었다. 대중의 반응은 말 그대로 그녀의 행동에 대한 사후적 리액션이었을 뿐 그녀의 삶 자체를 바꾸는 능동적 액션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에서 위로를 얻었지만 사랑과 선망으로 가득 찬 대중의 시선이 언제든 잔혹한 질시와 비난의 시선으로, ‘샤리바리(중세 이후의 유럽에서 공동체의 규범을 어긴 자에게 가하던 의례적인 처벌 행위)’의 악몽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그녀가 기대고 있던 대중은 허공 위의 소파처럼 불안한 언덕이었던 셈이다.
다이애나비를 둘러싼 언론의 가차 없는 비방과 충격적인 과장 보도는 각종 루머 기사에 익숙한 우리 시대의 시선으로 봐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왕세자비가 별거를 앞두고 있을 때 ‘선데이 타임스’ 표지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무심한 찰스로 인해 다이애나,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 ‘결혼 생활의 파탄으로 인해 발병하다, 왕세자비 왈, 자신은 결코 왕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사가 나고 있는 동안 다이애나의 평전을 준비하고 있던 기자 앤드루 모튼은 살해 협박까지 받을 정도였다.
대중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환호하다가 그녀의 실수에 분노하고 그녀의 고통에 연민을 느꼈다. 이 연민이야말로 다이애나비를 죽인 또 하나의 살해자가 아니었을까. 중요한 것은 대중이 다이애나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일거수일투족을 대중과 주변 인물들에게 감시당하고 조종당하는 삶을 살면서 ‘나의 삶’이라는 감각의 중추 자체를 잃어버렸다. ‘나의 힘으로 내 삶을 조종하고 내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성년 시절 전부를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제도 안에서 보내야 했다. 그녀의 시간표를 알아서 처리하고 그녀의 자아를 주물러대는 조신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경호원, 황당한 왜곡이나 아무 생각 없이 경솔하게 써내려간 자가당착적인 내용, 혹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녀의 인격을 정의해버리는 미디어들 틈에서 조종당하며 살았다. 대체로 미디어의 반응을 기준 삼아 다이애나는 날이면 날마다 자기 자신을 판단했다.
-‘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 80쪽.
그녀는 단지 영국의 왕세자비가 아니라 전세계의 왕세자비가 되었다. 죽음으로써 그 영원한 아름다움은 완성되었다. 국왕과 왕비라는 상징적 신성성의 지위가 추락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녀는 국왕도 왕비도 공주도 아니면서, 나중에는 왕세자비의 자리까지 빼앗기면서, 그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강력한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진정한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그녀는 더없이 끔찍한 불행 속에 죽어가는 모습마저 파파라치에게 도륙당한 고통스러운 인간이었다. 그녀는 미디어로 인해 중요해졌고 미디어로 인해 폭풍의 눈이 되었으며 미디어로 인해 몰락과 상승을 반복했다.
대중의 시선, 대중의 욕망
에비타와 다이애나는 남편을 보충하는 역할을 넘어 남편을 능가하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바로 이 점이 그녀들을 남편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했다.
1994년부터 1995년에 걸쳐 다이애나는 종종 켄싱턴궁을 나와 그 구역의 집 없는 자들의 거처로 가서 돈과 음식을 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키워야 할 어린애가 둘이나 있는 한 여인에게 겨울 코트 살 돈을 몽땅 준 적도 있었다. 또 언젠가는 뜨내기 노동자가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모피코트를 폐기물 운반 용기에 던져 넣기도 했다. 그녀는 줄기차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며 보고 싶어했다. …‘나는 상류층 사람들보다는 밑바닥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상류층 사람들이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를 용서하려 들지 않았어요.’
-‘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 180~181쪽.
에비타는 타인이 그녀의 단점을 공격할수록 더 강해지는 타입이었다. 에비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 한때 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다는 것, 첩의 자식이라는 것. 이 모두가 그녀에게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녀는 그러한 인신공격을 받을 때마다 주눅 들기는커녕 더욱 당당해졌다.
신문기자들은 그녀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에바를 에워싸고는 일제히 빈정거리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지요? 좋아하는 음악은? 취미는?’ 에바는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우선 자신이 교양이 없는 천연 그대로라고 고백했다. ‘어느 작가를 좋아하느냐구요? 톨스토이요. 읽어보았느냐구요? 아뇨, 아직.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구요? 가장 짧은 거요.’
-‘에비타 페론’, 알리시아 두호브네 오르띠스 지음, 박주연 옮김, 홍익출판사, 2001년,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