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을 떠나려 할 때 몇몇 지인은 “아마 2년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올 걸세”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도 이젠 내가 ‘그곳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 스스로도 이곳 생활에 연착륙(軟着陸)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 시골살이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이 글은 서울에서 가까운 수도권에 별장이나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려는 분들에겐 맞지 않다. 말하자면 은퇴 후 작심하고 서울을 떠나 멀리 지방 소도시나 산촌에서 ‘새 삶’을 꾸려보려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자연 닮아가는 삶의 묘미
시골살이의 장점은 우선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자연의 혜택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생명의 원천인 산천초목은 우리 삶의 원초적 바탕을 건강하게 새로 다져준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최상의 먹을거리, 볼거리, 일거리를 제공한다. 그뿐인가. 농촌에서는 인공도시가 토해내는 온갖 소음과 분답(紛沓), 갈등과 경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대신 자연이 안겨주는 아름다움과 정신적 여유, 그리고 평화가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은퇴 후 시골살이는 경제적으로 매우 유리하다. 한국 노인 대다수가 ‘100세 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채 노령기에 접어들었다. 그런 까닭에 물가가 비싸고 소비 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서 여생을 보낸다는 것은 무척 버거운 일이다. 그런데 지방 소도시나 농촌으로 이주하면 적어도 의식주의 부담은 현격하게 줄어든다. 무엇보다 주거비가 파격적으로 적게 들고 식품과 의류 지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면 반(半) 자급자족도 가능하다.
내 경우, 시골살이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얼굴 때문에, 남과 척지지 않으려고 하기 싫은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실속 없이 스케줄에 쫓길 일도 없다. 알량한 체면이나 하찮은 명예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뿌리치기 어려운 연고의 늪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늙마에 세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시골살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많은 이가 시골살이를 꿈꾸면서도 이를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주저한다. 이유가 뭔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그중 하나는 “나는 당장이라도 하향하고 싶은데 마누라가 절대 반대라서”다. 그러면서 안주인이 ‘늘그막에 영감 없이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라든지 ‘손자 재롱’ ‘쇼핑 재미’ ‘고급문화에 대한 미련’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서울을 떠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예 시골 가기를 포기하는 게 옳다. 당장 어렵사리 부인을 설득하더라도 약발이 오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은 건강이나 의료에 관한 걱정이다. 지병이 있거나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아서 혹은 만약의 위급한 사태가 걱정돼서 의료시설이 좋은 대도시를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건강 걱정을 늘 머리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시골행은 실제로 무리다. 그러나 이 경우 얼마간 재고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검증된 장수(長壽)의 세 가지 요건은 운동과 음식, 조기검진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시골은 운동과 음식 등 섭생에는 최적의 조건이고, 조기검진은 마음의 문제이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많은 이가 우려하는 것이 고독, 외로움, 소외감 등 심리적인 어려움이다. 이 문제는 개인차가 있지만, 심각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조금의 외로움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나 세상 사는 재미를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서 찾는 이에게는, 황혼 무렵 홀로 서산에 걸린 저녁노을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이가 자연과 교감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내면적 충일(充溢)을 만끽한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자주 제기되는 걱정이 생활의 불편과 문화 향수(享受) 기회의 부족이다. 도농(都農) 간 삶의 양식 차이와 문화적 격차는 분명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농촌도 생활개선, 교통과 통신망의 발달, 문명의 이기, 대중문화의 확산 등으로 그 간격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