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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하이틴 스타

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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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중반 여고생 임예진은 한국 영화의 중심이었다. 거친 남성들의 액션 영화와 호스티스 멜로 영화가 극장가를 양분하던 시절,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깨끗하고 순진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애마부인’을 비롯한 수많은 ‘부인’이 성적인 매력을 앞세워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복숭아 같은 뺨, 하얀 목덜미로 한 시대 소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영원한 여고생, 임예진을 추억한다.
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깜찍하고 풋풋한 외모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 임예진.

1977년 늦가을.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도서관이 갑자기 술렁이고, 누군가 “데모한다!”라고 소리치자 학생들이 일어나 창가로 몰려들었다. 나도 몸집 큰 학생들 틈을 비집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고등학생 100여 명이 함성을 지르며 성난 파도처럼 우르르 교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4·19혁명 때 같았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어른들이 교문 앞에 있다가 고등학생들에게 쫓겨 허둥지둥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언제나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재빠르게 정보를 획득한 자가 있었다. 한 학생이 진상을 밝혀줬다. 우리 학교에 하이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촬영팀과 배우들이 왔는데, 학교 측이 촬영허가를 내주었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이 학교에서 하이틴 영화 따위를 찍는 것에 분노한 고등학생들이 데모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달려갔겠지만, 그 당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고등학생들은 영화 촬영을 반대하고 배우들을 몰아내기 위해 노도처럼 달려갔던 것이다.

이해가 안 갔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에서 하이틴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뭐 그렇게 화가 날 일인지.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 못하던 나는 하이틴 여배우 강주희가 왔다는 말을 듣고 혹시 그녀를 볼까 싶어 도서관을 나가 데모 학생들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피신한 후였다.

까까머리의 해방구

1976년. 내가 막 중학생이 됐을 때 영화 한 편이 까까머리 소년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당시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그 영화를 유치한 것이라 여기고, 오로지 무술 영화만을 보는 나의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흥행을 이어가는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국 영화를 주로 개봉하던 을지로의 국도극장을 찾고야 말았다. 영화 제목은 ‘고교 얄개’. 극장 안에 들어서자 이상한 감동이 휘몰아쳤다. 검은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남학생들과 하얀 칼라의 단발머리 여학생들만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어른이 없는 검은 교복들만의 세계. 물론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영화를 보러 가도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지만 그때는 강요에 의한 동원이었다. 그러나 ‘고교 얄개’를 보러 들어간 극장 안은 순전히 자발적인 의지의 검은 교복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된 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때면 항상 불안에 시달리곤 했다. 극장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지도부 선생들에 대한 공포. 그들에게 걸리면 최소한 유기정학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마자 극장에 가는 것은 학칙을 위반하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알고 나는 절망에 빠졌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물론이고 청소년 입장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조차 교칙 위반 행위라는 것이었다. 아니 왜? 학생지도부 선생들은 교칙을 위반한 학생을 잡아내려고 일제 고등계 형사들처럼 눈에 불을 켜고 극장 안을 순찰한다고 했다.

게다가 초등학생 때는 몰랐던, 극장 화장실에 기생하는 깡패의 존재도 알게 됐다. 그들에게 걸리면 팬티만 남기고 모조리 빼앗기고 재수 없으면 죽도록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고, 반 아이 중 몇몇이 시계를 빼앗기기도 했다. 반 아이 중 하나는 여자친구와 극장엘 갔다가 학생지도부 선생에게 걸려 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왕우 주연의 무술 영화가 들어오면 나는 내 신상정보가 만천하에 유출되는 이름표와 교표가 있는 교복 윗도리를 벗어 가방에 집어넣고, 학생모 역시 집어넣고는 까까머리를 숨기려 털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이고 ‘미션 임파서블’ 작전만큼의 긴장을 하며 극장 안에 숨어들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런 불안이 없었다.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우리 모두를.

고교생 스타의 탄생

영화가 시작됐고, 나와 친구들은 마음껏 웃고 즐겼다. 그 옛날 ‘미워도 다시 한 번’(정소영 감독, 1968)과 ‘꼬마 신랑’(이규웅 감독, 1970)에서 이모와 고모들의 하얀 손수건을 적셨던 꼬마 스타 김정훈이 어느새 나이를 먹어 고등학생이 돼 있었다.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감독, 1975)에서 구두닦이 소년으로 나와 각박한 세상에서 정직함을 잃지 않은 행동을 보여 감동을 줬던 이승현 역시 고등학생이 돼 있었다. 신기했다. 저들도 나이를 먹고 성장하는구나. 이웃집 형·누나 같은 고등학생 연기자들의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고교 얄개’지?

초등학생 때, 길고 긴 겨울방학 동안 나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조흔파 원작의 ‘얄개전’. 표지에 만화가 신동우의 그림이 있던 책으로 기억한다. 개구쟁이에 낙제생인 중학생 ‘나두수’의 천방지축 모험담이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의 낙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학생이 되면 낙제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했다. 중학생이 돼 내가 본 영화 ‘고교 얄개’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이었는데, 하는 짓은 소설 속 중학생과 똑같았다. 아니 고등학생이 되면 중학생과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 아닌가? 게다가 영화에는 소설 속에서 내게 두려움을 준 낙제에 대한 위협이 없었다. 그냥 까불기만 하는 것이었다.

약간 화가 치밀었던 부분도 있다. 이전에 보았던 한국 깡패 영화들은 주인공이 천방지축 날뛰거나, 못된 짓을 일삼아도 라스트에 가면 그동안 저지른 나쁜 짓이 사실은 형사인 그가 정체를 숨기고 간첩 또는 악당들을 잡기 위해 꾸민 것으로 밝혀지거나, 깡패 주인공이 지난 잘못을 모두 뉘우치고 선행을 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고교 얄개’는 주인공이 갑자기 천방지축 까불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의젓한 모습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뭐야 이거!

1976년 청소년 영화 ‘고교 얄개’는 성인들이 보는 영화들을 제치고 흥행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이승현·김정훈 주연의 고등학생 영화가 봇물 터지듯 개봉됐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시대에 검은 교복을 위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청소년이 된 베이비붐 세대가 불러일으킨 기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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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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