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었다. 연말 때문이었다. 번다한 회합에는 일절 나가지 않는 그는 어쩌다 그만 자기 나름대로 지켜온 일상의 작은 원칙, 곧 최다 5인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는다는 룰을 스스로 깨고 말았다. 아주 다정하고 친절한, 그것도 젊은 여인의 전화였기 때문에 그는 어느 송년 모임에 나가겠노라 언질했고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의 어수선한 마음을 수습이라도 하려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번잡한 섹션으로 급변해버린 홍대 앞의 어떤 목적지를 지향해 두 손을 점퍼 주머니 안에 꽂고 걷던 중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그의 눈에 휴대전화 가게가 보였고 별 탈 없이 잘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왼손을 찔러둔 주머니 안에 얌전히 스탠바이 하고 있는데도, 주술에 걸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날렵하고 세련된 모양의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그는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부터 하게 됐고 그로부터 5분 동안 판촉 청년의 설명을 듣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청년의 판촉 활동은 눈부셨다.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펙과 가격과 그 할인 정책이 정확하게 녹음된 기계음처럼 청년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직원의 속사포 같은 설명은 그가 지난 몇 해 동안 이 거대 도시에서 들어온 수많은 약속의 말을 연상시켰다.
크게 세 차례의 선거가 연거푸 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총선과 대선을 1년 안팎에 치렀다. 그러니 말이 넘쳤다. 말들이 말들을 공격하고 그 공격에 대응하는 말들 또한 최초의 일타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의 눈에 참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거짓은 너무나 또렷했다. 공직을 저 개인의 마지막 성공담으로 장식하려는 자들이 떨어져 나갔을 때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말들의 시간, 그 후
그러나저러나 1년여 동안 큰 말들을 듣고 지냈다. 그 시간은, 아울러 큰 기술 혁신의 버라이어티쇼이기도 했다. 스마트 열풍으로 인해 감각의 기관이 바뀌고 그 방식이 바뀌고 그리하여 만나고 헤어지는 관습도 바뀌어버렸다.
그는 휴대전화를 두 번 바꿨다. 한 번은 스마트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더욱 화려하고 세련된 디바이스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두 차례의 기기 변경 과정에서 사용설명서를 거듭 읽었고 데이터를 백업했으며 백업한 내용을 다시 로딩해야 했고 몇몇 애플리케이션도 이동시켰다. 자주 듣는 음악과 자주 가는 사이트를 스마트폰에 정렬하는 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었던가.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해야만 했던 일들은 차라리 생략해도 좋겠다.
아무튼, 그런 일들을 치르면서 그는 지쳐버린 것이다. 판촉 청년은, 구매 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는 그의 표정을 읽고는 끝내 단념했다. 쓰던 거 그냥 쓰셔도 된다는 그 말은 어서 이 가게에서 나가달라는 사뭇 쌀쌀한 통고였다.
거리로 나서면서, 그는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떠올렸다. 소설 속에서 구스타프 아센바흐는 뮌헨의 거리를 걷다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정처를 잃고 헤매더니, 아 어디론가 떠나야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아센바흐는 바로 그 순간 더 이상 그 남자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는 울타리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남자를 잊어버렸다. 한데 그 기이한 사람의 모습에서 엿보인 방랑기가 아센바흐의 공상력을 자극한 건지 아니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떤 영향을 미친 때문인지 정말 놀랍게도 그는 자기 내면이 확장되는 듯한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정처 없는 마음의 동요나 젊은 시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목마른 갈망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생명력 넘치고 신선한 것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떨쳐버려서 잊힌 것이었다. 그는 손을 뒷짐 지고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시킨 채 그런 느낌의 본질과 목표하는 바가 뭔지를 알아내기 위해 제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 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에 다름 아니었다. 사실 어떤 생각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열렬해져서 격정이 되기도 하고 정말이지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까지 고조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갈망은 뚜렷해져갔다. (토마스 만,‘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