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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 너무 많은 나무

  • 한재범

[시마당] 너무 많은 나무

나의 착하고 불성실한 친구 장은 죽어서도 공방에 간다
실은 별로 안 착하고 꽤 성실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래서 나무가 된 거야?

죽은 장이 비웃는다
나무가 된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무가 되어서도 여전히 숨을 쉰다
가만히 숨을 쉬다 보면 배가 부르다

빛이 나를 한 차례 지나가고
두 차례 지나가지만 나는 나무다

내 밑으로 내 모양의 그늘이 자란다 바람에 자꾸 머리가 흔들리네 다행히 나는 긍정적인 나무가 되었구나



무수히 많은 빛이 나를 밟고 지나가고 끝없이 자라는 나의 가지 내가
뻗어나갈 때 나는 나를 못 참겠구나

그러나 말할 수는
없는 나무다

적당히 살걸 그랬어 장이 말할 때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내 머리가 저절로 끄덕인다 죽지 않으려는 마음이 너를 죽인 거구나 빛과 초록과 장이 우거져가던 여름

장이 척척 쌓여
공방을 떠나는 걸 내가 보았다

그럼에도 다시 공방 앞에 와 있는 장은 참 귀여운 친구다

공방은 여전히 분주하고
헌것을 부수고 새것을
만드는 일은 줄지 않고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입구를 드나든다 아는 얼굴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무는 그토록 익숙한 것 이곳엔 나무인 내가 있고 내가 아닌 나무들이 있고 나무는 어디에나

너무 많고
나는 흔한 풍경

[Gettyimage]

[Gettyimage]

한재범
● 2000년 광주 출생
● 2019년 창작과비평사 신인상



신동아 2023년 2월호

한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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