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염장 지르기’로 옛맛 되살린 안동 간고등어

비린내 싹 가신 뽀얀 속살에 점잖은 양반 나리도 군침 ‘꿀꺽’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사진 양영훈 기자

    입력2005-07-28 1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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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에 가면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닷가로부터 250리나 떨어진 지리적 특성이 낳았다는 간고등어 때문이다. 이제 안동 간고등어는 안동의 특산품이 아니다.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대한민국의 특산품이다.간고등어의 옛맛을 현대인 입맛에 맞게 되살려낸 안동을 찾았다.
    ‘염장 지르기’로 옛맛 되살린 안동 간고등어
    경상북도안동은 예로부터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와 맹자의 고향)’, 또는 ‘양반의 고장’이라 일컬어졌다. 지금도 다른 고장에 견주어 보수적인 안동에서는 세속의 변화가 더딘 편이다. 물론 풍속이 변하고 세상이 바뀌면서 ‘대추 한 톨로 요기한다’던 선비기질이나 ‘열 끼를 굶어도 내색하지 않는’ 양반체통이 옛날처럼 중시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안동 곳곳에는 옛 양반문화의 전통이 적잖이 남아 있다. 외적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옛스런 마을 풍경이다. 죽담이 길게 이어지는 고샅, 고샅길 안쪽의 고래등 같은 옛집, 오랜 풍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원과 재각(齋閣)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을 어딜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즘 안동지방에는 양반문화의 자취만큼이나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안동 간고등어’ 간판이다. 특히 안동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네댓 집 건너 하나꼴로 안동 간고등어 간판이 내걸려 있다. 근래 들어 안동 간고등어에 대한 수요가 가히 폭발적임을 짐작케 하는 풍경이다.

    간고등어는 자반고등어다. 고등어는 예로부터 명태만큼이나 즐겨 먹어온 생선이다. 하지만 고등어는 “살아서도 썩는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빨리 상하는 생선이다. 그래서 옛날에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까지 고등어를 운반하려면 소금을 듬뿍 쳐서 염장(鹽藏)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륙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고등어는 짜디짠 자반고등어뿐이었다.

    비단 고등어뿐만 아니다. 갈치와 조기도 굵은 소금을 팍팍 친 간갈치와 간조기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간고등어를 안동지역만의 향토음식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같은 조기도 영광 법성포에서 염장한 굴비가 확실히 다른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자반고등어라도 안동에서 생산되는 안동 간고등어는 맛이 깊고도 풍부하다. 이처럼 바다에서 250여 리나 떨어진 안동의 간고등어가 맛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걸 알려면 먼저 안동의 지역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안동은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유씨로 대표되는 권문세족의 관향(貫鄕)이다. 수백년 세월 동안 지체 높은 양반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다보니 자연스레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오늘날 경상도 음식이 대체로 짜고 맛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유독 안동 음식만큼은 맛깔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평가한다.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지나는 길에라도 일부러 안동에 들러 헛제삿밥이나 건진국수와 같은 별미를 한 그릇 먹고 가는 일이 언젠가부터 습관이 됐다.

    옛날부터 안동은 경상북도 내륙지역의 역사·문화·경제·군사·행정·교통의 중심지였다. 경북 북부의 여러 고장으로 들고나는 산물의 대부분이 안동을 거쳐서 유통됐다. 간고등어도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안동에서 가장 가까운 어항은 영덕 강구항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 강구항에서 안동까지는 도보나 우마차로 꼬박 1박2일이 걸렸다.

    강구항에서 새벽 5~6시쯤 길을 나서면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청송과 영덕의 경계를 이루는 황장재를 넘어 청송군 진보면의 신촌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쉬게 됐다. 이튿날에 다시 신촌마을을 출발하면 청송과 안동의 경계인 가랫재를 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에 채거리장터(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의 어물전에 고등어를 넘길 수 있었다.

    안동까지 나르는 데만 이틀

    안동 초입의 채거리장은 한때 영남 북부지방에서 가장 큰 어물전이 들어섰던 장터다. 당시 장터 주변에는 마방(馬房)만도 대여섯 개에 이르러 장터를 드나드는 우마차의 채찍질소리가 그치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채거리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임동댐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수몰지역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영덕 강구항에서 임동 채거리장까지 고등어를 운반하는 데에 이틀이나 걸리다보니, 고등어를 상하지 않게 하려면 소금간이 필수적이었다. 소금간을 하는 방법에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고등어를 잡자마자 즉석에서 배를 따고 간하는 방법, 포구에 도착해서 간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내륙의 소비지로 운반해서 간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전통적으로 안동 간고등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을 모두 사용해왔다. 열다섯 살 때부터 ‘간잽이(간을 맞추는 사람)’를 해왔다는 이동삼(65)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 고등어는 상하기 직전에 고기 맛을 가장 좋게 하는 효소가 나옵니다. 영덕이나 울진에서 소금을 한번 친 고등어를 안동 채거리장까지 갖고 오는 데에 하루가 넘게 걸리니까, 그 무렵이면 고등어가 막 상하기 직전의 상태가 되지요. 그때 소금으로 한번 더 간을 맞추면 가장 맛있는 간고등어가 됩니다.”

    “상하기 직전 소금간해야”

    ‘염장 지르기’로 옛맛 되살린 안동 간고등어

    해동, 할복, 세척, 염장, 숙성의 단계를 거친 간고등어를 저울에 달아 크기별로 나누고 있다. 이렇게 가공된 간고등어는 비닐팩으로 진공포장되어 해외로도 수출된다.

    그의 말대로라면 안동 간고등어는 안동의 지리적 여건이 탄생시킨 특산품인 셈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안동 간고등어는 보통 짠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안동 사람들은 짜디짠 간고등어를 반의 반 토막으로 썰어 밥상에 놓고 온 식구가 한 끼니의 밑반찬으로 먹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전라도 밥상에 빠지지 않는 젓갈과 같은 구실을 안동지방에서는 간고등어가 대신해온 셈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간고등어를 즐겨 먹던 안동 토박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밥상에 간고등어가 없으면 반찬투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처럼 안동 사람들이 간고등어를 유난히 즐겨 먹지만, 간고등어가 안동지역만의 특산품은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안동 간고등어가 자반고등어의 대명사가 된 것은 (주)안동간고등어 류영동(46) 대표의 공이 크다.

    “제가 해물을 아주 좋아해서 오래 전부터 생선장사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몇몇 지인과 술자리를 같이했는데 누군가가 ‘간고디이(간고등어)가 안동의 명품이 될 수 있을 낀데’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습니다.”

    마침 당시 한 지역신문에 안동 간고등어를 주제로 한 캠페인성 광고가 몇 차례 나간 적이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 지방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광고였는데 이 광고에 바로 안동 간고등어를 한 손에 든 할머니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광고가 나가자마자 신문사에 ‘안동 간고등어를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했답니다. 그래서 ‘바로 이거다, 내가 한번 해보자’고 뛰어들었죠. 안동사람들이 선호하는 간고등어를 위생적으로 가공하고 포장해서 마케팅만 잘하면 히트상품이 될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는 곧바로 시장조사에 나섰다. 최대 소비지인 서울, 우리나라 연근해산 고등어의 집산지인 부산공동어시장 등지를 직접 돌아다녔다. 시장 규모와 소비자의 기호를 조사하고, 고등어의 가격과 출하량을 파악했다. 당시 그가 조사한 바로는 고등어의 시장 규모가 한해 4000억여 원쯤 되었다. 그중 안동 간고등어가 10%만 차지해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계획했던 대로 고등어시장의 10%를 차지한다고 해도 수익성이 좋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고등어를 비롯한 생선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즉 고등어 어획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갑자기 수요가 폭증해도 거기에 맞춰 제대로 공급물량을 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삼은 것이므로 안동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는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시장과 정부의 총력 지원

    실제로 (주)안동간고등어는 회사 창립 이래로 지역의 전통문화 발굴에도 적잖이 기여했다. 한겨울에 얼음을 채취해 석빙고에 저장하는 의식인 장빙제(藏氷祭)를 재현했는가 하면, 향토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바지게꾼과 등짐장수가 간고등어를 운송하던 옛 광경도 복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안동석빙고보존회, 안동간고등어보존회 등의 전통문화 보존모임을 결성했다.

    류영동 대표가 안동 간고등어에 대한 사업구상을 구체화할 무렵인 1999년 4월, 때마침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안동’지역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는 안동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마케팅으로 연결하기 위해 고심한 끝에 ‘안동’이라는 지명을 함께 팔아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래서 상표도 ‘안동간고등어’로 정했다. 하지만 안동 간고등어의 맛을 어떻게 제대로 내느냐가 큰 문제였다. 그래서 40년 넘게 안동에서 간잽이를 해온 이동삼씨를 스카우트했다.

    사업 아이템이 안동지역의 문화에 뿌리를 둔 덕택에 안동과학대학과 안동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동과학대학은 약 9개월에 걸쳐서 포장용 비닐팩을 개발하고 안동 간고등어의 로고와 포장재를 디자인했다. 지금은 널리 보급됐지만, 당시만 해도 생선을 비닐팩에 포장한 것은 안동 간고등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안동시에서는 1999년 가을, 첫 시판을 앞둔 간고등어를 지역 특산품으로 지정하여 판촉을 지원했다. 오늘날에도 안동시의 시정설명회나 홍보행사에는 간고등어가 빠지지 않고 특산품으로 소개된다. 안동시장은 손님이 찾아오면 무조건 안동 간고등어 정식을 대접하고, 명절 때마다 지인들에게 안동간고등어 한 세트를 선물로 보낸다고 한다. 이처럼 안동 간고등어는 기업과 대학, 그리고 관청이 하나로 힘을 모아 탄생시킨 작품이었다.

    (주)안동간고등어의 류영동 대표는 1999년 추석 직전에 1000손(2000마리) 분량의 간고등어 시제품을 주요 백화점의 바이어에게 보냈다. 모두 안동 간고등어의 맛과 포장방법에 좋은 반응을 나타냈다. 뒤이어 백화점과 할인매장 등에서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불과 넉 달 만에 4억여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듬해인 2000년 7월부터는 홈쇼핑 판매를 시작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한 홈쇼핑업체에선 안동 간고등어가 최고 히트상품의 하나로 선정됐을 정도였다. 그 결과 2000년 24억, 2001년 78억, 2002년 116억, 2003년 170억, 2004년 228억원으로 매출액이 수직상승했다. 올해의 목표 매출액은 300억원 이상이다. 출시 6년 만에 무려 100배가 넘게 급성장함으로써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사들인 고등어가 안동간고등어 공장에서 브랜드를 달고 탈바꿈하면 대체로 값이 곱절이 된다. 산술적으로는 50%의 이윤을 남기는 셈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생각했던 만큼 이문이 큰 장사는 아니다. 해동(解冬)부터 출하까지 간고등어가 상품으로 만들어지려면 열 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정이 사람의 손이 가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안동시 일직면 송리에 자리잡은 안동간고등어 제1공장을 찾아 간고등어의 가공과정을 살펴봤다. 현재 안동간고등어의 공장장을 맡고 있는 간잽이 이동삼씨의 안내를 받았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공장 내부로 들어서니 맨 먼저 고등어 수천마리가 물속에 잠겨 있는 대형 수조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냉동상태로 운반된 고등어를 해동시키는 곳이다.

    약 4시간의 해동 과정을 거친 고등어는 옆쪽의 도마에 올려진다. 흰색 위생복과 장화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능숙한 칼 솜씨로 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했다.

    ‘염장 지르기’로 옛맛 되살린 안동 간고등어

    어물전(사진1)이다. 이를 안동의 명물로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주)안동간고등어의 류영동 대표(사진2)로, 현재 안동 어느 곳을 가도 간고등어구이와 간고등어찜을 곁들인 간고등어정식을 맛볼 수 있다(사진3).

    잘 다듬어진 고등어는 습식염장(濕式鹽藏)을 한다. 염도를 적당하게 맞춘 소금물에 2시간 가량 담가서 염장하면, 살과 뼛속까지 간이 고루 배어든다고 한다. 습식염장을 거친 고등어는 다시 건식염장을 거친다. 이른바 ‘염장 지르기’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간잽이 이동삼씨의 풍부한 경험과 칼 같은 정확도가 돋보인다. 그가 한번에 손에 쥐는 소금의 양은 정확히 20g이지만, 고등어의 크기에 따라 뿌려지는 소금의 양은 조금씩 달라진다. 또한 크기가 같은 것이라도 눈동자의 상태에 따라 소금의 양을 조절한다.

    이씨는 “짭짤하고도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안동 간고등어의 맛은 염장과 숙성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냉동시설이 발달한 데다 소비자들이 짠 음식을 삼가는 추세라 전통 간고등어에 비해 염도를 크게 낮춰 소금간을 한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직접 시식해본 안동 간고등어는 짜지 않고 비린내가 별로 나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게다가 육질이 싱싱하고 탱탱하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서 입맛을 확 돋워주었다.

    염장 지르기가 끝난 고등어를 영하 4℃를 유지하는 30평 크기의 숙성고에서 24시간쯤 숙성된다. 숙성을 마친 고등어 무게와 크기를 다시 전자저울로 정확하게 잰 다음 크기별로 나누어 진공포장한다. 간고등어 한 마리에 들어가는 정성과 손길이 의외로 대단하다.

    현재 (주)안동간고등어는 공장만 3곳을 가지고 있다. 직원수도 120여 명에 이른다. 2001년부터 해외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린 끝에 지난해 미국, 일본 등지로 13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처럼 급성장한 안동 간고등어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안동 최고 연봉의 직원들

    (주)안동간고등어에서 근무하는 ‘아지매’들의 기본급도 월 150만~200만원으로 안동 지역의 제조업체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안동 간고등어가 유명해지면서 간고등어 제조업체가 난립하는 문제도 생겨났다. 안동에만도 후발업체가 10여 개가 생겨났고,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안동시는 만일 간고등어의 품질과 위생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안동 간고등어 전체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판단해 ‘안동시 지정 특산품 공동브랜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안동시 지정 특산품’ 로고를 부착한 간고등어 상품은 그 품질을 안동시가 보증한다는 의미인데, 현재 이 로고를 사용 중인 간고등어 제조업체는 (주)안동간고등어를 비롯해 모두 4곳이다.

    이제 안동 간고등어는 전국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그래도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안동에서 먹는 간고등어의 맛은 여전히 각별하다. 안동 땅을 찾거나, 또는 지나갈 때에 일부러라도 챙겨 먹을 별미가 하나 더 늘었다. 이래저래 안동 가는 길은 눈보다 입이 먼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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