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에는 독특한 것 이 참으로 많다. 지형이나 기후 등 자연환경뿐 아니라 자생식물까지 한반도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많다. 자연환경이 다르다보니 그곳만의 별미 또한 다양하다. ‘울릉오미(五味)’
- 가운데 첫손 꼽히는 울릉약소의 독톡한 맛과 매력을 살펴봤다.
사진·울릉군청
하지만 막상 그곳을 떠나온 뒤에는 고생스럽던 기억조차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그뿐만 아니라 열병 같은 그리움마저 시시때때로 밀려든다. 인정 넘치는 사람과 때묻지 않은 자연도 그립고, 육지에서는 좀체 맛보기 어려운 울릉도의 별미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결국 사무치는 그리움이 병에 이를 지경이면 다시 그 섬을 찾는다. 그렇게 반복된 나의 울릉도 여행이 어느덧 일곱 번째가 됐다.
울릉도를 다녀온 관광객의 상당수는 “먹을 만한 게 별로 없다”는 불평을 쏟아놓는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울릉도를 돌아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는 한 끼니의 식사에서 단돈 100원이라도 줄여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머리를 짜내게 마련이다. 그래서 특정 음식점과 미리 계약을 맺게 되고, 관광객들은 여행사가 지정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여행사는 경비에 맞춰 음식값을 낮추려면 아무래도 손님이 적게 드는 음식점과 계약을 하게 되고, 음식점은 재료와 밑반찬을 하나라도 줄여서 내놓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여러 끼니를 계속 먹다보면 십중팔구 물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맛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제한적인 사람들의 입에서는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이 쏟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음식에 대한 평가만큼 주관적인 것도 없다. 그래서 단정지어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험으로만 보자면, 울릉도의 음식은 썩 괜찮은 편이다. 대체로 소박하고 서민적인 음식이 많은데 토박이들이 즐겨 먹는 향토음식에는 맨손으로 험준한 자연과 맞서 삶터를 일군 울릉도 개척민들의 근면성과 검약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울릉도의 향토음식 중에 호사스럽거나 기름지거나 장식이 많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재료의 고유한 맛과 신선함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식이 대부분이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별미로는 흔히 울릉약소, 홍합밥, 산채비빔밥, 오징어, 호박엿 다섯 가지가 손꼽힌다. 흔히 ‘울릉오미(鬱陵五味)’라 불리는 이 별미 가운데서도 첫손가락에 꼽는 것이 바로 울릉약소(藥牛)다.
울릉약소의 시조는 1883년에 첫 개척민과 함께 울릉도에 들어온 암수 1쌍이다. 그 뒤로 1892년 6월에 울릉도 주민 몇몇이 경북 울진으로 건너가 콩 30섬을 주고 암컷 3마리, 수컷 2마리의 송아지를 들여오기도 했다. 이후 울릉도 소의 사육두수는 크게 늘었다. 1960년대에는 매년 100∼200마리의 울릉도 소가 육지로 반출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포항 우시장은 울릉약소를 구입하러 온 상인들로 북적거렸고, 육지의 소보다 훨씬 높은 값에 거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울릉약소의 사육두수는 650마리에 불과해 자체 수요를 충당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농사 안 지으니 짚 구하기도 어려워
울릉약소는 주로 산채와 약초를 먹고 자란다. 그것이 볏짚과 배합사료를 섞어 먹이거나 아예 배합사료만으로 사육된 육지 소와 울릉약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울릉도에서 배합사료나 짚을 먹여서 소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육지에서 한 포대에 5400원 하는 사료가 여기 들어오면 거의 1만원에 팔려요. 운송비가 사료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죠. 또 육지에서는 짚을 잘게 썰어서 소여물로 쓰지 않습니까? 그러나 울릉도에서는 논농사를 거의 짓지 않기 때문에 짚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짚을 먹이려면 육지에서 싣고 와야 되니까 풀을 많이 먹일 수밖에 없죠. 보시다시피 소 먹일 풀이 사방에 널렸잖아요. 요즘에는 빈 밭이 많아서 옥수수를 심어서 저장했다가 겨울철에 먹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사료는 조금씩 줘야 됩니다. 풀만 먹이면 육질이 너무 질겨지거든요.”
울릉군 북면 현포리 평리마을에서 약소 20여 마리를 키우는 안성덕(51)씨의 말이다.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는 지역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강수량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 기후특성으로 인해 섬바디, 부지깽이, 미역취, 전호, 독활, 산딸기, 보리수, 송악, 엉겅퀴, 호장근 등 목초(牧草)로서 활용가치가 높은 자생식물이 많다. 그 종류만도 무려 570여 종에 이르며, 자생식물은 대부분 산채나 약초로 쓰인다.
그중 전호는 천식과 거담의 치료와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독활은 근육과 관절의 무기력증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복분자’라고도 하는 산딸기는 신장기능과 허약체질의 개선뿐만 아니라 간기능의 활성화를 돕는다. 주로 봄철에 약소의 먹이가 되는 미역취는 황달이나 각종 염증의 치료와 이뇨작용을 돕는다. 그리고 한겨울에도 푸른 상록활엽수인 보리수와 송악이 많아서 소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보리수는 장염과 결석의 치료제로 쓰이며, 송악은 간염이나 고혈압으로 인한 안면마비증의 치료와 피부조직의 재생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엉겅퀴는 고혈압과 신경통에 효험이 있고, 호장근은 혈액순환의 개선과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약초다. 울릉도의 소는 섬 전역에 지천으로 돋아난 이 약초를 뜯어먹고 자란다. 그러니 고기 자체도 약이나 다름없다고 해서 ‘약소(藥牛)’라는 이름이 붙었다.
울릉도의 여러 약초 가운데서도 소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울릉도의 특산식물인 섬바디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섬바디는 ‘돼지풀’로도 불린다. 위암, 자궁암, 대장암 등의 암세포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약초로도 알려져 있다. 섬바디의 줄기를 쪼개면 우유처럼 하얀 즙이 흘러나오는데, ‘풀에서 나는 우유’라 불리는 이 즙 때문에 소가 유달리 섬바디를 좋아한다.
그래서 한때는 울릉도 최대의 평지인 나리분지를 비롯한 섬 곳곳에 섬바디밭이 조성되기도 했다. 지금도 울릉도 전역의 산비탈과 들에는 섬바디가 흔하게 눈에 띈다. 섬바디가 무성하게 자라는 3∼11월에는 낫 하나만 들고 나서면 금세 한 짐을 베어올 수 있을 정도다.
야생식물을 주사료로
울릉약소 작목반의 박용수(62) 회장에 따르면 울릉약소는 대체로 3단계의 사육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먼저 생후 8개월까지의 초기에는 섬바디 같은 풀을 많이 먹인다. 그리고 소가 뼈를 키우는 시기인 중기에는 배합사료를 먹이되, 그 양은 육지 소의 3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도축하기 6개월 전부터는 섬바디 같은 목초와 사료를 무제한으로 먹여서 살을 찌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사육된 거세(去勢) 수소는 몸무게가 약 700kg, 두 번 이상 출산한 암소는 600kg쯤에 이르면 도축한다.
울릉약소의 가장 큰 특징은 섬 전역에 자생하는 야생식물을 먹여 키운다는 점이지만, 그렇다고 풀만 먹이면 고급육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고급육의 필수조건이랄 수 있는 마블링, 즉 근내 지방층이 생기지 않고 육질도 질겨진다는 것이다.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최상급 고기는 맑은 선홍빛의 근육 속에 눈꽃처럼 하얀 마블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지막 비육(肥肉) 단계에서 곡물사료를 많이 먹여야 한다.
울릉약소의 맛과 품질을 탁월하게 만드는 조건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울릉도의 물이다.
울릉도는 신생대 3기말에서 4기초 사이인 250만년 전쯤에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그래서 섬 전체가 치밀하고 단단한 조면암과 화산쇄설암(火山碎屑岩·화산폭발 당시의 분출물이 퇴적하여 굳어진 암석)으로 뒤덮여 있다. 조면암과 화산쇄설암, 그리고 우리나라 유일의 원시림인 성인봉 일대 천연숲은 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보내는 스펀지 기능을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물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다. 맑고 시원한 물이 늘 흐르는 하천만도 죽암, 태하천, 남양천, 저동천 등을 포함해 10여 곳이나 된다.
단순히 수량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울릉도만큼 물맛이 좋은 곳도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울릉도의 조면암은 제주도의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이면서도 조직이 훨씬 치밀하고 단단해서 땅속으로 흐르는 물을 완벽하게 정화해주는 필터 구실을 한다.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낸 울릉도의 물은 무미, 무색, 무취의 완벽한 천연 미네랄 워터. 그래서 울릉도 주민들은 물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을뿐더러 돈 주고 생수를 사 먹는 일도 거의 없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이구동성으로 울릉도의 물맛을 칭찬한다.
울릉도 최대의 부속섬인 죽도의 섬바디 군락. 섬바디는 울릉약소가 가장 좋아하는 목초다.
박용수 회장의 말이다. 그는 울릉읍 사동리 중령마을에서 약소 70두를 사육할 뿐만 아니라 도동읍내에 약소전문 음식점을 직영한다. 물론 직영음식점의 쇠고기는 그의 농장에서 사육한 것만 내놓는다고 한다.
불판에 닿자마자 집어먹어야
울릉약소는 근육질의 붉은빛이 육지의 쇠고기보다 선명하고 지방질의 빛깔은 약간 누렇다. 그리고 약 특유의 향기와 맛이 배어 있어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또한 배합사료로 기른 육지의 소와는 달리 육질이 비교적 질긴 편이다. 옛날 시골에서 풀과 여물만 먹여 키운 토종한우와 아주 흡사한 육질과 맛을 지녔다. 그래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고기 맛’에만 익숙한 육지 관광객 중에는 울릉약소가 “그저 그렇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도동 읍내의 한 약소전문식당에서 만난 관광객 임인학(45)씨도 “울릉약소가 하도 맛있다기에 큰맘 먹고 먹어봤는데, 솔직히 육지 쇠고기와 별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면서 “육질만 따지자면 오히려 육지의 부드러운 쇠고기가 내 입맛에는 더 잘 맞는다”고 했다. 반면 동석한 이혜숙(43)씨는 “좀 질기긴 하지만 씹을수록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고기 속에 은은하게 배어 있는 약초 향기가 참 좋다”면서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쯤 맛보기를 권하고 싶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울릉약소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을 따라야 한다. 약소는 고기 맛을 돋우기 위해 양념이나 숙성을 하지 않는다. 갓 잡아 신선한 생고기이기 때문에 얇게 썰어서 살짝 익혀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육회로 먹어도 좋을 만큼 신선해서 오래 구우면 오히려 고기가 단단하고 푸석해진다. 불판에 닿자마자 바로 집어먹는 게 좋다.
육질이 고들고들하고 쫄깃한 약소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지며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 성미 급한 사람은 울릉약소의 진미를 맛보기 어렵다. 마치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천천히 쇠고기를 씹어 삼켜야 약소 특유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약소 고기는 상추나 깻잎에 쌈장을 넣고 싸 먹는 것보다도, 소금물에 절인 뒤 설탕과 식초로 양념한 명이(산마늘)절임에다 싸 먹어야 더 맛이 좋다. 명이절임은 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을 없애주고 입 안의 잡냄새를 씻어준다. 그래서 아무리 고기를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물론 울릉약소가 울릉도라는 작은 섬을 뛰어넘어 전국적인 특산물이자 별미로 발전하려면 먼저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약소 사육농민들은 무엇보다 사육두수를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울릉도에서만 한 해에 필요한 쇠고기의 양이 약 300두에 이르는데, 현재의 650두로는 그 절반밖에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육지에서 사육된 소가 대량으로 반입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육지 소와 울릉약소가 뒤섞인 채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울릉군청에서 지정한 ‘울릉약소 전문판매점(식육점)’에서는 약소만 팔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행정기관에서도 시행 여부를 철저히 감독한다. 하지만 울릉약소를 판다는 음식점 가운데 상당수가 육지 소를 약소로 둔갑시켜 파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고기값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육지 소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사육한 울릉약소의 고기값이 특별히 나을 게 없는 현실에서는 약소를 사육하려는 농가 또한 많을 턱이 없다.
북면에서 만난 한 울릉약소 사육 농민은 “최소한 군 차원의 약소 직판장이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없다”면서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책이 미흡한 점을 아쉬워했다. 울릉군청 축산담당자의 말로는, 올해 안에 울릉도 사동리의 도축장 부근에 울릉약소 직판장을 착공해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약소 사육농민들은 무엇보다도 사육두수를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울릉약소는 육지의 쇠고기에 비해 근육질의 붉은빛이 선명하고 지방질의 빛깔은 약간 누렇다.
“약소의 정확한 성분 및 효능 분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본초도감’을 비롯한 각종 한약서에 나타난 울릉도 자생 초목의 효능으로 미뤄 이를 먹고 자란 약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 볼 뿐이다. 다만 울릉도 토양의 유기물 함유량이 3.0∼4.1%로 육지(2.0∼2.5%)보다 월등해 울릉도의 야생초가 타 지역보다 높은 영양가와 약효가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결국 오랜 전통과 주관적인 미각만을 막연히 내세워 “울릉약소는 그 자체가 약이 된다”고 강변하고 있는 셈이다.
브랜드 가치 높여야
등급별 판정제도와 울릉약소의 표준화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등급별 판정이 이뤄지지 않으니, 사육농가로서는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더 좋은 고기를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소의 사육방법도 농가마다 달라서 약소의 품질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사육방법과 프로그램에 따라 균일한 품질의 고기가 생산돼야 울릉약소의 브랜드 가치와 소비자의 신뢰도 함께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울릉약소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울릉약소의 품질에 대한 사육농가의 긍지와 사명감이 대단하다. 자치단체에서도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보완할 점이 적지 않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울릉약소의 독특한 맛을 전국 어디서나 쉽게 느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