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가장 공감 간 소설은 ‘대외활동의 신’이었다. 나 또한 취업 준비를 하면서 대외활동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주변에서는 ‘취업 공부나 하지 무슨 대외활동’이냐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대외활동을 한 이유는 ‘재밌어서’였다. 취준생이라고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소설 속에서 면접관들은 주인공에게 ‘왜 이렇게 대외활동을 많이 했나. 취업을 위해서인가’라는 취지로 묻는다. 그런데 취업과 관련이 있건 말건 대체 무슨 상관이람. 나도 언젠가 면접 질문에 분노를 느낀 적이 있다. 당시 면접관은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고 물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번 다른 상황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물에 불이 날 수도 있고 누군가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다. 면접관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들 역시 제대로 답변 못 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그런 질문을 하는 면접관들은 정말 면접에 대한 준비를 안 하고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외활동의 신’이 더 공감 간 이유는 지금의 사회 상황을 떠올리게 해서다. 신은 계속 취직에 실패하다가 면접장에서 우연히 국토대장정 때 인연을 맺은 과장님을 조우한다. 그리고 그 면접에서 합격해 취직한다. 명확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아마 과장이 면접에 어느 정도 개입한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치열하게 스펙 쌓고 대외활동 아무리 해봐야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이러니 소설이 아닌 뉴스를 떠올린 것이다. 잘난 부모 만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덜 노력해도 명문고, 명문대, 유학까지 일사천리다. 권력 가진 부모만 있으면 채용 과정에서 프리패스가 가능하다.
한편으로 누가 ‘산 자’고 누가 ‘죽은 자’인지 모르겠다. 파업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노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대로 고충이 있다. 철거민도, 용역업체 직원도, 학교 비리를 알리려는 학생도, 아빠가 학교 교사라 친구들과 대척점에 서야 하는 학생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이다. 이들 모두 ‘죽은 자’일지도 모른다. 진짜 ‘산 자’는 학교 재단이나 철거를 지시하는 높은 사람들, 대기업 간부일 수도 있다. 혹은 그들마저 ‘죽은 자’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곳은 ‘죽은 자들의 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