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외무고시 10회에 합격한 이후 초기에 러시아에서 근무했다. 1985년부터는 2년간 런던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정치학을 공부했고, ‘격동하는 러시아 정치’란 책을 펴냈다. 이후 1997년 미국 대사관 참사관을 시작으로 외교부 북미국 심의관 및 북미국장 등을 거치며 대미 외교 경험을 쌓았다.
2005년 외교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2006년부터 차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주오스트리아 대사 겸 주빈국제기구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지만 오스트리아에는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 본부가 소재하고 있어 2차관이 맡는 다자(多者)외교 업무 수행에 적임자란 평가를 받아 낙점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내에서는 자원외교의 ‘개척자’로 통한다.
2002년 8월 자원이 풍부한 주우즈베키스탄 대사로 부임한 뒤 틈날 때마다 광산(탄광)을 시찰했다고 한다. 우즈벡은 금 매장량 세계 5위, 우라늄 매장량은 세계 8위. 호감을 느낀 우즈벡 지질위원회는 김 차관을 통해 한국에 금과 우라늄 채굴권을 제안했고, 김 차관은 이를 한국광업진흥공사와 연결시켰다.
이러한 양국 간 자원협력 분위기는 우즈벡이 개방한 11개의 천연가스전 중 우리나라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4개 가스전의 지분 및 탐사권을 따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후문. EDCF(대외경제협력기금)을 활용해 우즈벡에 부족한 교육 기자재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우즈벡을 떠날 때 우즈벡 수교훈장 대장을 받았다.
부드럽고 조용한 성품으로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선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주요 보직 인사 때 경합자에게 자리를 양보한 적도 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유비’. 하지만 업무에서는 강단이 있고 통찰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최근 2, 3년 동안엔 인사 때마다 차관 물망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취미는 오페라와 고전음악 감상. 김 차관은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이던 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대사로 부임했고, 대사관저가 베토벤이 교향곡 ‘전원’을 작곡한 곳 부근에 있어 자연스럽게 음악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음악도들이 서양 음악의 본고장인 빈에서 예술적 기량을 펼칠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1999년 반기문 당시 주오스트리아대사(현 유엔 사무총장)가 설립한 첫 해외 상주 다국적 오케스트라인 한-오 오케스트라 활동을 활성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레와 와인에도 조예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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