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에서는 대표적인 ‘일본통’. 일본어에 능통해 정부 고위층 일본어 통역을 담당했다. 일본에서 두 차례 근무했고, 외교부에서도 동북아1과장(일본 담당), 아시아·태평양국장, 동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일본 외무성 관료들은 물론, 중·참의원, 언론인 등 여러 분야에 지인이 많다.
이런 이유로 이명박 대통령이 천명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 실무자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또 김병국 대통령외교안보수석, 유명환 외교부 장관, 김태효 대통령외교전략비서관이 모두 대미 외교 전문가여서 일본, 중국을 두루 잘 아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고려됐다고 한다.
일복이 많다는 평을 듣는다.
1995년 주미대사관 1등서기관 시절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 협의체 구성과 개최 문제를 담당했다.
2001년 외교부 동북아1과장 시절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왜곡 교과서 파문, 쿠릴 열도 꽁치조업을 둘러싼 꽁치 파동 등이 잇따라 터졌고, 한일관계가 위기를 맞으면서 타결책 마련에 동분서주했다.
2007년 7월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 시절엔 아프간 피랍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인질 석방의 막후 협상을 지휘하면서 두 달 가까이 피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업무 처리는 치밀하며, 인화와 의리를 가장 중요시한다. 동북아1과장 시절 거의 매일 야근을 하게 되자 간단한 저녁식사 후 당구 한 게임을 함께 하며 후배들을 다독인 일화는 유명하다. 한 외교관 후배는 “후배들이 믿고 따르는 선배”라고 평했다.
상대방을 설득해 타협을 이끌어내는 조정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외교부 농구부 주전 선수로 탁구, 골프, 축구 등 공과 관련된 스포츠에는 모두 강하다고 한다. 별명은 올 라운드 플레이어란 의미에서 ‘날쌘돌이’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에서 ‘의리의 사나이’. 영화와 음악 감상이 취미지만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영화관이나 음악회에 자주 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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