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KDI의 경비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다. 밤늦게 퇴근하고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게 몸에 뱄기 때문이다. 한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하기도 했다. 현관 문을 열어주느라 잠을 설친 경비원들이 항의성 불평을 터뜨리자 창문을 잠그지 않고 퇴근했다가 현관 대신 창문으로 들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구활동에 열정적이다.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다.
그는 금융 분야 전문가다. 부실 은행 처리 방안, 금융과 산업의 분리 등의 사안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나름의 해법을 갖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그가 대통령실에서 금융 분야를 맡았으니 그의 연구보고서가 정책으로 반영될 것이라 예상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을 주장하는 백면서생은 아니다. 경기고 71회 동기생으로 재정 금융 정책에서 핵심 역할을 한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 조원동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김대기 통계청장 등 정통파 경제관료들과 지속적으로 교유해 정책 수립 감각을 익혔다.
그의 부친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명 비서실장으로 이름을 날린 김정렴 전 재무부 장관. 관 주도 성장시대에 핵심 아이디어맨이던 엄친에게서 청년 시절부터 정책 운용에 관한 체험을 전수받았다. 친형인 김두경 은행연합회 상무가 한국은행에 재직할 때 형제끼리 금융 정책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가족 모임에서도 한 수 배울 기회를 자주 가졌던 것. 그는 겸손을 강조하는 가풍(家風)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대인관계에서 소극적인 성격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들 형제는 수치 감각이 발달했다. 김 비서관은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했다. 형인 김두경 상무는 서울대 공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했다.
김 비서관은 업무에 몰두해 쌓인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푼다. KDI에 록밴드를 만드는 산파 역을 맡을 정도로 음악 전반에 대해 조예가 깊다. 평소 점잖게 보이지만 무대에 올라서면 기타를 치며 정열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로커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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