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석에서 “전공은 자성 반도체, 부전공은 산학협력”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로 산학협력에 관심이 많다. 박사학위 취득 후 6년간 MIT 연구원을 지내면서 미국 자성 센서 개발업체인 ‘센서메틱 일레트로닉스’의 수석 엔지니어로 활동한 이력이 자연스럽게 ‘부전공’을 낳았다.
1997년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로 부임한 후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쳐 정부로부터 연구개발 유공자 표창(2004), 산업기술진흥 유공자 표창(2005) 등을 받았다. 한편으로 국내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신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뛰어다니는 열성을 보였다. 산업자원부 대학산업기술지원단 단장, 중소기업청 산학연 컨소시엄 및 기술혁신개발사업 심의위원, 교육인적자원부 이공계 대학연구소 활성화대책 기획단 실무작업 위원, 보건복지부 10대 질병관리 메디클러스터 기획위원장, 과학기술부 병역제도 개선 TF 기획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정부 내 여러 부처의 정책 수립 과정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2006년 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았을 때 흔히 교수들이 외국을 방문해 ‘쉬는’ 것과 달리 한국산업기술재단에 아예 자리를 마련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된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총 40조원에 달한 데 비해 국민이 인지할 만한 실용적 성과가 없었다는 것.
2007년 3월 한나라당 박근혜 캠프에 합류, 직능총괄본부 과학기술단 부단장을 맡으면서 정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학과 선배인 서상기(徐相箕)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권유가 계기였다. 이후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을 때는 이 후보 측 캠프의 이주호 국회의원이 합류를 권했다. 이 의원의 개인 연구모임인 ‘대학강국 포럼’에 참여해 평소 알던 사이였다. 처음에는 박 후보와의 ‘의리’ 때문에 망설였지만 박 후보가 “나와의 인연에 연연하지 말고 한나라당을 위해 뛰어달라”며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2008년 1월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에서 상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분과 간사는 이주호 의원.
기존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국내 과학기술계가 정치적, 경제적 마인드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한다. 교육계나 여성계 등에 비해 부처 통합에 대한 결집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그간 과학기술부 체제에서 이뤄낸 연구개발의 성과를 실용적 관점에서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
김도연(金道然)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는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다. 김 장관이 서울대 공대 선배(재료공학과·1974년 졸업)여서 각자 교수로 재직할 때 각종 사안에 대해 편하게 의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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