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아, 옛날이여~!’무릎 꿇은 일본 전자 제왕들

  • 류현정 / IT칼럼니스트·dreamshot007@gmail.com

    입력2009-12-09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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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옛날이여~!’무릎 꿇은 일본 전자 제왕들
    전자대국 일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난 3분기 소니·히타치·파나소닉·도시바·후지쓰·NEC·미쓰비시전기·샤프·산요 등 일본 9대 전자업체의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 이익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조2300억원인 데 비해, 일본 9개 전자업체 영업이익의 합은 2조원이 못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은 패배 요인을 분석한 기사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워크맨’은 옛 영광을 상징하는 골동품일 뿐 현재 TV, 휴대전화 등 주요 제품군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일본 전자제품은 전무하다.

    일본 전자업체의 위기가 갑자기 온 것은 아니다. 최근 엔화 상승으로 일본 기업들이 고역을 치른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전자업체의 위기는 월가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본질적으로 관련 없다. 오랜 경쟁력 약화가 위기의 순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룰(rule)’도 바뀐다. 일본 기업들의 위기는 바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가는 대전환에서 시작됐다. 대전환기 적응에 실패한 것이 일본 기업이요, 기회를 잡은 것이 한국 기업들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기술이 빠르게 진화한다. 일본 전자기업의 백화점식 운영 방식은 변화에 느렸고 시장 선점에 번번이 실패했다. 파나소닉은 PDP TV부터 이어폰, 코털깎이까지 판다. 일본 기업들은 가장 싼 부품을 조달해 새로운 상품을 신속히 내놓기보다는 자사 부품을 쓰는 것을 고집하는 일도 잦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 기업들이 수출 전략을 제대로 외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이라는 점이다. 삼성과 LG가 인도, 러시아 등 이른바 ‘신성장시장(emerging market)’에 일찌감치 진출한 것과 대조된다. 1억4000만명이라는 탄탄한 내수시장을 보유한 일본 기업들은 눈앞의 시장을 잡는 데 더 골몰했다.

    특히 일본은 방송, 통신, 파일 형식 등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는 독자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해 ‘갈라파고스 군도’라는 우스갯소리도 듣는다. 일본의 독자 기술과 서비스는 내수시장을 지키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에서는 고립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고 보면 ‘올해 처음으로 무역 흑자 규모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다’는 소식이나 ‘일본의 10년 장기 불황이 20년 장기 불황이 되고 있다’는 우려, 심지어 ‘일본이 5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는 빅뉴스에 이르기까지 ‘전자 대국’ 일본의 위상 추락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한국 전자업체가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이상 일본 기업들은 미국, 중국 기업과의 합종연횡과 제휴를 통한 공세에 나서고 특허권 소송과 같은 강펀치도 날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을 모방하는 ‘캐치업(catch-up·따라가기)’ 전략으로 선두에 오른 한국 기업들은 이제 누구도 걷지 않는 길을 개척해야 하는 숙명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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