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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로 치닫는 미국 중국 대만의 불안한 삼각관계

미 하원 통과한 ‘대만안보강화법안’ 파장

위기로 치닫는 미국 중국 대만의 불안한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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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아시아 패권과 세계 패권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대만해협에서 1996년에 이어 또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미 하원이 대만안보강화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팽팽해진 미·중·대만의 트라이앵글은 어떻게 조율될까.》
1971년 7월. 대만 장개석 총통을 만난 단 캔달 펩시콜라 회장은 백악관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옛 친구를 잊지는 않겠습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극비리에 베이징으로 보내면서, 또 한 사람의 밀사를 대만에 파견한 것이다. 닉슨이 ‘죽의 장막’을 걷어내면서 마음에 걸렸던 것 중 하나는 부통령 시절부터 쌓아온 장개석 총통과의 친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언질을 전한 이듬해 닉슨은 직접 베이징을 방문했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정식 수교하면서 대만을 저버렸다. 그러나 미 의회는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수 있는 ‘대만관계법’을 제정하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중국, 미국, 대만의 비정한 삼각관계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2월1일 미 하원에서 가결된 ‘대만안보강화법’은 대만관계법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안보강화법의 하원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대만은 즉각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중국 주권에 대한 침략이자 내정간섭”이라며 대만안보강화법안이 ‘법’이 된다면 미·중관계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엄포성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의 ‘양국론’ 발언으로 긴장되기 시작한 대만해협은,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 날아든 대만안보강화법안 파문으로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리덩후이 총통의 양국론 발언 이후 중국에서는 대만 ‘통합(해방)’의 가장 큰 걸림돌로 미국을 지목하고 있다. 미·중 수교 논의단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상당 부분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에서 비롯된다.

1979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중국과의 막후 교섭에서 미·대만 간에 이미 체결된 무기거래는 이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로 중국 수뇌부를 설득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16자 방침’(신뢰를 증진하고 귀찮은 것을 감소하며, 합작을 증진하고 대립을 피한다)에 의거해 미국과 대만 간의 무기거래와 안보공조는 ‘세상이 다 아는 비밀’로 덮어둔 채 미국의 손을 잡았다. 승산 없는 대결보다는 실용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대만관계법은 중국의 묵시적인 합의 아래 탄생하게 됐다. 대만관계법은 대만의 합법적인 방위욕구 충족과 대만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적으로 제정됐으며,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조달하고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1999년 미 의회는 대만관계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대만관계법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했다. 99년 3월부터 무르익은 ‘대만 담론’은 5월18일 텍사스주 하원의원인 톰 드레이가 대만안보강화법안을 제출하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하원을 통과한 대만안보강화법안은 총 6조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제2조 ‘사실 인정’에서는 대만이 처한 현실과 법률 제정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내용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대만안보강화법안의 향방

첫째, 대만은 1949년 이후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민주주의 국가, 시장경제 국가로서 중국과는 차별된다.

둘째, 중국의 군 현대화작업과 1996년 대만해협 사태 등 무력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만이 미국의 협조로 자체 방위를 도모하는 것은 아태지역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 미국이 대만의 자유와 안전을 돕고, 국익을 위해 대만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당위를 명확히 하고, 중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제3조에서 6조까지는 구체적인 실행내용이 담겨 있다. ▲ 대만 군사장교들의 미국군사학교 파견 훈련 ▲ 대만의 요청에 따른 무기판매 ▲ 미국정부와 대만군의 직접적인 통신체계 수립 ▲ 미 국방부의 대만 안보사항 연차보고서 작성 등이다. 미·대만 간 원활한 인적 교류와 통신체계, 대만안보보고서까지 작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적어도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미국과 대만은 한 식구나 다름없게 된다.

당초 법안 초안에는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디젤잠수함, 정밀 위성기술 등을 포함한 첨단무기 공급에 대한 군사유대 강화 항목이 있었으나 심의과정에 민감한 사안들이 삭제됐다.

현재 대만안보강화법안은 하원 내에서 모든 입법절차를 마친 상태다. 1999년 9월9일 아시아·태평양 분과위원회를 거쳐 9월15일에 청문회를 열었고, 10월26일 외교위원회에 상정돼 32 대 6으로 통과됐으며, 2000년 2월1일 하원 본회의에서 341 대 70이라는 압도적 차로 통과됐다.

클린턴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수의 민주당의원들이 법안을 지지한 것은 대만 정부의 막강한 로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미 법무부에 등록된 대만의 공식 로비단체는 28개로 우리 나라의 두 배에 가깝다.

대만은 대외관계가 극도로 위축됐던 1980년대 중반부터 국가 로비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미 의회 상·하원의원들은 물론 실무 보좌진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로비를 시도했다. 1995년 리덩후이 총통의 미국 방문이 미 행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원 표결 결과 390 대 0으로, 상원에서도 97 대 1로 통과한 것은 대만 로비의 저력을 과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노력 덕분에 미 의회 내에서 대만 정서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대만안보강화법안은 앞으로 상원 본회의 표결과 대통령 비준을 거쳐야 한다. 법안에 대한 파문이 확산되자 상원은 본회의 표결을 대만 총통선거 이후로 미루면서 시간을 지연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클린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입법을 거부할 경우 무효처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기를 앞두고 법안의 후속절차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만안보강화법안은 언뜻 대만과 미국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과 중국 간의 문제다. 과거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지금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대만을 감싸 안고 있다. 그렇다면 대만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미국의 본심은 무엇인가.

“문제는 중국의 확장주의”

필자는 최근 미국에서 주한·주중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제임스 릴리를 만나 미·중 관계와 대만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릴리는 현재 공화당의 싱크탱크인 AEI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의회 청문회의 단골증인으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릴리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이렇게 정리했다.

“미국의 대중국정책을 아주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경제적으로는 협력, 군사적으로는 봉쇄’다. 경제문제에서 참여 전략을 쓰는 이유는 경제야말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이 대만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중국을 개방하고 미국과 함께 일하고 협조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중요하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중국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 대만, 베트남, 러시아, 인도, 필리핀 등과의 국경에 관한 문제다. 중국은 최첨단 무기 개발에 정열을 기울이고 있으며 중국의 주권을 일본, 대만, 남중국해 영역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중국이 목적 달성을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면 서방세력과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미국은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국경을 확장할 경우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문제와 군사문제는 결국은 하나로 연결된다.”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낸 릴리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워싱턴에서 ‘중국통’으로 통한다. 릴리의 지적에서 ‘중국과 대만의 WTO 동시 가입’과 ‘무력을 사용한 국경 확장 불허’ 대목을 대만안보강화법안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대만은 10여년 동안 WTO 가입을 추진해왔다. WTO 주요 회원국의 동의까지 받아 놓았지만 중국의 가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다려 왔다. 지난 연말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했다. 그동안 대만은 중국으로 인해 UN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불이익을 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만이 미국의 일곱번째로 큰 해외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WTO에서는 대만문제를 중국과 함께 매듭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중국원칙과는 상반되지만, 대만의 상징적 가치와 중요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하원이 법안 내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국가로서 대만의 평화를 유난히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군사적으로는 법안을 통해 중국이 무력을 이용하여 지역패권이나 세계패권 장악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조지 부시 2세 대선캠프의 외교팀장인 콘돌리사 라이스가 ‘포린 어페어즈’ 최근호에 기고한 내용은 법안을 입안한 공화계 의원들의 중국관과 군사적 대응의지를 짐작케 한다. 중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대만과 남중국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이 지닌 아태지역 영향력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현상유지보다는 스스로 아시아 힘의 균형을 잡기 원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쟁자다. 클린턴 행정부가 명명했던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중국은 이란과 파키스탄과 함께 탄도미사일 기술 확산에 협력한 전력이 있으며 안보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핵폭탄 기밀을 훔치거나 대만을 협박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조절하는 수위가 좌우된다. (…중략…) 우리는 미국의 이익과 중국의 이익이 충돌할 때 베이징과 대결하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즉, 미국은 ‘하나의 중국정책’과는 별개로 대만문제를 국제적 성격으로 다루고 있다. 대만·중국 문제의 본질은 대만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확장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미국은 대만·중국의 전쟁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대만 공격에 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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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세종대 부총장·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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