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 720년 일본 왕실에서 편찬한 ‘일본서기’의 신의시대 편(神代·上) 제8단의 역사기록에 이런 글이 나온다(괄호 안은 옮긴이 해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그의 아들인 ‘이타케루’신을 거느리고 ‘다카마가하라(高天原·하늘나라 벌판)’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살았다. 그곳은 신라국의 ‘소시모리(牛頭·소의 머리)’였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소시모리에서 다시 바다(동해)를 건너 왜나라 ‘이즈모국(出雲國·현재 일본 시마네현의 바닷가 지역)’으로 왔다. 이즈모국에서 스사노오노미코토는 머리가 8개 달린 큰 뱀(야마타노오로치)을 ‘가라사비(韓鋤·한국 삽)’로 쳐서 물리쳤다.”
여기서 신라국 소시모리라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총독부는 강원도 춘천을 스사노오노미코토의 강림지(降臨地)인 소시모리로 정하고, 그곳에 신사를 세우려 했으나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실현하지 못했다.
일본 사학계에서는 춘천이 소시모리이자, ‘기원신(祇園神)’인 ‘우두천왕(牛頭天王)’의 연고지라는 학설이 대세를 이룬다. 또 ‘소도(蘇塗)’는 솟대라는 기둥을 세워 제사를 지낸 터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소’는 고대 한국어의 ‘소우(牛)자’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필자는 2004년 강원도 춘천을 찾았다. 이 지역은 6~7세기경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의 영토로 복속됐다. 춘천에는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부르는 나지막한 산이 있다. 산꼭대기가 자그마한 만두를 올려놓은 듯한 분구형인데, ‘소의 머리’를 닮아서 ‘우두산(牛頭山)’ 또는 ‘우수산(牛首山)’으로 불린다고 한다.
춘천에 ‘맥국’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온 것일까. 이와 관련해 ‘일본서기’에는 “사이메이 천황 2년(서기 656년)에 고구려 사신인 ‘이리지(伊利之)’ 등 81명이 일본 왕실로 건너왔다”는 글이 있고, 서기 815년에 역시 일본 왕실이 편찬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산성국제번(山城國諸藩)에는 “야사카노미 야쓰코(八坂造)는 맥국 사람(貊國人) 이리좌(之留田麻之意利佐)의 후손이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야사카 신사가 사이메이 천황 2년에 세워졌다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야사카 가문의 조상 ‘이리좌’는 일본서기의 고구려 사신 ‘이리지’와 같은 인물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사실 필자는 그동안 야사카 가문이 고구려인의 피를 이어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내심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을 방문해 한국 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됐다. 그 옛날 춘천 지역에 맥국(貊國·예맥)이라는 자그마한 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고구려의 남하에 의해 이 지역에 살던 맥국인이 일본으로 망명해 왔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