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의 할머니 세라 아냥고 오바마(86). 케냐에 있는 그녀의 집은 미 대선에 출마한 손자 버락 오바마 덕에 요즘 문전성시다.
그러나 양피지에 적힌 단어만으로는, 노예를 해방하고 피부색과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남녀에게 미국시민의 완전한 권리와 의무를 제공하는 데 충분치 않았을 겁니다. 필요한 것은 바로, 기꺼이 자신의 몫을 다하고자 한 다음 세대의 미국인이었습니다. 거리와 법정에서의 항의와 투쟁, 내전과 시민불복종을 통해 늘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우리의 이상이 약속한 바와 시대적 현실의 격차를 좁히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a civil war: 노예제도를 반대한 북부공화당 링컨 대통령의 당선으로 촉발된 남북전쟁(1861~65년)을 가리킨다. civil disobedience: 1950~70년대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비폭력 흑인인권운동을 주로 지칭한다.)
This was one of the tasks we set forth at the beginning of this campaign - to continue the long march of those who came before us, a march for a more just, more equal, more free, more caring and more prosperous America. I chose to run for the presidency at this moment in history because I believe deeply that we cannot solve the challenges of our time unless we solve them together - unless we perfect our union by understanding that we may have different stories, but we hold common hopes; that we may not look the same and we may not have come from the same place, but we all want to move in the same direction - towards a better future for our children and our grandchildren. This belief comes from my unyielding faith in the decency and generosity of the American people. But it also comes from my own American story.
우리가 선거캠페인 초기에 설정한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의 긴 행진을, 더욱 공정하고 더욱 평등하고 더욱 자유롭고 더욱 잘 보살피며 더욱 번영한 미국을 향한 행진으로 이어가는 것 말입니다. 제가 하필 이 시점에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풀지 않는 한 우리 시대의 과제를 풀 수 없다고 깊게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각기 다른 사연을 가졌지만 희망은 같다는 점, 생김새나 출생지는 달라도 자식과 손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남겨주고 싶어 한다는 점에선 지향하는 바가 같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완벽한 통합을 이뤄내야만 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미국 국민의 품격과 관용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제 자신의 아메리칸 스토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I am the son of a black man from Kenya and a white woman from Kansas. I was raised with the help of a white grandfather who survived a Depression to serve in Patton´s Army during World War II and a white grandmother who worked on a bomber assembly line at Fort Leavenworth while he was overseas. I´ve gone to some of the best schools in America and lived in one of the world´s poorest nations. I am married to a black American who carries within her the blood of slaves and slaveowners - an inheritance we pass on to our two precious daughters. I have brothers, sisters, nieces, nephews, uncles and cousins, of every race and every hue, scattered across three continents, and for as long as I live, I will never forget that in no other country on Earth is my story even possible.
저는 케냐 출신의 흑인남성과 캔자스 출신의 백인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를 키워주신 백인할아버지는 경제공황을 딛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패튼 군단에서 복무했으며, 할아버지가 바다 건너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백인할머니는 포트 리븐워드에 있는 폭격기 제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장 좋다고 손꼽히는 학교를 나왔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산 적도 있습니다. 노예의 피와 노예소유주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흑인 미국여자와 결혼해서 이 혈통을 사랑스러운 두 딸에게도 물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의 제 형제자매와 조카들, 삼촌과 사촌들은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채 3개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는 동안, 지구상 어디에서도 저와 같은 경우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패튼의 기갑군단은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의 로멜 전차군단을 분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바마의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는 오바마가 어릴 적에 이혼했다. 그 후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해 여동생이 태어났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살기도 했다. 어머니는 얼마 후 이 인도네시아인과 헤어졌다. 이런 가족사로 인해 오바마의 친척들이 미국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