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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센카쿠 사태-미·중·일 해양전략 심층 분석

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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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 최강의 해군국은 From the Sea 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이다. 이에 전수방위라는 이름으로 On the Sea 전략을 구사하는 일본이 적극 협조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시기 遠海로 나가자는 To the Sea 전략을 구사했으나 지금은 중국이 월등히 앞서나가고 있다. 미일중 세 나라의 치열한 전략 싸움을 살펴보며 그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국유화에 대항한 중국의 반발이 대단하다. 중국은 댜오위다오 영유권 주장으로 홍콩과 대만의 지지를 끌어내 중화권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했다. 중국에서 일어난 반일 시위는 확실한 차기 주석인 시진핑(習近平)에게 골치 아픈 보시라이(薄熙來)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한국은 일본과 독도 영유권을 놓고 갈등하고 있으니, 중국과 대일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필리핀과는 스카보로(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섬, 베트남 등과는 쯔엉사(난사·南沙)-호앙사(시사·西沙)군도 영유권을 놓고 다투고 있어 과연 중국을 믿어도 될지 의구심이 든다.

2003년 정부는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작은 암초 ‘이어도’근처에 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세웠다. 그때 가만히 있던 중국이 최근 ‘한국이 중국의 EEZ 안에 과학기지를 세웠다’고 비난하며, 이어도 바로 곁의 한 암초를 ‘쑤옌쟈오(蘇巖礁)’로 명명하고 경제주권을 주장했다. 여차하면 이어도 바다에서 한중 EEZ 경계 다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서해 대륙붕 경계 획정 문제도 숨어 있는 한중 갈등의 불씨다.

中, 35년 지나 영유권 주장

인접한 나라는 언제든 영토 문제로 다툴 수 있는 만큼 경계를 확실히 한 후 외교를 맺는 평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은, 1952년부터 갈등을 빚어온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 결론을 내지 않고 국교 등을 회복하는 기본조약을 맺었다. 이후 일본은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은 영유권 확보의 중요 단서가 되는 실효 지배를 이어왔다.



중국과 일본은 1937~1945년 전쟁을 벌였다. 교전국 간 대결은 상호 평화체제로 들어간다는 조약을 맺고 국교를 회복해야 끝이 난다. 중국과 일본은 순서를 바꿨다. 1972년 먼저 국교를 회복하고, 1978년 평화우호조약을 맺은 것. 이때 센카쿠 영유권이 문제가 됐다.

당시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이던 덩샤오핑(鄧小平) 부총리가 “센카쿠 귀속 문제는 다음 세대에 해결을 맡기자”고 함으로써 양국은 쉽게 조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일본이 센카쿠에 대한 실효 지배를 이어간 것인데, 35년이 지나 다음 세대가 등장한 지금 중국은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거세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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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발표한 제1도련과 제2도련

돌이켜보면 1965년과 1978년은 독도와 센카쿠 영유권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 일본과 중국은 그럴듯한 수사(修辭)로 양보해놓고, 왜 지금 와서는 딴소리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해군력 문제가 숨어 있다. 그때는 해군력이 약하거나, 있어도 투사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한번 해볼 만하다’ 는 자신감이 있어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영해기선에서부터 12해리까지인 영해(領海)를 제외한 모든 바다는 공해(公海)다. 배타적경제수역(EEZ)은, 연안국이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에 대해서는 어업권 등 경제권만 갖는다는 뜻이다. 경제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못하니 EEZ도 공해다. 주인 없는 공해를 자기 바다처럼 이용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함정을 위협하는 큰 적은 악천후다. 악천후를 뚫고 나갈 배가 없으면 12해리 영해도 지키기 어렵다. 미국은 어떠한 악천후도 뚫고 나가 작전할 수 있는 함정을 만들었다. 10만t인 니미츠급 항공모함이 대표인데, 미 해군은 이 항모를 12척 갖고 있다. 이 항모는 1개 비행단을 싣고 다니기 때문에 미 해군은 12개 전투비행단을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미 해군 항공 상대는 미 공군뿐”

한국 공군은 12개의 비행단을 갖고 있다. 미 해군 항공 전투기의 평균 전투력은 한국 공군기보다 우수하니 미 해군 항공력은 중견 강국인 한국 공군보다 더 세다고 할 수 있다. “미 해군 항공력을 이길 수 있는 공군은 미국 공군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미 해군력은 막강하다. 미국 해군은 3개 군단 규모의 해병대를 언제라도 상륙시킬 수 있도록 세 개의 상륙준비단을 편성해놓고 있다. 이러한 힘으로 세계 바다를 누비고 있기에 미 해군은 유일무이하게 ‘세계해군’ 칭호를 듣고 있다.

1945년 유럽과 태평양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 때 미국은 지금보다 큰 해군을 갖고 있었다. 일본을 점령해 군정을 펼치게 된 미국은 1946년 1월 최고사령관 지령 677호를 통해 일본의 통치·행정 한계선을 발표했다. 이 선이 독도 동쪽에 그어졌기에, 광복을 한 한국은 바로 독도를 영유할 수 있었다.

1952년 미국 군정에서 벗어난 일본은 ‘그 지령은 임시적인 것’이라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6·25전쟁을 통해 미국과 가까워졌고 공산주의를 막는 최일선 국가가 되었기에 일본은 미국을 거역해가며 한국을 자극할 수 없었다.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하자,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1965년 한국과 기본조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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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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