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지뢰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생명을 잃고, 팔 다리가 잘려나가고, 땅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어요. 나도 앙골라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1997년 6월 한 세미나에서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한 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97년 8월 사망하기 전까지 대인지뢰 매설 금지 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헬멧에 방탄복 차림으로 앙골라의 지뢰 매설 지역에서 다리가 잘린 아이를 끌어안고 안타깝게 바라보던, TV에서 본 다이애나의 눈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지뢰라는 무기가 인류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세계인에게 알렸다.
지뢰는 개당 생산가가 5달러 수준의 싼 무기지만 뿌려진 지뢰 하나를 제거하는 데는 1000달러가 든다. 지금의 지뢰 제거 속도대로라면 지구에 묻힌 지뢰를 모두 치우는 데 1000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단 한 개의 지뢰도 새로 매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그렇다.
지뢰 1000만 개 깔린 아프간
지뢰가 뿌려진 곳은 대부분 전쟁이 벌어졌거나 진행 중인 곳이다. 한국도 지뢰 매설 국가 중 하나다.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베트남에는 국토의 5분의 1이 넘는 지역에 80만t 넘는 지뢰와 불발탄이 남아 있다. 베트남 공병대 최고사령부 판 죽 뚜안 대령은 “베트남 전쟁이 수십 년 전에 끝났는데도 응에안, 하띤을 비롯한 전국 6만6000㎢의 방대한 지역에 엄청난 양의 지뢰와 불발탄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에서 현재까지 10만여 명이 지뢰, 불발탄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했다. 베트남 정부는 지뢰를 제거하고자 수천만 달러의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지뢰와 불발탄의 대부분을 제거하려면 10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캄보디아도 국토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 지뢰가 남아 있으며 라오스 역시 전쟁이 남긴 상처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힌 나라다. 1980년대 옛 소련군이 매설한 지뢰 1000만 개가량이 전국 각지에 깔려 있다. 나라 전체가 지뢰밭인 셈이다. 어디에 얼마나 묻혔는지 안다면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소련군은 퇴각하면서 ‘지뢰밭’의 지도조차 남기지 않았다.
필자가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시작한 2001년부터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한 것이 지뢰밭을 잘 피해가는 일이었다. 길가에 차를 멈추고 잠시 쉴 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뢰가 깔려 있는 곳이 너무나 많아서다.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지뢰가 매설된 지역이 더 많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다리가 하나인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시장을 가든 관공서를 취재하든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사람이 정말로 많다. “아프가니스탄인은 다리가 하나인 사람과 둘인 사람,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는 끔찍한 농담을 하는 이도 있다. 다리가 하나인 사람은 대부분 지뢰를 밟은 이들이다. 이 척박한 나라에서 다리를 잃고 사는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죽지 않더라도 일평생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다. 지뢰는 이렇듯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무기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가량 가면 바그람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도로 가장자리에 흰색 페인트칠을 한 돌과 빨간색 페인트칠을 한 돌이 늘어서 있다. 흰색은 지뢰를 제거해 안전하다는 뜻이고, 빨간색은 아직 지뢰를 제거하지 못했으니 위험하다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처럼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글자로 ‘지뢰가 있으니 위험하다’라고 적은 푯말을 만들어 세워놓은들 사람들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빨간색은 지뢰, 하얀색은 안전이라는 식으로 위험을 알리는 것이다. 2002년 1월 지뢰 매설 여부를 알리는 표시를 촬영하려고 차에서 내렸을 때의 일이다. 외국인이 카메라를 든 모습이 신기했던지 10여 명의 아이가 몰려들었고 현지 통역인은 아이들에게 흰색 돌이 있는 곳에만 발을 디디라고 일러줬다. 갑자기 필자 뒤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놀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흙먼지가 주위를 뒤덮었다. 다섯 살가량 된 아이가 빨간 돌과 흰 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뢰를 밟은 것이다. 아이는 몸이 여러 조각으로 찢겨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민간단체 OMAR를 불러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누구도 죽은 아이 근처로 가지 못했다. 아이를 살피러 가는 사이 또 다른 지뢰가 터질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같은 무게의 돌을 얹거나 뇌관을 제거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혼비백산한 필자와는 달리 아프간 아이들은 무덤덤했다. 지금껏 많이 겪은 사건이어서 공포에 대한 내성이 생긴 모양이다.
어린이 노리는 나비지뢰
1980년부터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한 사람은 10만 명이 넘는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옛 소련군은 항공기를 이용해 수백만 개의 플라스틱 지뢰를 공중에서 살포했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곳곳에 대량으로 투하한 지뢰 중 나비지뢰 (PFM-1, Butterfly Mine)라는 게 있다. 크기나 모양이 꼭 나비 모양 장난감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평야나 밭에 뿌려진 이것이 지뢰인 줄 모르는 아이들이 지금도 해를 입곤 한다. 이 지뢰는 충격을 가하거나 밟아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작거리면 일정 시간이 흐른 후 터지는 방식이다. 장난감이 귀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이들은 나비처럼 생긴 신기한 모양 때문에 호기심에 이 지뢰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이 나비 지뢰는 본래 목적 또한 어린이를 살상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죽여 사람들이 소요하도록 만드는 극도로 비인간적인 살상 및 심리전 무기다. 이 지뢰를 아프가니스탄의 들이나 평야에서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OMAR에서 일하는 샤히르 씨는 “지난 10년간 우리 단체가 제거한 지뢰는 어마어마한 수량이지만 그 정도로는 제거했다는 게 티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지뢰가 뿌려져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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