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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래고도 끈기 있는 ‘사천(四千)정신’ 본고장

浙 - 루쉰과 마윈의 고향

날래고도 끈기 있는 ‘사천(四千)정신’ 본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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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첩하면 끈기가 없고, 끈기가 있으면 둔하기 쉬운데 저장성 사람들은 이 둘을 다 갖췄다. 춘추전국시대 때 ‘오랑캐 중의 오랑캐’로 취급받던 저장성은 수양제 대운하 건설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다. 현재 중국에서 민영기업이 가장 발달한 곳도 저장성이다.
날래고도 끈기 있는 ‘사천(四千)정신’ 본고장
중국에서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곳,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를 찾았다. 중국 관광지가 으레 그렇듯 입구에서 실제 목적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다. 서호 입구에서 한 어르신에게 서호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시계를 보더니 냅다 외쳤다. “뛰어!”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따라 달렸다. 너무 빨리 뛰어서 숨이 턱에 닿았다. 왜소한 어르신이 하도 잘 뛰니 힘들다 할 수도 없었다. 평소의 게으름과 운동 부족을 원망할밖에.

한참 달리다가 너무 힘들어 쫓아가기를 포기하려 할 때, 눈앞에 탁 트인 호수가 펼쳐졌다. 태양이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뇌봉탑(雷峰塔) 저편에 내려앉고 있었다. 서호십경(西湖十景) 중 하나인 뇌봉석조(雷峰夕照)였다.

때는 10월 중순의 오후 5시. 어르신은 해가 지는 때를 알고 있었다. 그냥 어슬렁어슬렁 걷다가는 서호의 노을을 놓치기 십상이라 몸소 뛰어서 서호까지 나를 데려다준 것이다. ‘아름다운 쑤저우(蘇州) 아내를 얻고, 인심 좋은 항저우에서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던가. 이날 함께 여행한 베이징 친구는 항저우에 반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거리는 깨끗하며, 여자들은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절(浙)’은 ‘강 이름 절(浙)’자다. 절강(浙江)은 항저우의 젖줄, 전당강(錢塘江)의 옛 명칭이다. 또한 ‘절(浙)’은 강물[水]이 급하게 꺾여[折] 흐른다는 뜻도 있다. 전당강은 황산(黃山)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흐르다 북동쪽으로 꺾이고 다시 동남쪽으로 꺾이며 바다로 들어간다. ‘갈 지(之)’자로 굽이치는 강은 긴 세월 동안 크나큰 격변을 겪은 저장성의 역사와 닮았다.



피 튀긴 吳越爭패

춘추전국시대에 장쑤(江蘇)성은 오나라였고, 저장성은 월나라였다. 상하이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30분만 가면 장쑤성 쑤저우, 남쪽으로 1시간 반을 달리면 저장성 사오싱(紹興)이다. 오와 월, 두 나라의 수도가 이토록 가까웠다.

그러나 친해지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었다. 오나라의 명신 오자서는 오월이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우리 오나라와 저들 월나라는 서로 원수로 싸울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삼강(三江)이 둘러싸고 있어 백성들은 싸움을 피해 옮길 곳이 없습니다. 하여 오나라가 살면 월나라가 죽을 것이요, 월나라가 살면 오나라는 죽게 되어 있으니 장차 이런 형세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월나라의 재상 범려도 이 점에 동의했다.

“우리와 삼강오호(三江五湖)의 이익을 다투던 자, 바로 오나라가 아닙니까.”

오나라와 월나라가 패권을 놓고 극렬하게 다투니(吳越爭패), 다툼은 미움을 낳고 전쟁은 원한을 낳았다. 땅을 두고 다툰 싸움이 복수를 위한 전쟁으로 변하면서 마침내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었다.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의 기습을 받고 죽었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원수를 갚기 위해 딱딱한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 실력을 키운 끝에 월왕 구천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구천은 쓰디쓴 치욕을 잊지 않겠다며 쓸개를 핥은 지 10여 년 만에 오왕 부차에게 설욕하고 오나라의 뒤를 이어 5번째 패자(覇者)가 되었다. ‘부차는 장작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구천은 쓸개를 핥은 끝에 복수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다.

중국사는 ‘오랑캐’를 중원에 포섭해가는 역사다. 일찍이 문화의 꽃을 피운 중원은 남방의 신흥 강국 초나라를 오랑캐로 보았다. 그러나 초나라에는 사나운 오나라가 오랑캐였고, 중원의 법도를 아는 오나라엔 개념 없는 월나라가 진짜 오랑캐였다.

오의 수도 쑤저우성이 월에 포위된 지 2년째,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의지도 없는 오나라는 월나라에 화친을 청했다. 사실 굶어죽을 지경이니 한 번만 봐달라는 통사정이었다. 춘추시대는 아직 인간미가 있던 시절이라 서로 좋게 전쟁을 끝내는 것이 도리였다. 그러나 월나라의 범려는 화친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말한다.

“우리가 지금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금수나 마찬가지요. 우리가 어찌 중원의 그런 교묘한 말씀을 알아듣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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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서호의 뇌봉탑에 노을이 지는 뇌봉석조(雷峰夕照). 서호십경(西湖十景)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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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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