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한국 농업의 미래, ‘덴마크 모델’에서 찾자

정부는 은행처럼 냉정, 농민은 기업처럼 치밀

  • 김영우 프랑스 파리 9대학 세이연구소 객원연구원 yngkim1@yahoo.com/사진 GAMMA

    입력2005-07-29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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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농업도 이제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곡물형 농업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땅이 좁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낙농업 중심으로 전환, 유럽 최고의 농업강국으로 거듭난 덴마크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 농업의 미래, ‘덴마크 모델’에서 찾자

    덴마크 정부는 농장 소유 규제를 풀어 농업의 대규모화를 유도하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통해 EU 보조금 철폐 이후의 시장환경에도 대비하고 있다.

    지난6월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의 비준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정치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도 정기국회로 넘어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주요국들과 합의한 쌀 협상의 세부내용이 밝혀지자 농민들은 정부가 이면합의를 통해 국민을 기만했다며 분노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사과, 배 등 일부 과수 분야를 양보한 것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일 뿐, 결코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지난해 쌀을 ‘올해의 농산물’로 지정하면서 ‘쌀은 생명(Rice is life)’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쌀 한 톨에도 농부의 땀과 인생이 담겨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명구다. 더구나 우리에게 쌀은 생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쌀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대표적 농산물일 뿐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생활과 문화가 담겨 있는 문화상품이자 문화재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불행하게도 우리 쌀이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개방에 따른 농민의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개방의 물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고민을 안게 됐다.

    이런 면에서 일찍부터 농업선진국으로 알려진 덴마크의 사례가 위기에 빠진 한국농업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덴마크가 오늘날과 같은 농업선진국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이후 덴마크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유럽의 맹주로 군림하던 덴마크는 1864년 프로이센과 벌인 제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그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강대해진 프로이센 제국에 곡창지역인 유틀란트 반도의 3분의 1을 빼앗긴 덴마크는 이후 북유럽의 소국으로 전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의 영국이나 독일, 스웨덴이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던 데 비해 덴마크는 산업발전은커녕 여전히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막대한 전쟁배상금으로 인해 중앙은행이 파산위기에 몰릴 정도로 국가경제는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비탄에 빠진 덴마크 국민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그룬트비(1783~1872) 목사와 달가스(1828~1894) 중령이다.

    그룬트비는 “밖에서 잃은 땅을 안에서 찾아 새로운 덴마크를 건설하자”고 외치면서 황무지로 버려진 미개척 농지를 개발하자고 역설했다. 또한 덴마크의 비참한 현실을 타파하려면 덴마크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룬트비의 사상은 1844년 국민고등학교(Folkehojs kole)가 설립되어 기숙사 공동생활을 통해 애국심에 넘치는 농업후계자를 양성하면서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한편 스위스에 살던 프랑스계 후손 달가스는 황무지 개간을 위해 ‘국토개발협회(DDH·Det Danske Hedesels kab)’를 설립하고 유틀란트 반도의 토양을 연구한 후 알프스 지역의 나무를 이식하여 개간에 박차를 가했다. 그룬트비와 달가스의 활약은 ‘원조 새마을운동’에 불을 댕긴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덴마크의 주요 작물은 보리·밀·흑맥·귀리 등 곡물류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1870년 무렵부터 저장 및 운송수단의 발달로 미국·캐나다·호주 등의 곡물이 유럽시장으로 밀려들어오면서 유럽산 곡물 가격이 폭락했고, 곧이어 유럽에서 곡물생산은 한계에 이르렀다.

    덴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따라 1870~80년대에 걸쳐 정부와 지식층의 주도 아래, 덴마크는 농업경영의 비중을 곡물생산에서 낙농제품 생산으로 전환해 나갔다. 당시 그룬트비와 달가스가 앞장서서 새로 개간한 지역을 낙농 형태의 농업 중심으로 개발하고 협동조합을 활성화하면서 덴마크 농업은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당시 덴마크 농업의 특징은 △협동조합조직의 도입과 발전 △농축산물 가공 규격의 통일 △생산제품의 철저한 품질관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1895년에 창립된 달걀판매조합은 달걀 하나하나에 생산자 마크와 번호를 매기는 품질관리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조합원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원산지 표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 덴마크의 달걀은 런던시장에서 당시 최고급품으로 인정받던 프랑스산 달걀의 품질을 따라잡았고 시장점유율도 금방 역전됐다고 한다.

    달걀에 생산자 이름 새겨

    오늘날 덴마크에서는 540만명의 국내 인구가 필요로 하는 연간 육류 소비량의 3배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육류 가공식품은 수출량도 많을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생산된 돼지고기 수출액은 40억달러에 이른다. 1만2000곳의 돼지 사육농장에서 세계로 수출하는 금액은 덴마크 전체 수출액의 약 7%를 차지한다. 이러한 덴마크 농업의 성장 비결은 고도로 조직화된 협동조합과 효율적인 생산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농지가 국토의 약 60%를 차지하는 덴마크이지만 여전히 농지보전을 위해 여러 가지 규제가 뒤따른다. 특히 환경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 정부는 1991년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농업과 관련한 환경오염 예방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덴마크 농업의 중심인 축산과 관련해서는 배설물 저장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가축 수에 비례해 배설물 배출을 위한 농지의 확보비율(예를 들어 젖소 2.1마리당 농지 1ha)을 설정하는 등 까다롭게 규제한다.

    덴마크는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 규정을 중시하면서도 농업 보호에 치중한 프랑스와는 달리 생산할당이나 가격보장제도를 폐지하는 등 농업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했다. 지난 1999년 3월에 합의된 CAP개혁(Agenda 2000) 방안을 놓고 벌어진 교섭에서 덴마크는 영국, 스웨덴 등과 함께 포괄적이고 대폭적인 개혁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해 개혁에 소극적인 다수 국가의 입김에 밀려 대대적으로 개혁하지는 못했다.

    유럽연합에 농업개혁 요구

    그러나 2002년 7월부터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CAP의 재검토 과정에서 덴마크는 한층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혁에 소극적인 프랑스 농민의 소득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덴마크 농민의 소득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관심거리다.

    이렇듯 덴마크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기간산업으로 농업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 전략을 세워 실행해왔다. 특히 오늘날 덴마크 농업의 특성은 △철저한 식품안전관리 △농민육성과 지원 △풍력발전과 생물가스 등 틈새산업 발달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덴마크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 중 약 85%가 해외로 수출된다. 덴마크는 토착적인 농경민족이 아니면서도 옛날부터 돼지를 길러왔고 오늘날 세계 제일의 돼지고기 수출국으로 성장했다는 사실부터가 흥미롭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바이킹의 영웅 쉐미메르가 북유럽의 전쟁신 오딘이 살고 있는 발할성(城)에 갔을 때 그곳 축제에서 맛본 돼지고기의 맛을 잊지 못해 속세로 돌아온 후 바이킹 전사들에게 이 돼지고기를 먹였다고 한다.

    오늘날 파리와 런던,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소비되는 햄 종류 가운데 가장 고급품인 살라미(Salami)는 덴마크의 특산품이며, 일본에 팔리는 최고급 돈가스용 고기 역시 덴마크산이다. 덴마크가 수출하는 돼지고기의 13%가 특별히 돈가스용으로 만들어져 일본으로 팔려나간다. 연 5억달러에 이르는 대일(對日) 돼지고기 수출 규모는 덴마크에서 수입하는 일본산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한다.

    덴마크에서는 비단 돼지고기뿐 아니라 모든 식품의 안전과 청결을 위해 생산과 수출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지정 연구소나 검사기관의 각종 검사를 반복적으로 받게 한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농축산물만이 붉은색의 덴마크 상징 로고를 붙일 수 있다. 이 로고는 안전하고 청결하며 신선한 식품임을 덴마크 정부가 보증한다는 표시다. 1219년 세계 최초로 국기를 사용한 민족답게 돼지고기에도 국기문양을 통해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다.

    ‘농업도 기업이다’

    한국 농업의 미래, ‘덴마크 모델’에서 찾자

    세계 주요도시에서 소비되는 햄종류 중 가장 고급품인 ‘살라미(Salami)’나 일본으로 팔려나가는 최고급 돈가스용 돼지고기는 모두 덴마크산이다.

    그러나 덴마크 농업의 저력은 무엇보다 농민의 경영자적 자질과 철저한 농업교육에서 나온다. 농업에 새로 종사하려는 사람들은 농업학교에 들어가 5년 과정을 마치고 국가시험을 거쳐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반드시 30ha 이상의 농지를 사야만 농장을 경영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농민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말하자면 농장 경영자를 중심으로 정부와 농업학교, 농업자문센터, 은행을 연결하는 총체적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젊은 농민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기업으로서의 농업’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기간산업을 육성·발전시키기 위한 지원그룹, 특히 농업자문센터는 이들에게 충실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왕립농업대학을 졸업한 3500명의 전문가가 약 5만3000명에 달하는 농장 경영자에게 회계원리에서부터 농업기술, 윤작(輪作)계획, 분뇨처리 대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유료로 자문한다.

    농업 지원 시스템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또 하나의 축이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은 농업자문센터와 제휴해 우수한 경영자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융자를 늘려주는 반면, 경영 능력이 없는 농업인에게는 융자보다 이농(離農)을 유도한다. 이렇게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작동하니 덴마크의 농민은 수출입 오퍼상처럼 치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리라.

    덴마크는 국내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어떤 산업이든지 대규모 기술개발이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바탕으로 자칫 소홀하기 쉬운 틈새산업에서만큼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농업 분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당뇨병의 특효약인 인슐린의 개발이다. 인슐린은 덴마크 기술진이 전염병을 연구하다가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따라서 오늘날 인슐린 시장에서 덴마크는 세계 제일의 기술과 생산량을 자랑한다.

    또한 덴마크는 1980년대부터 산학협동으로 신농업상품을 창출하기 위해 연구역량을 집중해왔다. 유틀란트 반도의 북쪽 아르후스 지역의 사이언스 파크는 틈새산업 연구를 시작한 최초의 산학협동 연구시설이다. 농산물의 고부가가치화도 중요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간산업인 농업에서 파생되는 틈새산업이야말로 미개척 분야라는 점에서 정부가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인슐린 개발

    그러나 덴마크 농업 역시 최근 들어 돼지고기 수출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 데다 수입 관련 제도가 엄격해지고 관세가 오르면서 일부 농가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수입할당제도를 도입하면서 덴마크의 수출전선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설상가상으로 브라질과 폴란드산 돼지고기와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덴마크의 농업행정을 총괄하는 농업이사회(Danskeslagterier·Danish Agricultural Council)에 따르면 2003년 상반기 덴마크산 돼지고기의 러시아 수출 물량은 전년도 상반기의 4만2000t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덴마크 상공회의소는 EU에 새로 가입한 폴란드와 발트 3국 등 신규시장이 앞으로 10~15년 내에 독일을 제치고 덴마크의 가장 중요한 농축산물 수출 대상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덴마크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간단치는 않다. 특히 중요한 것으로 △농장 규모 확대에 따른 논란 △노동력의 감소 △이민 증대에 따른 정체성 혼란 △EU 참가를 둘러싼 국론분열 등을 꼽을 수 있다.

    현행 덴마크 농업법에 따르면 농민 한 명은 최대 3개의 농장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거주지역과 농장 사이의 거리 제한을 없애고 대규모 농장주에게는 인근 작은 농장을 구입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어 대규모화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각종 규제를 풀어 EU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른 보조금 폐지 이후에 대비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EU 통화체제 참여안 부결

    그러나 특정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부 농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이러한 대규모화에 반대하면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농업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물론 농장의 대규모화에 따라 필요노동력이 줄어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농민 자녀의 3분의 1만이 농업학교에 진학하는가 하면 전업농이 아닌 시간제 노동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도 덴마크 농업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게다가 최근 급증하는 이민자는 덴마크 농업 특유의 협동정신과 정체성을 흐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덴마크 농업의 근간을 이루는 ‘협동조합적 농민(Andelsbonde)’의 감소는 장차 덴마크 농업 발전에 근본적 위협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EU 통화체제에 참여할 지에 대한 정부와 국민간 갈등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EU 참여에 적극적인 정부와 달리 덴마크 국민은 2000년 9월에 EU 통화통합을 놓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반대 53.1%, 찬성 46.9%로 통화통합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따라서 덴마크는 현재 EU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자국 통화인 크로네를 여전히 유지하면서 신환율조정체제(ERM II·Exchange Rate Mechanism)에 의거하여 유로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국 통화를 유로화에 상하 2.25%의 변동폭 안에서 연동시키는 선택적 거부권(opt-out)만을 갖고 있다.

    통화통합에 찬성하는 국민은 식품위생, 환경보호,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서 덴마크가 EU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합에 따른 이점으로 꼽는다. 1999년에 제정된 덴마크의 유기농업법이 EU법의 근간이 된 사실도 강조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국민은 통화통합 이후 지금까지 덴마크인들이 누려온 각종 복지정책이 후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찬반양론의 대립은 국론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우리나라 농업의 가장 큰 관심거리로 등장한 쌀 협상 비준 논란은 결국 쌀을 관세화할 것인지 아니면 일정기간 관세화를 다시 한 번 유예하되 의무수입물량(MMA)을 늘릴 것인지로 요약된다. 우리는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서도 선진농업국인 덴마크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정부와 농민은 과연 한 세대가 흐른 후에도 지금과 같은 논쟁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10년 전 쌀 협상을 할 때 ‘10년의 유예기간이면 한국 농업은 자생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이면합의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추진해온 10년간의 제2차 유예기간이 진정 우리의 쌀농사를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는 현재까지 논의된 협상조건이라면 수입을 완전개방하는 관세화가 오히려 유리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곡물 위주 농업 탈피해야

    둘째, 곡물 위주의 농업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낙농도 농업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우리 농업이야말로 토지가 넓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은 곡물형 농업에서 과감히 벗어나 좁은 땅덩어리로 말미암아 낙농 중심으로 전환한 유럽 농업의 경험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미 정부도 이런 점을 인식하여 화훼 위주의 네덜란드나 낙농 위주의 덴마크 농업을 벤치마킹하는 데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수치만 대충 파악하고 피상적으로 선진제도를 받아들인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셋째, 농업에 대한 수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농으로 인해 늘어나는 빈 농가에는 농촌관광이나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늘어난 여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농업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1사1촌(1社1村) 형식으로라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넷째, 농민 역시 농가는 기업이고 스스로는 기업인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막연히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생각만으로는 변화하는 선진농업을 따라갈 수 없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유기농 기술이나 도정을 하지 않은 쌀 등 특화된 농산물은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기준조차 혼란스러운 유기농산물 인증제도를 국제기준(Codex)에 맞게 하루빨리 정비해야 할 것이다.

    농민단체도 이제 눈을 크게 뜨고 바다 건너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중국에 김치를 수출한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자장면을 수출한다는 발상의 대전환을 이루지 않고서는 10년 후에도 쌀 협상에 대한 이면합의 논란과 공방이 거듭될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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