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6일 미국이 발표한 ‘국제원자력 제휴’ 계획.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과 일본이 참여해 주도하는 이 새로운 국제원자력체제는, 핵 확산방지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한국에 어떤 득실이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새 원자력체제와 관련이 깊은 차세대 원자력발전 시스템의 개발과 관련해서도 한국은 방침을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이미 많이 흘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이 3월1일 인도 뉴델리 공항에서 만모한 싱 인도 총리를 만나고 있다. 이 방문을 통해 미국과 인도는 민수용 원자력협력협정을 완결지었다.
이러한 이중잣대를 사용하는 미국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한국과 같은 약소국 처지에서는 당연한 측면이 있다. 억울할 수밖에 없다. 반면 생각해보면, NPT체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이란과 북한이 핵개발을 시도하기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미국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NPT체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방안으로 원자력협력을 들고 나선 것이 아닌가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미국이 꿈꾸는 더 강화된 NPT체제’의 정체다. NPT를 바탕으로 출범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세월 동안 핵사찰 제도를 꾸준히 강화해왔지만, 국제기구가 언제까지나 각국의 농축시도와 원자력발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무한정 막고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십수년 전부터 사용후핵연료를 국제적인 관리하에 두자는 제안이 나왔고, 최근에는 IAEA 본부에서 타당성 연구도 진행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기존의 농축과 재처리시설 외에 더는 시설을 건설하지 말자”고 제안하고, 미국 또한 유사한 안(案)으로 화답했다. 러시아는 이란에 대해 농축 서비스를 해줄 테니 농축공장 건설을 중단하라고 제의하기도 했다.
2월6일 미국이 발표한 ‘국제원자력 제휴(Global Nuclear Energy Partnership·GNEP)’ 계획은 이런 맥락에서 준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무기를 가진 다섯 나라와 일본이 파트너가 되어, 농축 재처리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발도상국에 적정한 가격의 원자력발전용 연료를 임대 공급하겠다는 것이 GNEP의 골자다. 사용후핵연료를 회수해 대신 처리해주는 방안이나, 소규모 원자력발전을 원하는 나라에는 10~15년간 연료교체가 필요 없는 원자로를 임대해 준 뒤 나중에 원자로를 통째로 회수하는 식의 구상도 포함돼 있다. GNEP와 관련해 새뮤얼 보드먼 미 에너지부 장관은 2007년 예산으로 2억5000만달러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이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에는 많은 정치적·기술적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 GNEP를 발표하기에 앞서 미국은 일부 해당국과 논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미국은 한국이 농축이나 재처리기술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원자력발전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고 이 계획에 필요한 일부 기술분야에서 미국과 장기간 협력해온 점을 들어 GNEP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1990년대에 원자력발전소와 핵연료 설계기술을 독자적으로 수립해 국내 원자력발전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해외수출을 바라보고 관련연구를 추진해왔다. 그런 까닭에 미국이 GNEP 계획을 발표하리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국내에서는 이에 참여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잘 활용하면 한국에 득이 된다는 의견, 미국과 강대국들의 일이니 한국과는 상관없다는 견해, 이 계획에 동승하지 못하면 원자력 수출은 물론 앞으로 원자력을 이용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 등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GNEP에 거는 미국의 기대는 어떤 것이고, 유일한 자립 에너지인 원자력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이 선택해야 할 카드는 무엇인가.
비상 걸린 에너지 확보 경쟁
미국 에너지부는 전세계 유수의 에너지 관련 분석보고서를 참조해 해마다 전망보고서를 발간한다.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5년 사이에 에너지 소비는 60% 가까이 증가하고 증가량의 3분의 2가량은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소요된다. 일부에서는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언론에 등장하는 각국 정상들의 외교는 대부분 에너지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동중국해(海)와 사할린 가스전(田)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갈등은 이미 신경전 수준을 넘어섰다. 대통령이 외국을 순방할 때마다 에너지협력이 주요 의제로 등장하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으며, 불공평하게도 지역적으로 편중해 존재한다. 즉 공간적으로 확보에 어려움이 있고, 양은 제한적이며, 시간적으로 빨리 수송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기 땅의 에너지원(源)도 지킬 수 없는 형국이다. 현재의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가 묻혀 있는 중동은 힘있는 나라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가스는 러시아가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으나,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공급중단 사태를 보면서 러시아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연두교서에서 “미국이 석유에 중독되어 있으며, 특히 중동 석유에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신(新)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한편 1980~90년대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키로 하거나 발전소 폐쇄를 결정한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에서는 건설 재개를 주장하거나 추가로 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과반수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연합(CDU) 소속인 헤세 주 지사가 “독일의 단계적 원자력발전소 폐쇄결정은 어떠한 이점도 없고 경쟁력 손실만 가져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간 대세를 이루던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 대신 각국이 앞다퉈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자력의 어떤 특징이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국제 에너지 사정이나 정세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화석연료가 산화반응으로 미약한 에너지만 발생시키는 데 반해, 원자력은 조그만 양의 연료가 핵반응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한 가정이 1년에 필요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연필 굵기만한 연료 1cm만 있으면 충분하다. 석탄, 석유, 가스 등은 저장하는 데 엄청난 공간이 필요하지만, 우라늄은 10층 높이 건물만큼만 있으면 한국이 보유한 원자로 20기를 500년가량 가동할 수 있다.
또한 우라늄 가격은 미국과 러시아가 핵탄두를 해체해 핵연료로 공급하는 2013년까지는 안정세를 유지하리라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캐나다, 미국, 호주, 아프리카 일부, 카자흐스탄 등 전세계에 분포해 지역적 편중성이 작다는 것도 강점이다. 다만 원자력을 이용하기 위한 연료설계와 제조, 원자로 건설과 운영, 안전운전 등에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무 나라나 원한다고 쉽게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래에도 원자력이 전기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내외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소비의 절대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므로 2025년경 원자력발전소는 현재의 430여기보다 60~80기가 증가하고, 2050년경에는 최대 400여 기가 늘어 총 1000기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성장이 두드러진 중국과 인도는 2030년까지 30~40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도 원자력발전소 도입 시점을 2020년경으로 맞추는 등 원자력이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일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는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율을 현재의 16%에서 25%로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위해 70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도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율을 약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중국, 인도, 일본,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야심찬 계획을 들여다보면 2030년경 또는 이후에 이들 국가가 도입하고자 하는 원자로 형태는 현재의 경수로가 아닌 고속로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미국, 일본이 2020년대에 상용 고속로의 실증을 계획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랄 지역에 BN-800 고속로를 건설하기 위해 2006년 예산을 배정했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이렇게만 보면 원자력의 득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세계적인 원자력 강화 추세에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있다. 바로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문제다.

사용후핵연료는, 잘 타는 우라늄(U235)을 농축해 금속튜브에 넣어 다발로 만든 상태로 원자로에 넣어 약 3년간 태운 후 원자로에서 빼낸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속에는 타다 남은 우라늄과 새롭게 태울 수 있는 플루토늄이 생성돼 있다. 대략 발전소 1기당 1년에 약 50다발(약 25t)씩 배출되며 높은 열과 방사능을 식히기 위해 일단 발전소 수조 속에서 보관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우라늄 가격이 비쌀 경우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지만 우라늄 공급에 문제가 없다면 골치 아픈 쓰레기일 뿐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골치 아픈 존재다. 우선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은 원자력발전소나 연구용 원자로를 가진 약소국이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꺼내 폭탄을 만들까 노심초사한다. IAEA를 통해 사찰하지만 이란과 북한처럼 농축과 재처리를 강행할 때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래서 GNEP계획처럼 강대국들끼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까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용후핵연료 속에는 300년 후면 능력이 소멸되는 물질과 10만년이 지나야 소멸되는 물질, 타다 남은 우라늄이 뒤섞여 있다. 일반적인 재처리를 통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꺼내 다시 태우면 연료 재활용 측면에서는 효율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