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상습 주취자를 병원에 후송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왜 주취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권침해 논란 소지 등을 우려해 외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병원은 경찰이 주취자를 병원에 떠넘긴다고 생각했고, 경찰은 병원에서 주취자 받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상당히 소홀했습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자살을 시도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때는 주취자를 보호조치할 수 있지만 단순히 술 마시고 소란만 피우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함부로 연행하면 인권침해 논란을 빚을 수 있어 경찰관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잘못하면 소송을 당할 수 있던 부분도 경찰관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방치하고 책임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인권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구대에서 상습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주취 소란자를 이제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자가 아니라 치료 대상자로 봐야 합니다.”
▼ 외국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 선진국들은 상습 주취자를 위한 제도와 시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만약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면 체포해 500~1000달러의 벌금을 매깁니다. 워싱턴DC에서는 단순 주취자(의식이나 사물 분별력이 있는 사람)는 본인 동의를 얻어 집이나 보건당국이 운영하는 주취해소센터로 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만취자는 병원으로 후송하되 자살, 자해시도 등 정신병 증세를 보이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취해소센터의 폐쇄병동으로 데려가죠. 영국은 만취 소란자는 죄질에 관계없이 우선 체포해 후송용 차량에 태워 경찰서 유치장에 36시간 구금합니다. 일본에서도 ‘술에 취하여 공중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의 방지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난폭한 행동을 하면 수갑이나 포승을 이용해 강제 보호조치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만취 상태로 발견되면 경찰서 주취자 보호실로 데려가 3000유로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죠. 외국에서는 주취 소란자를 강하게 처벌하고 응급조치가 필요하면 강제 보호조치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모든 게 술과 이들의 행패에서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죠.”

김중확 청장이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상습 주취자 치료 프로그램을 중간평가하는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실 그 부분이 제도를 시행하기에 앞서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면 모든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지만 우리는 치료와 보호 대상을 엄격히 한정했습니다. 모든 경찰서와 지구대와 협의해 알코올중독 수준인 165명을 상습 주취소란자로 제한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가 있을 때만 병원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지구대에 후송과정에서 치료·보호 매뉴얼을 보낼 정도여서 인권침해 소지는 전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7월21일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 부산인권상담센터, 경실련, 참여자치시민연대, 부산인권센터 등 5개 시민단체와 이 제도를 두고 간담회도 열었습니다. 경찰에서 주취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자 경찰의 업무 전가,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졌습니다. 경찰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 주취자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시민단체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 10월15일로 시범실시기간인 석 달이 지났습니다. 계획하신 대로 성과를 얻었나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석 달 동안 상습 주취자 20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10명은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으며 재활의 기회를 찾았습니다. 가족들도 경찰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상습 주취자의 대학생 아들은 ‘아들 혼자 아버지를 치료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경찰의 적극적인 도움이 고마웠다’고 전하거나 주취자 본인이 직접 ‘이제 술을 조금 마셔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고 너무 우울해 견딜 수 없다’며 정신치료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165명의 관리 대상 주취자도 조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대 경찰관들이 이 프로그램이 언론에 소개된 뒤 이들의 소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상습 주취자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국민 공감대가 확산되면 모든 지구대로 확대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주취자 관련 법체계 정비해야
▼ 그럼 이 제도의 정착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부산시립의료원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도 일반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주취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별도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워싱턴 DC의 주취해소센터 같은 것이지요.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 뒤 생긴 성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처럼 알코올중독자 방지를 위한 전문성 있는 치료 및 상담센터를 개설하는 것도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확대 시행을 위해 병원 진료비 확보를 위한 응급의료기금 확충도 시급하다고 봅니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을 만큼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습 주취자 가운데는 노숙자나 무연고자가 상당히 많습니다만 가족 동의가 없어 치료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들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 주취자 관련 법 체계의 문제점이나 개선 방향을 연구해 보건복지가족부 등 관련 부처에 정책건의를 할 생각입니다.”
● 김중확 청장 : 1956년 경남 사천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연세대 사법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법시험 26회 출신(사법연수원 16기)으로 1987년 경정으로 특채됐다.
주 시카고 한국총영사관 경찰주재관, 경찰청 외사2담당관, 경찰청 주 워싱턴주재관을 지내는 등 경찰 내에서 몇 안 되는 국제전문가로 분류된다. 강화서장, 경찰청 정보과장, 관악서장, 경찰청 수사과장, 부산경찰청 차장, 경찰청 혁신기획단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2007년 치안감으로 진급한 뒤 경기경찰청 차장, 경남경찰청장을 지냈다. 올 3월부터 부산경찰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찰청 주 워싱턴주재관으로 있던 2006년 한미 FTA 저지 원정시위대가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때 우려와 달리 워싱턴 경찰국과 협조해 한 명도 체포되지 않게 평화적 집회·시위를 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등 조정 역할도 뛰어나다.
부산경찰청의 ‘상습 주취 소란자 치료 보호 프로그램’ 도입 과정이나 연세대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현행 체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등의 제도를 꼼꼼히 취재해 선진국 경찰제도의 장단점도 꿰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