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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輪圖에는 우주와 자연 사람의 길이 담겨 있습니다”

‘흥덕 패철’의 전통 잇는 윤도장 김종대

“輪圖에는 우주와 자연 사람의 길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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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퀴 모양을 한 둥근 윤도(輪圖)는 태극을 상징하는 가운데 나침반을 중심으로 하늘의 별자리, 방위, 천간과 지지 등을 새겨 넣은 내비게이션이다. 단지 방위나 위치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와 함께 산수의 흐름까지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서 역(易)의 이치와 천문학, 점술, 지리학이 그 하나에 다 담겨 있다. 윤도장 김종대(金鐘垈·78)는 ‘흥덕 패철’의 전통을 잇는 전북 고창군 낙산마을에서 홀로 윤도 제작의 맥을 이어왔다.
“輪圖에는 우주와 자연 사람의 길이 담겨 있습니다”
본래 허공에는 동서남북이 없는데, 사람은 한계가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어느 하늘 아래인지 늘 규정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지구 위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쉽다. 자동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눌러봐도 되고,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구 위에 떠 있는 위성이 보내주는 신호로 우리 위치를 북위 몇 도 몇 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내는 위성항법장치(GPS)를 우리는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다.

저 먼 하늘에서 보내준 신호로 내 위치를 알게 된다는 것은, 실감은 잘 안 나도 생각해보면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윤도를 들여다보면, 현대의 똑똑하고 깜찍한 장치는 흉내도 못 낼 세계가 들어 있다. 항상 남쪽을 가리키는 지남철(指南鐵) 바늘이 담긴 한가운데 부분을 김종대 윤도장은 ‘태극(太極)’이라고 말한다. 태극기의 흰 바탕이 음양으로 나뉘기 전의 태극(無極이라고도 한다)을 상징하듯, 윤도의 가운데 흰 바탕도 태극이라는 말이다.

우주 삼라만상을 담아내다

“윤도에는 태극을 비롯해 8괘, 간지와 육갑, 음양과 오행, 24방위, 별자리 28수, 24절기까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 뜻을 다 헤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김종대 장인은 윤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때 서당에도 다녔지만, 윤도의 비밀을 다 풀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침반이나 현대인이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이 단지 위치나 방위만 표시하는 데 반해 윤도는 하늘의 별과 땅의 시간까지 모두 담고 있으니 이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특히 풍수를 살피는 지관이 참고하는 ‘천산(穿山)’이니 ‘투지(透地)’ 등의 윤도 내용은 용맥(산의 흐름)과 땅의 기운을 측정하는 것이요, 풍수의 대미라고 할 수 있는 ‘분금’(分金·관을 묻을 때 위치를 정확히 정하는 것) 역시 방위가 아니라 윤도로 기맥을 정확히 측정해내는 일이니, 윤도가 나타내는 세계는 저 우주 공간부터 땅속까지, 그리고 카오스 상태의 무극의 시간부터 정확한 절기까지, 시공간을 총망라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윤도를 ‘나경(羅經)’이라 한다. 삼라만상을 다 포함하며(包羅), 천지를 날줄과 씨줄(經緯)로 조직해냈다는 뜻이다.



이처럼 윤도는 단순히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우주와 산천을 이해하고, 그 사이에 사는 인간이 자연에 맞춰 조화를 도모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 지혜는 역(易)과 천문학, 점성술, 지리학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에서 윤도를 제작했다.

윤도는 태극에 해당하는 한가운데 나침반을 중심으로 말 그대로 바퀴살처럼 동심원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작은 것은 3층짜리도 있고 큰 것으로는 24층까지 만들기도 한다. 중국 나경을 설명한 책에는 36층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각 층은 특별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정보 내용에 따라 층의 이름을 붙인다.

가운데 태극 속의 나침반이 남북을 가리키는 것은 이미 음양으로 나뉜 것이나 마찬가지니 바로 다음 칸인 제1층에는 8괘를 표시한다. 이런 식으로 각 층은 8괘와 오행, 간지, 천산, 투지, 물이 들고 나는 것(黃泉)은 물론이고 겁살과 길흉까지 자세히 살필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있지만, 몇 층짜리를 만드느냐에 따라, 또 주문자의 편의에 따라 내용과 차례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요. 특별히 몇 층에 무슨 내용을 넣어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합니다.”

윤도를 가장 많이 쓰는 지관들이 흔히 사용하는 윤도는 9층짜리다.(김종대는 ‘태극까지 합해 10층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9층짜리일 경우 1, 2층에는 묏자리나 집터의 향(向)을 잡는 데 필요한 정보를 넣고, 3층에는 오행의 삼합을, 4층에는 용(龍·풍수에서 말하는 산이나 능선의 흐름)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담는다. 5층 ‘천산’으로는 후룡(혈 뒤의 산)을 볼 수 있고, 6층 ‘중침 24산’은 배경이 되는 산수를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데 쓰인다. 7,8층에는 입수와 득수의 길흉을 가늠하는 내용을 포함하며 마지막 9층은 하관할 때 망자의 사주에 맞춰 관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120분금을 새겨 넣는다. 특히 분금을 잘 맞추면 집안의 발복과 후손에서 큰 인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예부터 분금하는 것이 지관의 능력을 결정짓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기도 하여, 윤도로 정확한 각도를 재어야만 제대로 분금할 수 있다.

“輪圖에는 우주와 자연 사람의 길이 담겨 있습니다”

거북바위에 윤도를 올려놓고 남북을 확인하는 김종대 윤도장. 낙산마을 윤도는 만들어진 다음 이 거북바위에서 남북이 제대로 맞춰졌는지 확인해야 비로소 ‘흥덕 패철’로 인정받는다.

24층, 36층짜리 윤도는 더욱 정밀하다. 120간지에 360도수를 나누어두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정도면 윤도와 풍수지리는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실제로 예전에는 사람이 사는 양택(집)이든 죽어서 들어가는 음택(산소)이든 풍수가의 정확한 진단 없이 함부로 터를 잡는 것은 위험한 일로 보았다. 터럭 같은 호리(毫釐)의 차가 나도 한 집안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의원보다 지관의 책임은 더욱 무거웠다. 역의 이치부터 산수의 위치와 흐름, 땅속의 맥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연구했던 예전 지관들 입장에서는 오늘날 몇몇 지관이 윤도도 필요 없다며 그저 산수를 눈으로 훑어보고 터를 잡는 행위야말로 위험한 미신으로 보일 것이다.

김종대 장인이 나서 살고 있는 전북 고창군 성내면 낙산마을은 조선시대 흥덕현(興德縣)에 속했다. 조선시대 윤도를 만드는 곳은 많았지만 일찍이 흥덕 패철(佩鐵· 지관이 윤도를 몸에 차고 다니기에 패철이라고 불렀다)은 정확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흥덕 패철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인지 이 고장은 윤도와 남다른 인연을 강조한다. 우선 낙산(洛山)이라는 지명부터 그렇다. 역의 원리를 담은 괘의 원형이라 할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가운데 낙수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새겨진 점이 바로 낙서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고장 지형이 마치 낙수에서 나온 거북을 닮았다 하여 낙산이라 이름 붙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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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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