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한 것이, 옷을 지을 때 짓는 사람의 마음이 그 옷에 다 담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옛 여인네는 아이 옷이나 남편 옷을 지을 때 아이나 남편이 건강하고 출세하도록 온 정성을 다해 바느질을 했지요. 또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과 아들 옷은 천 명에게 한 땀씩 부탁해서 지으면 화살도 총알도 뚫지 못한다고 믿어 바느질 동냥도 했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어머니들에게 바느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기도이자 종교였던 거지요.”
그럼 세상에 가장 편하고 좋은 옷은 당연히 정성을 다한 옷이란 말인가. 김해자 명장의 대답은 놀랍게도 ‘텅 빈 마음으로 지은 옷’이 가장 편한 옷이란다.
“무엇이든 구하는 마음은 사심(邪心)이 되게 마련이지요. 옷 짓는 사람이 아무 사심 없이 마음을 다 비운 상태에서 바느질해 만든 것이라야 누가 입어도 편한 옷이 되는 겁니다.”
옛 여인네들은 정성과 한(恨), 설움을 담아 바느질을 했을 테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염원하는 그 마음조차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장 편안한 옷이 된다는 뜻일 게다.
“바람처럼 설렁설렁 하라”
김해자의 바느질 인생에서 화두는 ‘편안함’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고운 누비 작품을 설명할 때도 ‘솜씨’니 ‘정성’이니 하는 말보다 ‘다 비운 마음’‘편안함’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제자들에게도 그가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너무 잘하려고 용쓰지 말고 저 바람처럼 설렁설렁 하라”고.
“너무 정성 들여 잘하려고 하거나 빨리 완성하려고 서두르면 바늘이 수십 개씩 부러지고 실도 자꾸만 꼬입니다. 그렇게 만든 옷이 편한 옷이 되겠어요? 또 ‘내가 널 위해 이렇게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식의 생색도 입는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옷 할 때는 제발 생색 내지 말라고 타이르죠.”
무념, 무심으로 바느질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은 알지만, 바느질을 하다보면 온갖 번뇌와 망상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매순간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상념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또 일어나곤 한다.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바느질 한 땀에 생각을 밀어내며 해나가다보면 어느덧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편안해지는 마음이 좋아서 누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홈질로 이어가는 누비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지만, 배우는 이들이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유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단순함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진력이 나게 마련인데, 그는 바로 그 단순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내공’이 쌓인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평생 수행하듯 단순한 동작을 끈기있게 반복했고, 그 결과 편안한 마음과 편안한 옷을 얻었다. 그의 옷은 입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보는 사람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2001년 일본 NHK에서 주최한 세계 퀼트 초대전에 초청되어 갔을 때 그의 누비가 다른 화려한 퀼트보다 더 인기를 끈 것도 편안함 덕택이었다.
“60개국이 참가한 박람회였는데, 세계 퀼트 장인들이 저의 전시관을 많이 찾아왔어요. 그러면서 한결같이 ‘다른 전시장에서는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이곳에 오면 마음도 호흡도 편안해진다’고 말하더군요.”
본래 퀼트는 자투리 천을 이용한 소박한 공예였지만, 오늘날에는 예술작품으로 퀼트를 만들다보니 그 기법이나 색상이 복잡하고 화려하다. 처음 보면 아름답지만 오래 두고 보거나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보게 되면 오히려 숨이 막히는 답답한 느낌을 받는 것도 기교가 너무 승(勝)하기 때문이리라.
“퀼트가 발달한 미국에서 600여 점의 개인 소장 작품전을 본 적이 있는데, 과거에는 미국 작품도 주로 흰색과 빨간색 천을 이용한 소박한 작품이 많더군요. 그런데 요즘엔 일부러 천을 잘라서 ‘작품’으로 만들다보니 작가들이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수고스럽게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기교가 많이 들어가게 되어 숨이 막힐 지경이 된 것이지요.”

“초대전에 동참해달라고 하기에 우리 누비는 퀼트가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자 이해를 못하더군요. 솜을 넣어 바느질하는 것이 같지 않으냐면서요. 그래서 우리 누비는 기교라는 군더더기를 다 떨어낸 정신적인 산물이지, 보통 바느질 작품이 아니라고 했지요.”
누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기교가 없으므로 오히려 제일 수승(殊勝)한 것이 우리 누비인데, 어찌 기교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잡스러운 문화와 한데 섞일 것인가’ 하는 게 그의 마음이다. 일본 사람들도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떻게 하면 동참해줄 것이냐고 물었고, 그는 퀼트라는 말 대신 ‘누비’라고 표기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참여하게 된 초대전에서는 ‘똑같이 바느질을 하면서도 퀼트라고 하지 않고 누비라고 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겠는가’라는 슬로건이 내걸렸고, 그의 작품은 큰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