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호

“의술보다 인술…난임 전문의는 정신과 의사에 가까워야”

[기획 | ‘위기를 기회로’ 저출산·고령화 시대] 난임 치료 39년, 이상찬 부산 세화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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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6-01-0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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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학 책 두 권 낸 보기 드문 의학자

    • 28년째 난임 포럼 개최해 업계 발전에 기여

    • “의사는 평생 배워야”…매주 월요일 최신 논문 공부

    • 출산 기피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선택

    이상찬 원장

    이상찬 원장

    난임 치료에 오롯이 39년을 바친 의사가 있다. 국내 난임 의학의 한 세대를 이끌어온 산부인과 전문의이며, 투철한 직업윤리와 소신을 현장에서 실천해 온 이상찬 부산 세화병원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의사이면서 인문학 책 두 권을 집필한 작가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를 물리학적 은유(메타포)를 빌려 표현하고,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드는 그의 따뜻한 시선에는 환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섬세한 배려가 배어 있다.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은 여성의 마음과 부부의 삶 전체가 투영되는 복합적 여정이에요. ‘난임전문의는 정신과 의사처럼 환자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된 것도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부산 동래구 온천동 세화병원 세미나실에서 마주한 이 원장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세월만큼 켜켜이 단단하게 쌓인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와의 인터뷰 주제는 ‘아기를 만드는 기술’을 넘어 자연스럽게 ‘생명과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절박함, 초조함 떨쳐야 하는 이유

    국내 난임병원에서 인공수정(IUI), 시험관아기시술(IVF) 같은 난임 시술을 위해 행해지는 진료 건수가 2024년 기준 129만 건에 달한다. 2020년 88만 건과 비교하면 4년 새 41만여 건이 증가했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탓인가. 

    “지금은 결혼과 임신, 출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집을 언제 사고, 돈을 얼마나 모으고, 임신을 몇 살에 할지를 계획표처럼 관리하는 시대다. 그러나 임신은 그렇게 계산한 대로 되지 않는다. 잘 먹는다고 갑자기 임신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배란일만 열심히 체크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너무 안달하고 조급해하면 뇌에서 스트레스 신호가 올라가고, 배란이 흔들리고 자궁 환경이 불안정해져서 오히려 임신이 더 어려워진다. 봄이 빨리 오라고 해서 오는 게 아니듯이, 임신도 순리대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된다.”



    ‘인간의 성장은 결핍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임신도 간절하게 바랄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은가. 

    “정반대다. 삶에서는 결핍과 절실함이 있어야 성장하지만, 임신에 대한 절박함이 커질수록 몸은 오히려 반대로 반응한다. 절실함에서 멀어져야 임신이 잘된다. 여성의 몸은 뇌의 신호, 호르몬 분비, 면역체계, 자궁 환경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데, 스트레스나 조급함이 커지면 이 균형이 깨지기 쉽다. 인간은 부족하면(–) 채우고(+), 다시 제로(0)로 돌아가면서 살아가지만, 임신은 제로 상태에서야 비로소 자녀를 허한다.” 

    “난임 의사는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정신과 의사여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난임 의사는 과배란 주사를 처방해 난자 채취하고, 이를 자궁 안에 이식해 주는 의술만 행하는 의사가 아니다. 환자의 마음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임신을 오래 기다린 부부들은 대부분 불안과 걱정으로 지쳐 있다. 각자 지닌 사연이 다르고, 상처나 두려움도 다르다. 그걸 충분히 듣고 이해해 주면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임신이 안 돼도 괜찮다. 되면 더 좋다’는 여유가 생기면 뇌의 긴장이 풀리고 호르몬 축이 안정되면서 생식능력이 실제로 좋아진다. 그래서 미국의 난임병원에는 오래전부터 상담 간호사의 역할이 굉장히 강화돼 있다. 난임은 마음과 몸을 함께 치료해야 하는 분야다.”

    마음 상태가 신체 건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나. 

    “우리 몸을 지배하는 것이 생각이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일이 안 풀린다. 반면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긍정적 마인드로 접근하면 생각지도 않게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세포 안에는 전구 속 필라멘트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긴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는 생각을 전달받으면 전구 속 필라멘트가 발열하듯이 스위치가 켜지면서 독립적으로 자가 발열을 한다. 다시 말해 생각과 마음의 영향으로 에너지가 생산되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쌓인 신뢰의 힘 

    이상찬 원장은 2021년 ‘쌍둥이를 원하십니까’에 이어 2024년 ‘세상에 태어나 꽃이 되어라’라는 인문학 책을 세상에 내놨다. 두 책에는 그가 난임 치료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생명에 대한 생각, 여러 해 동안 생식 의료 현장에서 길어 올린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난임 환자들과 맺은 관계 속에서 얻은 생각, 생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의료인으로서의 철학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의사가 인문학 책을 낸 사례는 흔치 않다. 책을 쓴 동기가 궁금하다. 

    “어느 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듣는데,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라는 가사가 가슴에 박히더라. 그 한 줄이 오래 남았다. 그전까지 신문과 방송에 낸 칼럼들, 난임 현장에서 느낀 생각, 환자들과 부딪히며 쌓인 경험과 정보가 흩어져 있었고,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하고 미완성일지라도, 내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고 싶어 ‘그 흔적’을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두고자 했던 것이다.” 

    IVF에 성공하려면 의사의 실력, 배양기술력 못지않게 의사와 환자 간의 유대와 신뢰가 중요하다고 들었다. 

    “고양이도 밥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강아지도 누가 자기를 진심으로 챙기는지 다 안다. 사람은 더하다. 의사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한다는 느낌이 들면, 태도나 말투 하나에서도 신뢰가 생긴다. 그렇게 마음이 놓이면 ‘이번에는 될 것 같다’는 긍정 마인드가 생기고, 몸도 훨씬 유연해지고 균형이 잡힌다. 이는 단순히 감정 문제가 아니다. 신뢰가 생기면 뇌의 스트레스 반응이 줄고, 호르몬 축이 안정되면서 난소와 자궁의 리듬이 좋아진다. 자율신경과 면역계까지 편안해지면 착상 환경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다.”

    세화병원이 개원 38주년을 맞았다. 임신에 성공한 최고령 임신부는 몇 살인가. 

    “40대 후반 임신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최근에는 50세 여성이 임신에 성공했다. 그분은 난소기능검사(AMH)에서 난소 나이가 거의 폐경 직전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본인의 상황을 아주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배란 주사를 저용량으로 여러 차례 투여해 그때그때 자라는 난자를 최대한 키워냈다. 그렇게 여러 사이클에서 얻은 난자를 동결해 뒀고, 이후 적절한 시점에 이식을 진행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임신에 성공했다. 의학의 힘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뜻’이라는 표현은 비과학적이지 않나. 

    “그래서 나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자는 수억 마리가 난자를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 한 마리만 수정에 이른다. 우리는 흔히 ‘가장 힘센 정자가 승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구조는 그렇지 않다. 난자가 스스로 받아들일 정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받아들이는 주체’이기에 마지막 선택권을 난자가 쥐고 있다. 임신은 그런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이뤄진다.”

    이 원장의 설명을 정리하면, 난자는 특정 정자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화학 신호를 먼저 보낸다. 이 신호를 인지한 정자들의 이동과 결합 능력이 달라지면서, 결국 난자가 ‘열어줄 문’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수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정은 ‘가장 강한 정자’의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난자가 받아들일 정자를 고르는 정교한 선택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난임 의사로 39년을 보내며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의사가 됐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걸 날마다 느낀다. 그래서 우리 병원은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마다 의사들이 모여 전 세계에서 나온 최신 논문을 함께 검토하고 발표한다. 솔직히 말해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의사라고 다를까. 그럼에도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기에, 마치 시험 날짜를 정해놓고 공부하듯이 일주일에 한 번 반드시 새로운 의학 지식과 정보를 쌓는 시간을 갖는다.”

    이상찬 세화병원장(맨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세화아카데미 2025 –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에 참석한 의료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화병원

    이상찬 세화병원장(맨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세화아카데미 2025 –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에 참석한 의료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화병원

    지식 공유의 장으로 성장한 ‘세화아카데미’ 

    28년째 ‘세화아카데미’라는 난임 포럼을 열어 전국의 난임 관계자들과 지식을 공유해온 것으로 안다. 취지가 뭔가. 

    “1997년 ‘세화 심포지아’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국내외 의료진이 모여 의학 지식을 공유하고 난임 치료의 새로운 해법을 찾는 순수한 의학 심포지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 삶의 의미와 존엄’을 함께 묻는 아카데미로 성장한 거다.”

    의학 심포지엄에서 인문학을 포함하는 포럼으로 확장한 계기가 뭔가.

    “수년 전, 나를 찾아온 고3 암 환자(男)가 있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생식 능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 학생은 뒤늦게 정자 채취를 위해 병원을 찾았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먹먹했다. 그때 깨달았다. 난임은 단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마음과 삶 전체를 흔드는 문제라는 것을. 난임을 ‘몸만 고치는 기술’로 접근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포럼을 열게 된 거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을 성찰하는 인문학’을 더하고 싶었다. 치료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니까. 이 포럼은 매년 여름 열리며 난임 의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임신에 성공해서 태어난 아기 수는 몇 명 정도 되나.

    “1만 명 이상… 세어보지 않았다. 임신이 돼서 웃으면서 간 사람들은 잊는다. 하지만 10차 11차 12차 그 이상 했는데도 임신이 끝내 안 된 부부들이 떠올라서 힘들다. 안 될 수밖에 없던 의학적 이유가 있었지만, 아기를 안겨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이 쓰인다. 신기술이 나올 때면 자꾸 생각이 난다. 예전에는 환자들이 IVF를 해도 안 되면 본인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한두 번만 안 돼도 섭섭해하고 곧바로 의사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IVF를 하면 당연히 임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더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흐름이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선택일까.

    “그렇다. 종족 번식은 생명체의 본능이자 자연의 법칙에 가깝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후손을 남기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 순환을 경험하지 못하면 인생의 절반을 놓치고 가는 셈이다. 식물도 씨앗을 남기고 사라지듯, 음과 양이 무(無)에서 와서 무언가를 남기고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를 낳는다’고 표현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식을 남기는 일’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려고 태어난 게 아닌 것이다.” 

    이상찬 원장
    ● 1952년 부산 출생
    ● 부산대 의대 졸업, 미국 뉴욕코넬대학병원 초청 난임 펠로
    ● 부산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역임, 세화병원 병원장(현)
    ● 수상 :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부산시장·국세청장 표창장, 국회부의장 공로장
    ● 저서 : ‘쌍둥이를 원하십니까(2021)’, ‘세상에 태어나 꽃이 되어라(2024)’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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